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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보라 Nov 07. 2024

이혼 후 10년 #2

#2  결혼의 불행은 예고되어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서울 서초구 청계산 입구 도심 속 작은 시골마을 살고 있었다.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만큼 시간이 멈춘 듯한 곳이었다. 강남구에 있었던 회사로 한 번에 갈 수 있는 버스도 있고 청계산의 푸르름을 마주할 수 있는 저렴한 전셋집이었다.


봄이면 사방이 꽃으로 물들고, 여름에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었지만 청계산의 초록빛이 청량하게 감싸주는 매력 있는 집이었다. 그러나 겨울은 혹독했다. 아침에 출근하려 현관문을 열면, 밤새 쌓인 눈이 문을 가로막고 있었다. 안방 침대 주위에는 시커먼 곰팡이가 피어, 주인에게 이야기하니 결로 현상이라며 환기를 자주 시키라고만 했었다. 어떤 아침에는 간밤에 다녀간 도둑의 발자국을 발견하기도 했었. 가방 속 지갑만 빼간 덕에 집주인이 새로 달아준 방범창에 만족하며 남은 기간을 꾸역꾸역 채우고 있었.


한여름에 시작한 그와의 연애는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이했다. 감흥 없던 첫 만남과는  달리 그는 꽤 맑고 순수한 모습이 있었고, 묘한 매력도 느껴졌다. 억지로 시작된 연애였기에, 그는 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는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남들이 한가한 시간에 일을 해야만 하는 공연 일의 특성상, 제대로 된 데이트보다는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았다.


그는 대학 시절 갑작스럽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외동아들이었다. 공부는 큰 노력 없이도 잘했고, 어머니가 슈퍼를 운영하신 탓에 과자와 청량음료로 끼니로 해결했으나 유전자의 힘인지 그의 키는 185cm까지 쑥쑥 자랐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가 배달하러 나가면 가게 의자에 묶인 채로 얌전히 혼자 놀기도 했을 만큼 잘 듣는 순한 아들이었다. 그가 했던 유일한 반항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직장을 잡은 정도였다고 했다.


공연업계에서 무대 안팎의 수많은 '문제아'들을 봐왔던 나에게, 그의 순수함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이야기는 내 결혼의 불행을 예고하는 단서였다. 겉모습 멀쩡했으나 영양이 부족한 나무처럼 속이 곯아 있었고, 어머니 뜻대로 살아온 탓에 스스로 인생을 헤쳐 나갈 힘이 부족했다. 주어진 상황을 잘 수용하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은... 가끔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부르는 노래와 썰렁한 농담이 그의 유일한 일탈인듯했다.


그와 추운 겨울을 맞이한 나는 청계산 집의 여러 문제로 인해 그의 집을 드나드는 횟수가 많아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어머니는 주말마다 서울로 올라와 아들의 집을 청소하고 반찬을 챙겨주고 있었다. 그때는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이 내 인생을 암흑으로 몰아넣을 것이라고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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