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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님 May 09. 2020

01 생각지도 못했던 주택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푹푹 찌던 더위는 한 풀 꺾이고 아침, 저녁 살랑살랑 가을이 인사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계절은 늘 그렇듯 떠날 때마다 못내 아쉬운지 쉽게 가지를 못하고 낮에는 아직도 여름 티를 내고 있었다.

  "여름인 거야? 가을인 거야?" 혼자 중얼거리며 얼음 몇 개 띄운 냉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였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잘 울리지도 않아 낯선 집 전화벨 소리가 거실을 채웠다. 집주인이었다.


  집 전화벨 소리만큼 낯선 목소리의 집주인은 집 값이 제법 올라 집을 팔려고 부동산에 내놨다며 이 집을 사든지 아니면 다른 집을 알아보라고 했다.

결혼 후 세 번째 전셋집이고 전세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이지도 않았건만 그 날은 예상치 못한 전화여서 그랬는지 세입자는 왠지 서러운 거 같다는 생각에 집주인의 말을 제대로 다 듣지도 못 했던 것 같다.

  "네~ 아, 네~" 이런저런 생각에 무의식적인 대답이 나오고 있었다. 좀 더 생각해보고 남편과 의논한 후 연락드리겠다는 내 말에 굉장히 귀찮은 물건을 처리하듯 무뚝뚝한 목소리로 이번 기회(?)에 집을 사는 게 어떻겠냐고 사무적으로 한 번 더 권하고는 집주인은 전화를 끊었다.


  집주인과의 통화 내용을 남편에게 전화로 전달하고는 곧바로 다른 전셋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지역통합으로 갑자기 뛴 집값 때문인지 전세로도 월세로도 마땅한 집이 없었다.

  신혼집은 신축 투룸, 임신하고는 24평 아파트, 지금 살고 있는 이 지역으로 이사 오면서는 여기 20평 빌라에 보금자리를 얻었었다. 당연히 새로 얻을 집도 아파트나 빌라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퇴근 한 남편에게 수십 번의 클릭 끝에 그나마 몇 개 얻은 아파트와 빌라 전셋집 정보들을 보여주며 내가 부동산 중개업자인 양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늘 나의 노력을 존중해 주는 남편은 이런저런 조건을 열심히 들어주고 있다가 마지막에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이번에 집을 사는 것도 생각해보자. 주택에 사는 건 어때?"


  주택은 정말 생각도 안 했었다. 어렸을 적에 아파트나 빌라에 살았던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큼 주택은 제외되어 있었다. 더 이상했던 것은 계획하지 않은 것이나 예상치 못 한 것은 몸이 먼저 거부반응을 보이는 나인데 그 날 그때 남편의 말은 왠지 정답인 것 같이 느껴졌다.

  다음 날 있었던 모임에서 만난 지인의 조언도 주택에 대한 생각을 달리 갖게 해 주었다. 다음에 자기도 주택을 구할 거라며 모 방송사에서 찍은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주택에 사는 아이와 아파트에 사는 아이가 우리 동네라고 생각하는 지역의 크기가 각각 달랐고 비염, 아토피로 고생하던 아이들도 좋아지더라며 주택 예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디까지 믿을지는 내 몫이었지만 어느새 주택으로 마음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남자아이 치고는 정말 조용하고 차분히 노는 아들인데도  아랫집 할머니의 암투병으로 인한 할아버지의 예민하신 반응은 점점 더 심해져서 (편찮으시기 전에는 아들을 귀여운 토끼라고 불러주시며 예뻐해 주셨던 정말 좋으신 분들이었는데..) 우리 집으로 올라와 좀 조용히 시키라고 고함치시는 횟수와 아들의 소심함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었다.

  나도 아들도 앓고 있던 알레르기성 비염이 심해지고 있었던 터라 환풍기로, 베란다로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담배냄새에서도 너무나 탈출하고 싶었다.

  아무 연고 없는 지역에서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보낸 1년 6개월도 훌쩍 지나가고 우리 식구 모두에게 생활에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또 남편은 어렸을 적 주택에 살며 갖게 된 좋은 추억들이 많았는데 기억 속의 나이가 딱 아들의 그때 나이 때여서 그런지 자주 회상하며 그런 좋은 경험들을 아들도 갖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도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 주택도 알아보자!'


결심을 하자 생각지도 않았던 주택이 우리 가족의 삶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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