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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IM Nov 08. 2020

제주도 이야기


 흐릿한 사진을 좋아합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피사체의 윤곽이 명확하지 않아서, 그 구분되지 않는 모호함을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저를 나무랄 수도 있을 겁니다. 사진이란 존재를 기록하기 위한 매체인데, 피사체를 식별할 수 없는 흐릿한 사진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이지요. 만약 그런 분이 있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그 흐릿한 윤곽이야말로 피사체가 살아있음에 증거라고 말입니다. 그건 피사체가 움직임으로써만 남겨질 수 있는 기록이니까요.


세상에는 잘 알지 못해서 아름다운 것들이 있습니다. 타인의 삶이 제게는 그렇습니다. 그 삶을 곁에서 직접 본다면 아마 다른 의견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게 매력적인 삶이란 보통은 듣는 삶이겠지요. 체로 한 번 걸러져 다시 뭉뚱그려진, 그렇게 디테일은 무뎌지고 정확함은 퇴색된 누군가의 삶, 그것은 모르는 삶.


듣는 걸 좋아합니다. 듣고 멋대로 상상하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 상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걸 좋아합니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저를 포함한 14인의 다국적 작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제주 전역에서 선보이는 기획이었습니다. 독일의 세계적인 미술 행사 카셀 도큐멘타처럼 제주라는 한 지역 전체에서 그 지역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선보이는 전시. 이렇게 훌륭하고 멋진 전시에 저는 당연하게도 제 역량과는 관계없이 기획자와 친하다는 이유로 초청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구보다 낮은 자세로 열심히 임했습니다. 보통 낙하산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게 마련이지만 이렇게 눈치를 보고 더 열심히 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니까요.


이런 성격의 현대미술 전시는 현장성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작업을 그대로 가져오기보다는 장소에 맞는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는 게 기획에 부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신이 났었나 봅니다. 평소에는 하기 힘들었던 작품을 구상할 수 있을 테니까요. 처음 기획을 접하고 막연하게 들었던 생각은 ‘사람들을 만나야겠다’였습니다.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그들이 제주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듣고 싶었습니다. 불턱과 돌담 위를 걸어온 긴 걸음의 흔적들, 그곳의 바람과 노을처럼 강렬하거나 혹은 저미도록 아름다운, 아마도 멋질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나는 그저 듣고 기록할 것. 할 수 있는 한 가장 흐릿하게.


우연히 평대리 바닷가에 위치한 조그마한 국숫집을 찾았습니다. 그 식당은 해녀 가족이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가족분들 중 삼 대가 현직 해녀였습니다. 국숫집에서는 어머니와 따님 두 분만을 만났습니다. 식당은 손님들로 붐볐습니다. 바쁘신 듯했지만 조심히 인터뷰 요청을 부탁드렸고 물에 들어가는 것만 아니면 괜찮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해녀 협회 회장님을 할 만큼 유명한 어머님은 수많은 촬영 요청이 들어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은 몇 분 분량의 짧은 방송을 위해 여섯 시간을 물속에서 촬영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습니다. 외지인의 가벼운 관심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텐데, 죄송했습니다.


그래도 듣고 싶었습니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잘 못하는 성격이지만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제 작품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에서 조금은 이기적이고 싶었나 봅니다. 쭈뼛쭈뼛 약속 시간을 조율하고 다시 식당을 찾았습니다. 식당 내에 가족들만 쓰는 방으로 안내되어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따님은 서른이 넘어 처음 해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딸아이의 손을 잡고 돌아온 친정에서 어머님의 권유로 해녀 생활을 시작한 것이지요. 원래 물을 무서워했기에 해녀의 삶을 시작하는 건 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따님은 인터뷰 내내 웃었고 덤덤하게 이야기했지만 그 속에 고된 날들의 흔적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마냥 힘든 날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녹초가 된 날에도 집에 돌아와 딸아이를 품에 안으면 어느새 힘들었던 순간은 모두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67세이신 어머님은 달랐습니다. 그녀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대답했습니다. 물속에 들어가면 모든 슬픔이, 번뇌가, 고민이 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단 몇 시간이라도 모든 잡념이 온전히 사라진 하루, 듣고 있자니 그런 하루를 사는 느낌이 궁금해졌습니다. 식상한 질문이지만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여쭈었습니다. 만약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지금 무엇을 하겠느냐고. 그리고 저는 그녀의 대답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무엇을 하겠다는 말 대신, 더 이상 후회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누구나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하면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기 마련이지요. 너무 아쉬워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지금이어도 괜찮다는 말은 처음이었습니다. 그거면 충분했다 말하는 그 눈빛의 평온함 앞에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진 아이처럼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서 따님과 어머님에 관한 짧은 글 두 편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글들을 스케치하고 파일로 변환, 레이저 컷팅 공장에 넘겨 공정을 체크했습니다. 이렇게 허접한 글을 무려 철판에나 새기려 하느냐는 혹시 모를 사장님의 항의가 두려워 가장 얇은 두께로 철판을 주문하고 여분의 철판을 주문해 제 얼굴에도 깔았습니다. 운송을 위한 나무 상자를 제작하고 트럭을 예약, 설치를 위한 각종 공구와 짐을 챙겨 저는 다시 제주로 내려갔습니다.





제주시 구좌읍 평대리 32-1, 수풀이 허벅지까지 우거진 오랫동안 버려진 폐가. 처음 그 장소를 답사했던 건 여름의 어느날이었습니다. 지붕은 3분의 2 정도만 지어져 있었기에 나머지 3분의 1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폐가를 빼곡히 덮은 담쟁이 잎마다 물방울들이 맺혔습니다. 비에 젖은 돌은 검었습니다. 제주의 바람은 먼바다에서 불었고 무너져 내린 돌담 사이로 바람이 들자 곧 바다와 비, 그리고 검은 돌의 냄새가 났습니다.


총 나흘간 작품을 설치했습니다. 하루는 겨울처럼 추웠고 하루는 여름처럼 더웠습니다. 하루는 나무가 누울 듯 바람이 불었고 하루는 적막이 온종일을 감쌌습니다. 손을 다쳤고 공구를 잃어버렸고 중요한 부품을 서울에 두고 와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다 그렇듯 우여곡절 끝에 겨우 작품 설치를 끝마쳤습니다. 그렇게 개최한 전시는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오프닝도 열지 못했습니다. 벌린 규모에 비해 조촐하게, 조용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저런 함량 미달의 작품을 최대한 적은 수의 사람들만 보아서 다행인 걸까요? 물론 그렇긴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다른 작가들의 좋은 작품과 큐레이팅 팀의 멋진 기획 역시 드러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짧은 기간의 전시를 마쳤습니다. (참고로 제 작품은 여전히 그곳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해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두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같은 집에서 한 가족으로 비슷한 생활 양식을 이어간다고 그 삶이 같은 건 아닌 듯합니다. 두 분은 두 분 각자의 삶을 사셨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을 자신으로 온전히 받아들인 삶이라는 것. 비록 멀리 돌아 왔을지는 모르겠으나 결국은 자신을 찾았다는 것. 거기에 어떤 의심도 후회도 없다는 것. 제가 이런 작업을 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여길 만큼 그것이 멋진 삶이어서 감사했다고 꼭 전하고 싶습니다.


타인의 삶을 듣고 글을 쓰고 작품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이런 행위를 통해 제가 무엇을 추구하는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제 것이 아닌 삶에 이러쿵저러쿵 참여할 생각도 자격도 없으니까요. 그저 제게 이야기를 들려준 당신이 그 삶을 더욱 긍정할 수 있다면, 그래서 비록 한순간일지라도 조금 더 따뜻해진 마음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럼 좋겠습니다. 대단한 글도, 대단한 작품도, 대단한 작가도 아니지만 저는 이 작품을 위해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들였습니다. 그게 제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이지요. 누군가 당신 삶의 흔적을 그 정도의 시간을 들여 소중히 대했다는 것, 그 자체로 어떤 위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여전히 어설프지만, 그래도 조금은 이 흐릿함을 유지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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