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지갑놓고나왔다> 미역의효능 작가 지음.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motherdaughter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엄마인 선희와 딸인 노루다. 이제 고작 아홉 살인 노루는 안타깝게도 얼마 전 교통사고를 당해 지금은 영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노루는 자신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보다 자신의 죽음으로 혼자 남게 된 엄마 선희를 더 걱정한다. 아홉 살이라는 어린아이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 그리고 이런 사건을 겪었지만 평범하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노루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무언가 어두운 사정이 있지 않을까 추측할 수 있다.
모든 일의 시작은 선희가 어린 시절 당한 성폭행, 그리고 가족을 포함한 사회의 무책임이다. 이 작품은 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가해진 폭력이 어떤 결과를 낳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보여준다. 또래에 비해 너무 어른스러운 노루의 모습은 가해자와 가족이 가한 폭력이라는 거대한 물살이 흘러가서 가장 밑바닥에 고인 결과다. 사회와 가족은 선희와 경자(선희의 엄마) 같은 여성에게 그 짐을 지우고, 더 약자인 아이 노루에게 다시 한번 그 짐을 미룬다. 노루의 어른스러운 행동은 그 짐을 짊어지려는 발버둥이다. 우리는 노루의 어른스러움이 얼마나 어색한지 잘 알고 있고, 그건 이 상황이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 느끼고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런 고통에서 선희와 노루가 벗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는지를 생각해 보면(사실 완전히 치유된 것도 아니다), 잔인한 폭력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다시 한번 몸서리쳐진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이러한 폭력에 당한 뒤 우리는 어떻게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까. 작가는 엄청난 폭력에 맞선 개인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우리가 힘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기꺼이 자신의 마음 한쪽을 잠시 치워내고 다친 마음을 받아 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에게 기대라고, 좀 서로 안아주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선희에게 아주머니가, 수진과 혜주가 있듯이 주위의 누군가에게 기대 달라고 말이다. 이건 또 반대로 누군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모른척하지 말아 달라는 작가의 당부이기도 하다. 물론 너무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것조차 힘들 수도 있다. 모든 것을 한 번에 털어놓지 않아도 좋다. 그냥 웃음 삼아 “지갑을 놓고 나왔다”며 그 사람의 집에 잠깐 들르거나, 상대의 표정을 마주하기 어렵다면 새 모양 가면을 써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좋다. 거기까지가 그의 몫이고, 이제 나머지는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얻은 힘으로 조금씩 나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고 이야기한다. 노루와 선희는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서로 의존하면서 각자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고 결국 끈적하게 엉겨 붙어 버렸다. 노루에게는 선희를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감만이 남아 버렸고, 그 이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선희도 어릴 적 끔찍한 성폭행으로 정신질환을 얻게 된 후 딸인 노루에게만 의지하면서 노루에게 자신의 부모, 친구, 그리고 자신의 일부까지 투영하고 그 역할을 기대한다. 결국 그들은 저승과 이승에서 서로를 놓아주지 않은 채 마음의 실타래는 점점 더 엉켜 버리게 된다.
노루와 선희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엉켜버린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낸다. 그들이 그때까지 서로의 진짜 감정을 마음속 깊이 숨겨둔 건 자신의 진짜 마음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사랑받을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각자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고 내보이면서 자신의 모습을 건강하게 되찾을 수 있었고, 그들은 서로에게 진심의 작별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더욱 애틋해졌다.
<아 지갑놓고나왔다> 같이 어두운 소재를 그린 작품일수록, 작품을 이끌어가는 작가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밝은 소재의 경우 “재미없네”하고 넘어가면 끝이겠지만, 이런 현실의 어두운 소재의 진행이 설득력을 잃어버리면 독자는 ‘역시 세상은 쓰레기 같은 곳이구나’하면서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그래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하는, 작가의 역량이 빛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작품을 끝까지 읽고 미역의 효능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찾아보았는데, 피를 맑게 하고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한다는 말이 가장 위에 나온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책이나 노래의 운명은 그 이름을 따라간다고 하는데, 이 작품의 작가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