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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박페페 Oct 20. 2020

이분법을 생각하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 

교과서에서 중용을 배웠을 때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라 생각했다. 서양식 디베이트를 배우며 중용을 밀어냈다. 이도 저도 아닌 것. 회색지대. 중용을 추구한다며 이 쪽도 저 쪽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되느니 어느 한쪽을 분명하게 잡고 전체를 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들이 남긴 아름다운 가치는 너무 아름답고 높아서 아예 쳐다보지 않게 된다. 그건 성인들의 몫이고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으로 벅차니까. 저 너머에 있는 중용도 그러했다. 밸런스, 균형이란 이름으로 어쩌다 생활인의 기술로 접목되기도 했지만 제대로 들여다보면 진짜 의미에서는 멀어지는 방향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중용을 다시 생각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 진정함에 이르기는 참으로 어렵지만 그래도 옳은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 않은가 싶다.

동양과 서양은 생각의 지도가 다르다고 한다. 동양은 전체적인 맥락을 중요시 한다면 서양은 구체적인 구분에서 접근한다. 동양의 개념은 넓지만 추상적이고 서양은 부분적이지만 분명하다. 동양은 코끼리가 엄청 클 거라 전제하고는 얼마나 큰 지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서양은 코끼리 다리를 잡고 일단은 그 크기만을 얘기한다. 그래서 대체로 동양인은 숨은 그림 찾기를 잘하는 반면 서양인은 다른 그림 찾기를 잘한다고 한다. 

나 자신도 교육의 강조점에 따라 생각의 틀이 변형되었다. 초중고까지는 모두에게 좋은 것, 치우치지 않는 것, 모나지 않는 어떤 것을 선이라 생각했다. 

미국 MBA 지원을 위해 토플 시험을 준비할 때 라이팅 파트에서 당황했다. 한쪽이 옳다고 보기 어려운 애매한 상황이 주어졌고 이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펴야 했다. 동양적인 좋은 답은 모두에게 선이 되는 어떤 방안의 모색일 것인데, 토플에서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pro/con 중 한가지 입장을 무조건 정하고 그 라인에서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주장을 펴야 한다. 내 마음의 소리는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그 주장이 힘을 얻기 위해서는 소위 초점을 흐리는 내용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 미국 폭스뉴스를 보면 사안에 대한 디베이트가 벌어지고 패널들은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주장만을 편다. 저게 말이 되는가. 아...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거구나. 빨간색 파란색 각각의 색깔을 주장하고 판단은 시청자가 하라는 거구나. 

나도 간혹 극단적인 이분법을 시도한다. 생각이 애매할 때 무엇이 더 중요한지 내 마음의 소리가 필요할 때. 이분법은 애매한 상황을 좀더 분명하게 보이게 한다. 물에 빠지면 누굴 먼저 구할 건가요. 일어날 가능성도 희박한 질문을 우리는 던지며 산다. 가까운 누군가에게 물었을 때 그런 질문을 왜 하냐는 반응이 대다수일 것이다. 작가 최인호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아내를 구할 것이라고 썼다. 실제 그럴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스로가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는 그가 멋있었다. 자신의 생각이 있는 것이다. 

이분법 조차도 사실은 전체적인 생각을 한 사람에게서 현명한 답이 나올 것이다. 차마 말하지 않더라도 그 마음속에 당신을 이해해요 라는 울림이 있어야 한다. 그게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중용의 추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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