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수업시간이 뭐였더라 하며 허둥대고 있을 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이들이 나를 흔든다.
이럴 때, 흔들리면 아이들에게 혹시 습관이 될까 봐 염려가 되면서도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진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일 것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던가?
"그럴까?"
라고 약한 나의 마음을 내비치면 상황종료다. 돌이킬 수 없다.
"네!"
우렁찬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후다다닥 사물함으로 향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아이들은 자동으로 음악책, 음악공책과 함께 리코더들(?)을 꺼낸다. 여기에 밝아진 아이들의 표정은 덤이다.
내가 좋아서 가르치기 시작한 리코더인데 이제는 나보다 아이들이 리코더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코로나 3년을 지나온 현재 우리 반 아이들은 3년 동안 리코더 배울 기회를 놓쳤었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뭔가 가르치는 것이 새로웠다. 흔히 4학년에게 기대하는 리코더 실력이 있는데 우리 반은 그에 한참 못 미쳤다. 그래서 나도 기대치를 많이 낮췄었다. 3월에 '비행기'로 시작했으니까 올해는 알토리코더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고 소프라노만 잘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행기를 불던 아이들이 지금은 위풍당당하게 '위풍당당'이라는 곡을 4중주로 연주하고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어떻게 이렇게 아이들의 리코더 실력이 일취월장했을까? 물론 나의 '지도력'도 몇 번째 이유쯤에 있을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한 것을 굳이 찾는다면 아이들이 리코더를 좋아하게 만든 것 밖에는 없는 것 같다. 나는 3월에 우리 반 아이들에게 '리코더'라는 악기를 소개해주었다. 충분히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소리를 들려주고, 갖가지 다양한 리코더들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텅잉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불어야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알려주었다. 그다음부터는 다양한 곡들로 아이들의 속도에 맞추어 사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아이들은 슬슬 리코더의 매력에 빠져 천천히 사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아주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리코더를 좋아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무엇인가를 순수하게 좋아한다는 게 이런 모습일까? 삼삼오오 모여서 화음을 맞춰 부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아이들이 리코더 부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가만히 감상하게 된다. 그리고는 한 마디 해준다.
"얘들아, 너무 듣기 좋다. 우리 반 너무 잘하네."
그러면 아이들은 너무 신나서 한 번 더 연주해 주거나 다음 곡을 들려준다.
2023년 9월 6일 아침, 대전 용산초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기사보다 일찍,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알게 되었다. 출근하자마자, 차에서 톡을 보고 그때부터 마음이 무너져 내려 하염없이 눈물만 났다. 나와 나의 동료들이 버티고 있는 이 교실이 위태로웠고, 그렇게 애써온 한 명의 동료를 또 잃었다는 소식에 마음을 지탱하기 어려웠다. 교실에 들어서서 눈물을 참으면서 정당하게 울 수 있는 이유와 방법을 찾았다.
"얘들아, 선생님이 오늘 너무 슬픈데 너희들의 리코더 소리가 듣고 싶다. 선생님을 위해 연주해 줄래? '아름다운 것들'이 곡 연주해 주라."
아이들은 말없이 사물함에 가서 가만히 리코더를 꺼내 들고 선생님에게 부탁받은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위로가 리코더를 타고 내게 전해져 왔다. 아이들의 연주는 내게 잔잔한 위로를 건넸다. 슬픔을 넘어 힐링을 주었다.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얘들아, 선생님이 엄청 위로받았어. 너희들은 정말 감동이야. 선생님이 지금 감동의 눈물 흘리고 있잖아. 너희들의 마음이 전해졌어. 선생님이 늘 말했던 리코더에 감정을 담는 건 이런 거야. 우리 반, 정말 고마워. "
아이들의 따뜻한 시선이 내 눈에 들어왔다. 큰 위로였다. 그날, 우리 반 아이들은 경험했을 것이다. 연주를 통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구나. 그렇게 음악이 가진 힘을 경험한 아이들은 음악을 새롭게 정의하였으리라.
재작년 코로나가 한창때, 리코더는 금기 악기였다. 그 해도 4학년을 가르쳤는데, 리코더 텅잉은 가르쳐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마스크를 잠깐 벗고 텅잉만 해보자했었는데, 아이들이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아 할 수 없이 내가 시범으로만 보여주었다. 그 해 아이들과는 리코더를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도 우리 반 아이들은 내게 틈만 나면 "선생님, 음악 하면 안 돼요?"라고 물었다. 참 신기했다. 그해는특별히 음악 시간에 뭘 해주는 것도 없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채 그렇게 그 해를 지나왔다.
지금에 와서 다시 그 질문에 답을 찾아보았다.
문득 음악이 우리 반 아이들과 나의 비밀통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재작년 아이들에게 몇 번 나의 리코더 연주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아이들도 그 길에서 내 마음을 만났으리라. 나는 매년 아이들과 그 길에서 마음을 주고받는다. 내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전해받기도 한다. 또 아이들끼리 서로 마음을 주고받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만 아는 그 비밀스러운 길목에서 사랑받고 사랑하며 우리의 존재를 기쁨으로 확인한다.
나는 아이들과 통하는 비밀 통로를 가지고 있다. 이 길은 일방통행이 아니기에 누구라도 올 수 있고 누구라도 갈 수 있다. 참으로 자유롭고 행복한 길이다. 우리는 누구라도 그 길에서 위로받고 사랑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