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채물감 Dec 01. 2023

다 같은 맷집은 아니지

M이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에도 답이 없다. 

정기인사로 우리가 뿔뿔이 흩어지고 각자 서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다시 열심히 일해보자 하였으나, M의 휴직 소식이 들렸다. 누구를 만난들 C보다 힘들겠어 우리 이제 웃으면서 일해보자.. 엊그제 나눈 대화인데 말이다. 

입사 2년차, 이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는지, 나는 이곳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앞으로 나에게 희망이 있는건지, 온갖 의문으로 선배를 찾아가 하소연하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 어느덧 이십년을 훌쩍 넘겼다. 이런저런 부당하다고 여긴 것들이 많았지만 그에 맞서기보다 순응 쪽을 택하였던 결과이겠으나, 승진을 못한 것도 주변머리 없는 자의 팔자려니 하면서 이제껏 버텨왔다. 한 사무실 안에 있는 이들과 그저 안녕하며 일하는 것 그 한가지 욕심 뿐이었는데 그걸 해내지 못하고 꾸역꾸역 보내온 6개월, 내 속을 다스리느라 M을 제대로 살피지지 못했나 생각에 이르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M이 했던 말이다.

인사철에는 별의별일이 다 있다 보니, 인사철 며칠만 이상한 사람 되면 1년이 편하다 했던 어느 선배의 말이 격하게 공감이 된다. 내 자리를 보전하기 위한 갖은 이유들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설득이 되지 않을진데, 그런 이유가 먹히게 하는 그 놀라운 능력들이 부러울 뿐이다. 

맷집이 생긴 나에게는 그저 또 그런 일이었고,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열심히 뒷담화를 안주삼아 털어내는 것으로 그나마 내일 다시 출근할 힘을 얻는 법이었는데.

M은 전혀 나와 같은 방법으로는 해결이 안되었는가보다. 

이런 경험이 한 번 두 번 쌓여 맷집이 될 것이라고 

무사안일이 중요한 내 기준으로만, 나는 M에게 맷집이 생기는 중이라 여겼던 거다. 


그러나 맷집이 다 같은 맷집은 아니지. 

나는 어쩌면 주저앉고자 견디는 맷집이었으나

M에게는 좀 더 도약하기 위한 맷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M에게 잠시 쉬어갈 시간이 필요한 것이겠지

앞으로의 방향을 선택할 시간..

쉬어가는 시간이 용기와 힘이 되기를 

그리고 나의 미안함이 M에게 닿기를

M의 선택에 내 응원이 한 스푼 올려지기를 

그 선택의 끝에 이 시간이 나와는 다른 맷집이 되기를 

힘없는 나의 작은 바람이다. 


작가의 이전글 혼자라도 고기 먹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