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은 쌀쌀해지고 친구는 멀리 있고
지글지글 고기를 구워본지가 언제였던가 하던차에
혼자라도 고기 먹어..
라는 그녀의 말에 오늘 저녁메뉴를 삼겹살로 정했다.
바닥이 하먛게 바랜 슬리퍼도 새걸로 사야겠다 생각한지 한달째고, 가까운 재래시장으로 슬리퍼도 사고 저녁을 먹으러 출발.
하지만 슬리퍼 파는곳을 찾지못하고 혼자 먹을만한 고깃집도 고르지 못하고 터덜터덜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시장 옆 아파트단지 입구쪽 마치 까페처럼 탁트인 통창에 새하얀 삼겹살집이 보였다.
그래 오늘은 여기다.
가족 단위로 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들 건너에 벽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혼밥의 최고 단계라는 삼겹살 구이를 드디어 오늘 실행한다.
솥뚜겅을 닮은 불판에 콩나물, 파김치, 고사리, 팽이버섯, 새송이버섯이 먹음직하게 올라가 있다.
드라이에이징으로 숙성을 했다는 삽겹살을 두껍게 썰어 불판에 올려놓고 노릇해지기를 기다리며,
소주도 한 병 옆에 세팅하고 마치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를 즐기는 사람인냥 요리조리 방향을 바꿔가며 사진도 몇 장 찍어본다. 어디 사진을 올릴 것도 아니면서, 사진을 그리 잘 찍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옳은 삼겹살은 노릇노릇 맛있게도 익어
한번은 상추깻잎에, 한번은 콩나물에, 한번은 고사리에..... 또 한번은 몽땅 섞어서....
삼겹살 2인분을 순삭하고,
볶음밥도 야무지게 볶아먹은 후에 배를 두들기며 일어난다.
혼자놀기가 세상 좋은 나라도 삼겹살 2인분은 좀 과했다, 고개가 한쪽으로 살짝 기울며 배시시 웃음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다.
혼자라도 고기 잘 먹은 저녁이구나.
기왕 찍은 사진이니 나는 어디에라도 올려봐야겠다고,
그래서 오랜만에 여기 브런치에 일기를 써본다.
쉬지 않고 쓰겠다 했던 그 다짐이 무색하지만, 브런치 그대는 이해해 줄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