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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샘 Feb 09. 2024

행복이의 눈물

우리 반 아이들을 떠나보내며

행복이가 울었다.

종업식을 마치고 다른 아이들은 다 집에 갔는데, 빈 교실에서 행복이가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행복아, 왜?"

"선생님, 1년 동안 감사했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더니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에구 우리 행복이, 고마워"

행복이를 꼭 안아주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잘 안기지도 않던 우리 행복이인데, 내게 와 꼭 안겼다.

"선생님이랑 여기서 사진이나 한 장 찍을까?"

그랬더니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평소엔 절대 안 벗는 마스크도 벗고 눈물 자국 난 얼굴로 애써 웃으면서 사진을 찍어준다.   

행복이와 함께


돌아보니 작년 1년은 우리 행복이를 만난 것만으로도 참 의미 깊고 보람찬 1년이었던 것 같다.

다소 미숙하고 방법을 몰라 서툴렀을 뿐 모범적인 것을 지향하고 착하고 싶어 하는 행복이었다.

화를 처리하는 법에 미숙했고, 사람과 관계 맺고 친해지는 법을 몰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에 서툴렀을 뿐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안아줄 힘이 내게 생겼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행복이가 내게 주는 사랑은 더 특별했고 그 특별함은 나에게 큰 보람과 행복을 안겨주었다.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뗐을 뿐이지만, 첫걸음을 뗀 행복이는 곧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올해엔 더 많은 성장을 할 것이라 믿는다. 응원하고 기도한다.

그러고 보면, 선생님이란 존재는 아직은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미래를 조망해 보며 희망의 이력서를 써주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이력서가 아니라 넌 이런 사람이 될 거라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이력서를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적어주는 사람.


행복아, 너는 정말 멋진 사람이 될 거야. 진실되고 정직하고 착하고 싶어 하잖아. 우리 행복이는 틀림없이 멋지고 훌륭한 어른이 될 거야. 두고 봐.


우리반 아이들의 깜짝이벤트
선생님, 내일은 늦게 늦게 오세요.


아이들이 하루 전날 내게 이벤트 공지(?)를 해주었다.

우리 반 아이들의 깜짝 이벤트는 이렇게 너무 티 나게(?) 진행되었지만, 미리 알았어도 감동이었다.  

아이들의 깨알 같은 편지와 학부모님들께서 보내신 손편지까지.


학부모님이 보내주신 손편지


편지는 늘 감동이다.

마음은 있어도 실제로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것임을 알기에 너무 감사했다.

학부모님의 지지와 응원은 선생님들을 춤추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준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좋은 분들을 만난 것임을 안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나를 격려해주고 싶다. 한 해동안 많이 애쓴 나를.

우리 반 아이들의 편지에 보답하고픈 마음에 나도 컴퓨터로나마 써서 읽어주었다.  

작은 것에도 크게 감동하는 우리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꼭 안아주었다.

체온이 전해진다.


우리 반 아이들이 나를 통해 사랑받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사랑받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을 깨닫길 바랐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아이들에게 사랑을 배웠다. 늘 언제나 나를 최고의 선생님이라고 말해주는 우리 반,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손을 잡아주었던 우리 반, 조금이라도 내가 지쳐 보이면 나에게 힘내라고 쪽지를 보내주는 우리 반이었다. 우리 반을 통해 깨닫게 된다.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사랑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래야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2023년 그루터기반을 이렇게 감사한 마음과 함께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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