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입력이 없어 프로그램을 종료합니다'
회사 컴퓨터 인터넷이 내부망과 외부망으로 나뉘어 있는 탓에, 외부망 이메일로 받은 자료를 내부망으로 옮길 때 쓰는 파일전송 프로그램이 로그아웃된다는 메시지가 떴다.
프로그램도 일정시간 쓰지 않으면 자동으로 문을 닫아버리고
여기저기 가입한 사이트도 계좌도 시간이 지나면 휴면 상태로 돌아가버리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사라지는 문이, 끊어지는 인연이 얼마나 많을까.
김광석이 '서른 즈음에'를 부를 때,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 가는 것들이 늘어간다고 할 때, 아.. 정말 그렇구나 했던 것이 벌써 30년 전인데, 그 이후로 잊혀진 인연들이 또 얼마나 많을지... 핸드폰을 바꿀 때마다 전화번호부를 새 기기로 옮기면서 이 많은 번호들은 대체 어떻게 저장한 것일까 생각한다.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는지 마지막으로 통화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친구, 다시 연락할 일도 없을 것만 같은 사람도 무엇 때문인지 삭제버튼을 누를 수가 없다. 쓸데없는 미련 같다가도 왠지 모를 미안함 같은 것이 여전히 내 핸드폰 속에 남아있게 만든다. 지금 계속되는 인연들과의 대화 속에서 갑작스레 소환되는 과거의 인연이 때로는 이름조차 떠오르지 않을 때 그저 나이 탓만 하기에는 그들에게 아니 나 자신에게 못할 짓 같다. 그냥 이런 인연과 추억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해두자.
그냥...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과 교감하면서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르겠을 때 '그냥'이라고 말하는 것을 배워 따라 했던 드라마가 있었다. 제목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냥이라는 말이 참 무성의할 수도 있으나 아주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음을 느꼈던 장면이다. 정확한 이유를 댈 수 없어 그저 얼버무리는 대답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고 내 마음을 잘못된 표현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말이다.
어쩌면 그런 식으로 그냥... 어떤 인연과도 조금씩 멀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 나의 시간이 나의 공간이 그와 멀어지면서 보고 싶고 말하고 싶어도, 바빠서 혹은 피곤해서... 때로는 나의 피로가 그에게 오해나 상처를 줄 수 있어서... 상대의 피로 때문에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어떤 이유로 그냥... 점점 잊혀진 거다. 누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각자의 인생을 열심히 살다가 그냥...
그래서 사용자 입력이 없어 프로그램이 자동 종료하듯이, 그 인연이 자동 종료된 것일 뿐이다.
그리고 또 언제든 프로그램을 열고 다시 로그인을 할 수 있고, 인연 또한 다시 이어갈 수도 있다. 그것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러니 사실은 종료가 아니다. 언젠가 사용자가 입력을 하면 다시 열리고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니까.
내가 그를 다시 맞이할 준비가 되면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