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는 크게 어렵지 않겠네.' 지금 떠올리면 어이없는 생각이었지만 예닐곱 채 실망스러운 주택을 본 후였던 터라 작은 것이라도 긍정적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주택을 알아보기로 결정한 후로는 언제나 어디서나 주택밖에 보이지 않았었다.
왜 머리 하러 미용실에 가고 싶을 때는 어디를 가든 다른 여자들 헤어스타일만 보이고 예쁜 치마를 하나 사고 싶을 때는 신기하게도 치마만 눈에 들어오지 않던가.
부동산에 여러 차례 전화를 하고 집 보러 가기로 약속도 여러 번 잡으면서 새삼 내가 사는 지역에 이렇게 많은 주택들이 있었나 놀라웠다.
이 많은 주택들이 다 어디에 있었나, 이 많은 주택들 중에 우리가 가진 조건에 맞는 주택이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하나의 화장실에 문은 2개인 집, 마당은 넓은데 집 안은 마당의 반도 안 되는 집, 다운계약서를 쓰자는 집, 리모델링은 해야 될 거라고 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는데 아예 다시 지어야 하는 수준의 집... 정말 별별 집들을 다 가본 거 같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바란 것도, 엄청난 시세차익을 안겨다 줄 집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딱히 맘에 드는 집이 한 집도 없었다.
"이 집이에요." 부동산 사장님의 목소리에 그동안 봤던 집들을 뒤로하고 주차장에서 몇 걸음 더 들어가자 막다른 골목 끝 은색 대문 집이 보였다.
대문이 열리고 마당에 감나무 잎들이 가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왜 그리 설렜을까?
네 집이 될 거라고 어서 오라고 손 흔들어 주는 듯 그렇게 반겨주는 집.
지금의 나의 집은 감나무와 함께 거기에 있었다.
집은 딱 내 나이만큼이었다. 오래된 집이었지만 집주인 할아버지께서 그런대로 관리를 잘하셨고 2년 전에 리모델링도 하신 터라 내부도 깨끗했다. 아담한 다락까지 마음에 쏙 들었다.
기름보일러이고 세탁기 놓을 자리가 따로 없고 화장실이 지나치게 컸지만 그동안 봐왔던 집들이 내 기준을 참 많이 낮춰줬다는 생각이 새삼 들 정도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집을 보고 나오는 길에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가 들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살펴보는 나에게 부동산 사장님은 "저기가 초등학교 후문이에요. 학교도 한 번 가보세요. 남편 분하고 상의하고 전화 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차에 올라탔다.
학교 후문이 코 앞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다섯 살 아들이 다닐 병설유치원을 알아보던 내 마음은 더더욱 확실해졌다.
퇴근하고 온 남편에게 너무 신이 나 보고 온 집을 주저리주저리 설명했다.
내가 흥분하면 남편은 맞장구는 쳐주지만 고맙게도 침착해진다.
밤에 자기와 같이 한 번 더 보러 가자고 했다.
다음 날 밤은 비가 쏟아졌는데 나는 그런 날 그런 밤에 가보기를 잘했었다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밤에는 또 집이 주는 느낌이 달랐다.
창문이랑 벽 두께, 보일러실까지 꼼꼼히 확인한 남편은 물이 좀 새는 곳과 이곳저곳 자질구레하게 손봐야 할 곳들을 발견했다. 주택은 어찌 됐든 손이 갈 수밖에 없을 거라며 그 정도면 남편의 기준에도 합격이어서 우리는 주말에 그 집을 계약했다.
우리 집이 되었다.
며칠 뒤, 가구 놓을 자리를 위해 집 내부 길이를 재러 세 번째 우리 집에 갔다.
계약까지 마쳐서인지 감나무도 더 예뻐 보이고 마당도 더 좋아 보이고 집도 더없이 반가웠다.
사람이 아닌 주택에 이런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니...
막 등산을 마치고 오신 집주인 할아버지는 얼마든지 편하게 살펴보고 잘 재서 가라고 말씀하시면서 한쪽 벽에 기대어 앉으셨다.
신이 나서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는 우리 부부를 물끄러미 보시던 할아버지께서 한 마디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