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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보라 Nov 22. 2024

#13.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이혼 후 10년 #13

크고 작은 집안의 문제들 속에서도 뱃속아기는 쑥쑥 자라는 듯했다. 첫째 아이는 오랜 진통 갑작스러운 제왕절개로 세상에 나온 탓인지, 크고 작은 병치레를 자주 했다. 그래서 둘째만큼은  내가 힘들더라도 자연분만으로 낳아보고 싶었다. 팔방으로 알아본 결과, 집 근처에 제왕절개 후에도 자연분만(VBAC)을 할 수 있는 산부인과를 찾았다.  


그 병원 덕분에 나는 청명한 가을에 자연분만으로 건강한 딸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출산 직후 아이도 안아보고 감격 어린 첫 수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응애, 응애’ 울던 아이는 품에 안기자마자, 본능처럼 재빨리 젖을 찾아 꿀떡꿀떡 열심히 먹었다. 아기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캥거루케어도 챙겨서 할 만큼 둘째의 육아는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1년의 육아휴직으로 인해 첫째 아이도 여유 있게 돌볼 수 있게 되었다. 남들처럼 어린이집으로 적당한 시간에 데려다주고, 정규 돌봄 시간이 끝나면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첫째 아이와 순한 둘째 아기를 키우는 기쁨을 가득 느낄 수 있었다.


단 하나의 불만은  무기력하게 자신의 골방에 갇혀 나오지  않는 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과는 아이와 관련된 필요한 대화만 할 뿐, 최대한 신경을 끄고 살아가려고도 노력했다. 그래야 내가 많은 일을 하며 살더라도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던 중, 출산 후 처음으로 맞는 추석명절이 되었다.

시간이 많은 탓에 평소보다 일찍 고향으로 내려가 차례준비를 했다. 시어머니는 매번 힘들어죽겠다 하시면서도 우리 가족이 다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만드시느라 몇 주동안 고생하셨다. 유일한 며느리이자 일손이었던 나는 그런 시어머니를 계속 쫓아다니며 음식을 해야 했다. 방에 틀어박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 외에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던 남편에게 조금씩 짜증이 치밀었다.


점심 상을 차리기 위해 남편에게 방을 치우라고 말했지만, 그는 한 번에 듣지 않았다. 결국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그는 그림을 그리느라 방을 어질러 놓은 아들의 그림도구들을 뺏어 아래층으로 그대로 던져버렸다. 갑작스러운 아빠의 행동에 아이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의 충동적이고 상식 밖의 행동에 분노를 느낀 나는 남편에게 화를 내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엌에서 읇조리듯 나를 두고 욕을 하는 시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상황에서 아들이 최우선인 시어머니였다. 항상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기보다는 아들의 편에서 바라보는 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같은 상황에서 며느리에게 쌍욕을 하며 아들을 두둔하는 시어머니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그분이 지금껏 나를 무엇으생각해왔는지, 그 욕을 듣는 순간 분명히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그 집에서 일분일초도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뒤도 보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가 곧장 택시를 타고 친정으로 갔다.


돌도 되지 않은 둘째와 세 살 터울의 아들이 그 집에 있었지만, 아이들을 챙길 정신도 없이 나와버렸다. 결국 추석 준비를 위해 모여 있던 친정 식구들 앞에서 나는 목놓아 울며 이혼을 선언해버렸다.   


'이제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모두가 행복해야 할 명절 아침, 나는 혼자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고 이혼 여행을 떠났다. 다시는 내 삶의 권리를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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