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육아휴직 1년 만에 일도 가정도 놓쳐버렸다..
이혼 후 10년#15
나 혼자 소송을 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해야 했다. 돈을 들인다 해도 변호사가 없는 사유를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변호를 위해 그 간의 일들을 시시콜콜 설명하는 게 더욱 심적으로 지치는 일이라 혼자 하기로 했다.
그 사이 아이들의 양육을 홀로 감당하며 회사에 복직을 했다. 1년 이상을 쉬어버린 탓인지 나의 자리는 없어 보였다. 나의 대체 근로자로 내가 면접을 봤던 직원은 이미 나의 업무를 대체하여 정규직원이 되어있었다.
내가 기존의 업무를 다시 맡기엔 이미 그녀가 많은 역할을 하고 있어 새로운 업무를 찾아야 했다. 그 사이 회사 상황도 나빠졌는지 사무실도 대학로로 옮긴 상황이라 성과 없이 급여를 받는 게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었다.
눈칫밥과 이혼 소송 준비에 나 홀로 육아까지 마음이 정말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토록 당당하게 내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자부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육아휴직 1년 만에 나는 결국 일도 가정도 멀어진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남편은 어느 순간부터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모든 양육비와 시간들은 내 몫이 되어 이혼 소송 기간 내내 아이들은 아빠가 없는 상태로 지냈다.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법원에서 그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백수인 상태를 가사조정관에게 어필하며 최소한의 양육비와 재산분할 금액을 제시했다.
나의 불규칙한 근로시간과 불안정한 업무 상태에서 그가 제안한 조건으로는 도저히 아이들을 홀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빠가 양육하게 된다면 최소한 아빠 없이 자라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 자신을 잘 알기에 떨어져 있어도 책임을 다할 자신이 있었다.
"그 돈으로 애들 양육을 할 수 있으면 그쪽이 해보시던지!"
화가 나 던진 나의 말에 그는 비아냥 거리는 표정으로 "그럼 그 돈 받고 내가 하지"라고 했다.
순간 앗차... 했지만 이미 가사 조정은 그의 제안에 따라 진행되어 버렸다. 그토록 오랫동안 준비를 해왔건만 모든 것이 일순간에 석연치 않은 상태로 정리되어 버렸다.
나는 어느새 매정한 엄마가 되어 정릉의 한쪽 어귀에 이사 갈 집을 구했다.
딸의 두 번째 생일날...
큰아들이 생후 4개월일때부터 친조카처럼 돌봐주셨던 어린이집 선생님이 우리 가족을 자신의 신혼집으로 초대했다.
나 몰래 딸의 두 번째 생일상을 차려놓으시고는... 딸아이의 생일과 나의 새 출발을 조용히 응원해 주셨다.
나의 지난 어려움을 함께 견뎌준 선생님의 진심어린 위로를 받으며, 아이들에게 눈물의 이별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