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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IM May 19. 2020

화양연화

박.정.예


"있잖아요. 나 추워요."

"그럼 자신이 나무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나무는 춥지 않거든요."

그리고 당신은 웃었습니다.


"이런 남자 어때요? 제 남편이에요. 나 밖에 모르는 남자. 세상에 둘도 없이 착한 사람. 저 때가 아마도 우리가 만난 지 얼만 안 됐을 때였어요. 우리는 같이 명동을 걸었고, 바람이 좀 불었고. 그런데 제가 춥다는데 저렇게 말하는 거 있죠? 저런 거, 저렇게 엉뚱한 거, 그땐 저런 게 매력이었어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당신은 스물여섯 해를 한국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스물세 해를 미국인으로 살았지요. 미군 군의관이었던 남편을 따라 한국을 떠났고 머나먼 타국에서 당신의 가족을 위해 당신의 언어를 버렸습니다. 젊은 시절의 당신은 무용을 했었고 합창단의 단원이었으며 연기자를 꿈꾸었지요. 재능이 많았던 당신이었습니다. 방송사 공채 최종심에서 심사위원은 당신을 술집으로 불렀습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으니까요. 당신은 그 호출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항공사에 입사했습니다. 눈 한번 감으면 스타가 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욕심이 날 법도 한데 말이지요.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이 처음 제 작업실에 왔던 게 작년 이맘때였던 것 같군요. 시간 참 빠르지요? 당신은 고맙게도 제 작업실을 좋아해 주었습니다. 수업 시간이면 저 앞 시장에 들러 꼭 빵을 사 오곤 했지요.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을 옆에 두고 시장에서 파는 빵을 사서 검은 봉지에 들고 왔습니다. 그 사라다 빵은 샐러드라는 발음을 살리면 느낌이 안 나요. 한 팩에 3개가 들었던 그 빵. 고마웠습니다.


작년 이맘때 당신은 유기견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안락사 직전의 강아지를 한 마리 입양했지요. 외국인 신분이기에 집 문제로 고민을 했고, 합창단에 입단해 다시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외로워했지요.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대학생 따님과 함께 지낸다며 기뻐하던 당신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술 냄새를 풍기며 당신 곁으로 기어 들어오는 것만 빼고는 다 괜찮다고 말이지요. 그렇게 투덜대던 당신 얼굴에 환한 웃음을 나는 기억합니다. 4월의 벚나무는 어설픈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 게 도리이겠지요? 흐드러지게 피도록 그냥 두는 게 가장 아름다울 겁니다. 당신은 따님의 젊음을 그처럼 귀히 여겼습니다. 아직은 품을 파고드는 자식을 안고, 그 계절, 당신은 엄마를 떠나보냈습니다.


후암동 벚꽃



"엄마, 엄마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야?"


병상의 어머니께 당신은 이렇게 물었더랬지요. 아마도 당신 스스로는 그 답을 미리 정해 놓았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자식이 셋이나 있으니 아마도 그 행복의 순간은 자식들에 관한 것이라고 말이지요. 첫째 둘째 딸보다는 분명 막내아들에 관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내심은 당신이었으면, 엄마의 행복의 순간이 지금 곁에서 병수발을 들고 있는 둘째 딸 때문이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귀한 아들이었으니 기대는 하지 않았겠지요.

"아직도 기억나요. 우리 막내 소식이 들리던 날 온 집안에 바나나가 그득했었죠. 당시는 바나나가 정말 귀한 과일이었거든요. 그때 알았어요. 이 아이는 특별한 아이구나."

빤한 대답을 기대하면서도 당신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엄마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야?"

잠시 침묵의 초침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대답했습니다.

"너희 큰 외삼촌을 다시 만났을 때."



6.25 전쟁 통에 고아가 되어버린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의 고아원에서는 시간이 날 때면 아이들에게 합창 연습을 시켰지요. 방문자들을 위한 일종의 공연이었습니다. 어느 날 입양을 원하는 한 부부가 고아원을 찾았습니다. 고아원의 아이들은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부부를 위해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사실 부부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어린아이를 입양할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요. 합창이 시작되고 구석에서 노래를 부르던 한 소녀를 부인은 가슴에서 지우지 못했습니다. 소녀는 그때 이미 꽤 나이가 있었는데도 말이지요. 그렇게 당신의 어머니는 새로운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대부분 동화는 여기서 이렇게 결말을 짓겠지요. "그리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신은 이런 동화가 유치하다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물론 이런 끝맺음이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당신은 없었을 테니 그 잔인한 신이 택한 건 엄마 대신 당신이었는지도요. 어쨌거나 친딸처럼 아껴주시던 새 어머님이 세상을 떠난 건 당신의 어머니가 고등학교도 채 마치기 전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어머니는 친지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해 집을 나온 어머니는 그 길로 공장에 취직을 했지요.


"어린 시절 너무나도 멋진 노신사를 만난 적 있어요. 정말 저분이 내 외 할아버지야? 하고 감탄할 만큼 멋있는 분이었는데, 엄마는 그분이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했어요." 그렇겠지요. 그 멋진 노신사는 결국 당신의 어머니를 찾지 않았으니까요.


당신은 기억합니다. 이산가족 상봉으로 전 국민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던 날, 당신의 어머니가 TV에 나왔던 장면을. 당신의 어머니는 그곳에서 헤어졌던 오빠를 찾았습니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야 엄마는 당신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엄마의 오빠, 그러니까 당신의 외삼촌은 사실 별로인 사람이었다고요. 그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빠를 찾고 얼마 후 엄마는 양손 가득 보따리를 들고 시골을 찾았습니다. 오빠는 왜인지 데면데면했고 그렁그렁한 눈으로 돌아서는 여동생에게 그 흔한 쌀 한 봉지, 농작물 한 봉지 건네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오빠에게 무엇인 가를 받아본 적 없는 엄마는 오빠를 만나고 오는 길이면 장에서 직접 구매한 농작물과 쌀 포대를 이고 아빠에게 자랑했습니다. 우리 오빠가 챙겨준 거라고 말이지요. 그런 오빠에게 엄마는 항상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려울 때면 큰돈도 선뜻 내어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빠를 다시 만났을 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던 엄마. 곁에서 병수발을 들던 당신은 그런 엄마가 조금 야속했던가 봅니다.


이산가족 상봉, 정예 씨의 가족과는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빨갛게 부은 눈, 쌓여가는 휴지, 마치 TV 드라마 같다던 당신 가족의 이야기. 당신에게 눈물과 엄마는 원래 한 단어였던 듯합니다. 처음 당신과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도 돌이켜보면 작년 이맘때였습니다. 막 수업을 시작한 때라 그 시간 수강생이라고는 당신밖에 없었지요. 그러다 보니 주거니 받거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당시에도 나는 철없는 아들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만, 문제는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것이지요. 그런 주제에 걱정은 많아서 인생 선배인 당신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당신은 그런 내게 당신 어머니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암 선고를 받고 겨우 3개월을 더 살았던 당신의 어머니. 정상 세포마저 파괴해버리는 독극물을 치료랍시고 입에 쑤셔 넣고는 당신의 어머니는 웃었습니다. 구토를 하고 돌아서서 별것 아니라는 듯 웃었습니다. 너무 힘에 겨워 치료를 중단하자고 말하던 순간에도 당신의 어머니는 웃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내게 해 준 말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우디, 부모님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 줄 알아요?"

"글쎄요....... 뭔가요?"

"자식한테 짐이 되지 않는 거예요."



이제 홀로 남은 아버지를 당신은 종종 찾아뵙습니다. 전화 통화도 자주 하고 여자 친구 좀 사귀라며 은근히 떠밀기도 합니다. 항상 춤을 추던 아빠, 멋쟁이 아빠, 그렇게도 엄마의 속을 썩이던 아빠. 엄마는 그 많은 동생들을 데리고 시골에서 상경해 단칸방 생활을 하던 아빠와 결혼했습니다. 북적이는 단칸방에서 엄마는 아빠의 동생들까지 모두 뒷바라지를 했었지요. 엄마는 그 시절이 좋았다고 합니다. 진짜 당신의 가족이 생겨서 엄마는 좋았다고 합니다. 그런 내조 덕에 아빠는 사업으로 성공했고 가족에게 윤택한 삶을 제공했지만 엄마의 속만은 항상 썩였지요. 당신은 엄마의 헌신과 아빠의 재능을 정확히 절반씩 물려받았나 봅니다.


당신의 '미국식 따님'은 아마도 당신의 교육방침 덕이겠지요. 아직도 순수하고 착한 따님은 모든 이야기를 당신에게 스스럼없이 합니다. 심지어 남자 친구와의 내밀한 이야기마저도 거리낌이 없습니다. 시커먼 속내가 훤히 보이는 그 사내놈 이야기에 당신은 울화가 치밀지만 결코 내색 없이 친구처럼 들어줍니다. 밤새도록 술을 먹고 잔뜩 취한 딸이라도 품에 안아야 안심이 되는 당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사랑한다는 그 말, 사랑, 어쩌면 감정의 배설에 불과한 그 말조차 딸을 볼 때면 여실히 이해가 되는 당신. 그런 딸의 앞길이 평안하기만을 기도하는 당신. 어쩌면 당신의 목표는 당신의 엄마처럼 만은 되지 않는 것이었던가 봅니다. 항상 하지 말라고만 하셨던 당신의 엄마였잖아요? 그들도 당신의 앞길이 평안하기를 바라서 그랬을 터인데 말이지요. 그런 엄마를 피해 당신은 스물여섯에 당신의 언어를 버렸으니까요. 그래서 당신은 "하지 마"라는 말만은 딸에게 하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만약 당신의 어머니가 소설가였다면 박경리 같은 분이지 않았을까 잠시 생각했습니다. 당신 어머니의 삶, 피붙이도 없었고 연애다운 연애도 없었던 삶. 신혼이라고는 단칸방에서 들었던 대식구 수발이 전부였던 삶. 자신을 버려 가족을 꾸렸던 삶, 그리고 이어진 당신의 삶, 들려주어 감사했습니다. 당신의 엄마는 엄마로서만 살았습니다. 그래서 엄마의 최고의 순간은 엄마의 가족, 엄마의 오빠를 만났을 때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오빠가 아무리 별로인 사람이었다고 한들 그게 뭐가 대수였겠습니까. 오빠는 삶에서 유일하게 엄마가 아닌 엄마를 상기시키는 존재였을 테니까요. 그 엄마의 분신으로 이제 당신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도 이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당신의 분신이 있습니다. 당신만을 사랑해 주는 남편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곳에서의 이방인의 삶을 뒤로하고 다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당신이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외국인으로 분류된 당신은 이제 이곳에서조차 이방인입니다. 이중 이방인. 그렇게 익숙한 향을 풍기는 낯선 이 땅에서 당신은 다시 합창 단원이 되었고, 엄마의 마지막을 배웅했으며, 홀로 남은 아빠의 말동무가 되었습니다. 애지중지 키운 막둥이 동생은 엄마의 임종도 못 지켰으니 세상살이 참 아이러니하지요. 당신은 그토록 부정하던 부모의 방식을 거부하고 따님을 훌륭히 키워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당신으로 오롯이 존재했던 그 시절마저 부정할 수는 없었던가 봅니다. 당신의 어머니가 외삼촌과의 재회를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던 것처럼 말이지요. 아마도 그래서 당신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로서의 당신이 아닌, 누군가의 부인으로서의 당신이 아닌, 그저 당신으로서의 당신을 찾기 위해서 말이지요. 그래서 병상의 엄마는 당신을 그토록 응원했던가 봅니다. 스물여섯에 버리고 떠났던 당신의 언어를 다시 찾으라고 말이지요.




당신은 울었습니다. 이제 또다시 시작하는 당신의 삶 앞에서

그 낯선 자유의 압도되어 당신은 소녀처럼 울었습니다.

아니 원래 소녀였으니까,

당신은 그냥 울었습니다.


레이첼, 한국 이름 박 정 예. 너무도 단아한 이름.

그것은 당신의 삶처럼. 아니 당신의 삶이 아닌 것처럼.


"난 엄마가 한국에 있으면 좋겠어."

"왜?"

"여기선 엄마가 할 수 있는 게 많잖아."



이 자리를 빌려 정예 씨에게 정중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당신의 인생을 그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어서 말이지요. 고맙습니다.







나는 한 사람의 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초상화를 그립니다. 앞으로 할 수 있는 한 꾸준히 해볼 요량입니다. 당신 삶의 이야기는 그림과 글, 그리고 유튜브 영상을 통해 남겨질 예정입니다. 물론 민감한 이야기는 혼자 듣겠습니다. 얼굴 공개를 꺼리시는 분들은 미리 말씀해 주시면 영상 또한 편집하겠습니다. 완성된 그림은 구매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어쨌거나 당신의 인생을 그리고 싶습니다. 가볍게 노크해 주세요.


Link: instagram@woodyplanb




- 작가 김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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