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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치 May 08. 2020

기타 둘러메고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우리 집 거실 한편 구석에 오래된 클래식 기타가 하나 놓여있다. 못난 주인은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두면 더 자주 연주하겠지”라고 말하며 기타 스탠드까지 주문해서 떡 하니 거실에 두고서는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랜 시간 손길 한번 주지 않아 기타에는 먼지가 쌓이고 기타 줄은 늘어난 지 오래다.   
 
나는 가끔 힐끔힐끔 눈길을 주며 저 소중한 기타를 방치했다는 죄책감에 뜨끔하지만 그렇다고 그 눈길이 손길이 되는 일은 드물다. 
 

17년 된 이 기타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인생의 변환점의 시작을 함께했으며 나와 세계 곳곳을 누빈 고생 꽤나 한 친구다. 
 

초등학교 6학년, 유학을 가기로 정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엄마는 나를 클래식 기타 학원에 보내셨다. 외국 애들은 다 악기 하나씩은 다룬다는 말씀을 어디서 들으시고는 나를 기타 학원에 보내셨다 열심히 배워 타지 생활하며 외로울 때 허튼짓 말고 기타 연주하라는 잔소리와 함께. 
 
나는 몇 년을 배워도 늘지 않던 피아노와 다르게 기타는 곧 잘 따라 했다. 특히 클래식 기타의 나일론 줄이 내는 부드럽게 울리는 그 소리가 퍽 마음에 들었다. 어느 정도 실력이 늘자 엄마는 동네 이마트 삼익 악기점에서 기타 하나를 사주셨고 그게 나와 내 기타의 시작이다.



2004년 3월

“걱정 마 나 잘 갔다 올게”. 등 뒤에 맨 기타 덕분인지 등에서는 온기가 느껴졌고 나는 씩씩하게 손을 흔들며 케이프 타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엄마 말이 맞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클래식 기타 레슨을 계속 받았는데 덕분에 학교 음악연습실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고, 기타 앙상블 활동도 하고, 여학교라 기타 치는 친구가 몇 없어서인지 기타 덕분에 친구도 좀 더 쉽게 사귀었더란다. 

고등학교 졸업 후로도 이 기타는 나를 따라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한국으로 싱가포르로 함께 했다. 연주를 자주 하는 것도 아닌데 항상 그렇게 곁에 두고 산다. 시집갈 때도 들고 갈 거다. 

 



13살의 나를 돌아보면 나는 꽤 당차고 단단한 아이였던 것 같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어린아이의 천진 남만함에서 나온 자신감 덕분에 나는 그 먼 곳에서 부모님과 떨어져 잘 지낼 자신이 있었고 나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외로워도 무던히 노력하고 꿋꿋이 그 시절을 견뎌냈다. 그래서 내 기타는 나에게 악기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오랜 친구이며 그 시절 나의 고군분투를 상징하는 소중한 존재다.  


이제 막 서른이 된 요즘  또다시 인생의 큰 변환점 앞에 서 있는 나는 새로운 시작이 설레지만 두렵다. 넘어질까 실패할까 머뭇머뭇한다. 나의 선택에 대해 후회할까 두려워 선택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하느라 몸만 축내고 있다. 온전히 행복하지 못 한 시간들이다.  


기타를 쳐다볼 때 뜨끔하는 이유는 주지 않은 손길 때문이 아니라 13살 사춘기 소녀보다도 없는 자신감으로 머뭇거리며 살고 있는 지금의 나의 모습을 대면해야 해서 그런 것 같다. 


기타 하나 둘러메고 씩씩하게 유학길에 올랐던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이 질문과 함께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기타 연주를 하며 13살의 나로 돌아가려 한다. 단단하고 씩씩한 그 아이는 아직 내 속에 있을 거라고 믿는다. 기타 연주와 함께 나의 새로운 시작, 새로운 도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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