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가 태어날 때 육아휴직을 썼던 게 벌써 먼 옛날 같다. 처음 해보는 엄마 노릇에 혹시라도 실수가 있을까 봐 전전긍긍하던 시절(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세상이 낯선 아기와 아기가 낯선 엄마가 서로 고군분투하던 시절. 그러다 작년 이맘때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 복직을 했었는데 사계절을 돌아 다시 가을이 왔다. '언제 걷나' 하던 호야는 3개월 후면 세돌이 된다.
'더 이상 못하겠다.'
복직한 지 1년째, 번아웃이 왔다. 건전지가 떨어진 장난감처럼 머리도 몸도 작동이 잘 되지 않았다. 일이 많아서 힘들 때는 ‘이것만 지나면 괜찮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었는데, 그런 순간들이 지나가도 괜찮아지지 않으니 당황스러웠다. 아마 그때였던 것 같다. 주말을 껴서 여름휴가로 나흘을 쉬었는데 몸과 마음이 전혀 회복되지 않았을 때,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일과 육아의 병행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나를 계속 일으켜 세우는 일이. 다른 워킹맘들은 어떻게 해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일과 육아로 하루가 저물고, 몸과 마음이 회복되지 않은 채 다음날이 시작되는 날이 반복됐다. 풀리지 않고 남아있던 피로가 켜켜이 쌓이고 쌓여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 하고 싶지 않게 된 건지도 모르고. 아침에 일찍 일어날 의지도, 운동을 하러 나갈 의지도 사라졌다.
어느 날은 일을 하는데 답답하고 눈물이 났다. 다행히 마스크 덕분에 큰 티를 내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지만, 그러고 있는 스스로가 당혹스러웠다. 무엇 때문에 힘든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최근에 특별히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이가 힘들게 한 일도 없는데.
그런데 위에 쓴 글을 다시 읽으면서 문득 한 가지를 알 것 같다. 내가 나를 속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괜찮은 척 지내다가 결국 이 사달이 난 건 아닐까.
울면서 일했던 며칠 뒤에는 오후 반차를 내고 1시에 퇴근했다. 집에 오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연어덮밥을 먹고 집에서는 누워서 유튜브만 봤다. 남편이 호야를 하원해서 시간을 보내준 덕분에 오랫동안 꼼짝하지 않고 누워있을 수 있었다. 저녁 6시가 되자 그제야 정신이 좀 돌아왔다. 전에는 반차를 놀려고 썼다면 지금은 살려고 쓰는 기분이다. 참 귀한 시간인데 일 년 동안 그런 시간을 거의 못 가졌다.
괜찮고 싶었는데 괜찮을 수 없었다. 나를 속이는 데 지쳤다.
서른아홉 가을, 두 번째 육아휴직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