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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보라 Nov 25. 2024

#14. 나 홀로 제주에서 외로운 다짐을 했다.

이혼 후 10년 #14

추석의 제주도는 가족단위 관광객이 정말 많았다. 그 속에 어두운 얼굴로 홀로 여행하는 나... 남들의 가벼운 시선만 받아도 저절로 내 어깨가 좁아지는 걸 느꼈다.


첫째에 이어 둘째까지 모유수유를 해왔던 나는 갑작스러운 수유 중단으로 가슴이 퉁퉁 불어 온몸이 아플 지경이었다. 엄마의

부재로 인해 분유로 끼니를 때우고 있을 딸을 생각하니 마음도 함께 아파왔다. 그리고 내가 집을 뛰쳐나올  맨발로 따라 나오던 첫째 아들의 울음소리도 내 귀를 떠나지 않았다.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제주도로 떠나왔건만... 내 머릿속은 점점 며칠 전 그 일이 있었던 현장으로 들어가 그날의 일들을 반복하여 되뇌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 생활들을 반복할 순 없었다. 평생 엄마의 일생봐오면서 순간의 망설임이 어떤 결론에 이르는지 봐왔기에 나는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다.


학교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집에만 오시면 여러모로 맞지 않는 엄마를 평생 원망하셨다. 잘못된 결혼생활로 인한 불행을 온갖 말과 행동으로 표출하며 또 다른 가족의 불행을 만들어내셨다.

유일한 딸이었던 나는 엄마가 매를 맞고 도망을 갈 때마다 함께 도망을 가다가 맞기도 하고, 좀 자라서는 중재자로 또는 엄마의 변호인으로 역할을 하였다.


내가 기를 쓰고 서울로 대학을 간 것도 이제는 그을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밤새 싸우다가도 엄마는 아침밥시간에 맞춰 식사 준비를 하셨고 아빠는 늦지 않게 출근을 하셨다. 부은 얼굴로 나에게 "너희들이 어렸을 때 도망갔어야 했는데... 내가 모질지 못해서 지금까지 이 모양으로 살고 있다." 며 매번 푸념하셨다.


마치 엄마의 발목을 잡은 존재가 바로 나였던 것처럼... 마음이 모질지 못한 탓에 불행한 결혼을 하루이틀 이어가던 엄마는 어느새 환갑을 넘었고... 여전히 아빠와는 몸싸움을 벌이며 서로를 원망하며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발목을 잡을 자식도 없는데 차마 집밖으로 나갈 용기가 없는 엄마는 "이래서는 나 이제 도저히 못 살겠다"불평만 할 뿐이다.


나는 평생을  후회하며 살지 않을 것이다. 차마 애들 때문에 집을 나가지 못했다며 애들한테 평생 원망 어린 푸념을 하며 살 바엔... 그냥 내가 아이들의 원망을 받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평생 용기를 갖지 못해 수십 년을 "그때 ...... 할걸" 후회하면서 사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


그렇게 제주도에서 나는 퉁퉁 부은 젖을 말리며 마음을 다 잡았다.

여행지에서 마주하게 되는 화목한 가족들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면서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 행복들은 부러워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짧은 제주도에서의 도피생활을 끝내고 서울로 곧장 올라가 이번에는 변호사의 도움 없이 나홀로 이혼소장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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