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 씨 이야기
밤의 달리기를 좋아합니다. 후암동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해 남산 도서관을 거쳐 하얏트 호텔까지,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소월길 루트를 좋아합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때로는 남산 경사로를 달려 서울타워까지 오르기도 합니다. 남산 정상에서 보이는 서울은 반짝이는 밤의 보석입니다. 다만 이렇게 달리고 나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모자란 듯하지만 주로 소월길만을 달리고 끝을 냅니다. 달리면서는 꼭 음악을 듣습니다. 보통은 가리지 않고 듣지만 달릴 때만큼은 강한 비트를 찾습니다. 두 달여 전 입은 부상으로 한동안은 달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슬슬 다시 뛰어볼까 합니다.
민석 씨는 21살입니다. 대단히 똑똑한 친구입니다. 영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공대를 입학 후 다시 고려대 의대에 진학했습니다. 아무래도 수능만 잘 보면 되는 저희 세대와는 다르게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학원을 다녀야만 했던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만, 고등학교의 수업 진행 자체가 선행을 전제로 하다 보니 저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당시 고액의 학원비가 부담스러웠던 민석 씨는 직접 원장 선생님께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성공하면 꼭 갚겠으니 장학금으로 다닐 수는 없는지 물었다더군요. 감사하게도 원장 선생님 본인의 사비로 민석 씨의 학원비들을 대납해 주었다고 합니다. 민석 씨는 주변의 이런 지원을 잊지 않고 재능은 있지만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에게는 무료로 과외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살인적인 과외 스케줄을 소화하며 본인의 학비와 생활비는 물론, 부모님께 용돈까지 드리고 있습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 내가 받은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길 민석 씨는 소망하고 있습니다. 민석 씨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은 아니라는 걸요.
민석 씨가 물었습니다. "작가님은 재능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세요?" 나는 천재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그런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재능이 반드시 축복인 것인지는 모르겠다고요. 그리고 이제는 뭐가 재능인지 더 이상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재능을 확신했던 많은 친구들이 작가 생활을 버티지 못해 다른 길로 떠났거든요. 어쩌면 버티기를 가능하게 하는 집안 배경이야말로 진짜 재능 인지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민석 씨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어설픈 재능"이라 불렀습니다. 틀어준 비디오만을 보고 영어로 말을 하는 아이, 그 "어설픈 재능"에 부모가 가졌던 기대, 그 모든 게 과연 축복이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더군요. "어설픈 재능"이 빚어낸 부모님의 마이너스 통장과 주위의 당연한 기대, 그리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어쩌면 지금의 민석 씨를 구성하는 작은 입자들.
언젠가 특목고에는 집안 배경이 좋은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큰돈을 쓰는 친구들 사이에서 민석 씨는 기죽지 않으려 애썼겠지요. 그 "어설픈 재능"덕분에 말입니다. 나 역시도 그 "어설픈 재능"을 믿고 여기까지 왔기에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평범한 집안에서 영국으로 유학까지 보낸 건 그 "어설픈 재능"을 믿어준 부모님의 큰 결정이었습니다. 비싸기로 소문난 런던의 유학생들은 꽤나 사는 집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치기 어린 마음이었을까요? 나는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기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먼저 그 친구들에게 밥을 샀고, 내가 먼저 술을 샀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정말 돈이 없는 사람은 제 입으로 돈이 없다고 말을 할 수 없다는 걸요. 되려 돈이 없다고 당당히 말하는 사람들은 그 반대일 경우가 많다는 걸 말이지요. 그 시절의 나는 우아한 백조 같았습니다. 기품 있게 떠있기 위해 수면 아래에서 바둥거리는 가련한 존재들.
나에게는 민석 씨와 비슷한 친구가 있습니다. 시골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함께 나온 친구입니다. 나는 그 친구가 공부를 잘한다는 건 알았지만 수능 모의고사에서 전국 2등을 하는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공부를 한다고 티를 낸 적이 없었거든요. 학원은 다닌 적도 없고 중학교를 대표했던 농구선수에, 연기 자욱한 당구장 모임에 빠지지도 않던 녀석이었습니다. 나는 심지어 스타크래프트조차 그 친구를 이겨본 적이 없었습니다. 스스로 놀림거리가 되면 되었지 남을 무시하는 농담은 입에도 댄 적 없는 친구였습니다. 신은 때로 불공평합니다. 그 친구는 잘 생기기까지 했었으니까요(이 부분만은 과거형입니다. 지금은 살찐 돼지...... 미안하다). 한 번은 고3 시절이었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왜 의대를 지원 안 했는지.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있었으니까요. 그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해. 그런데 나는 만들어진 리모컨을 사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나는 그 리모컨을 내 방식으로 만들어 제공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아마도 내가 알아듣기 쉽게 풀어서 설명한 것 같았습니다.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그걸 받아쓰는 사람. 본인은 전자가 되고 싶다던 친구. 그 친구는 서울대 공대에 진학해 애플의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부끄러움에 며칠 밤을 설쳤습니다.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는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저런 친구 옆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던 내가 미친 듯이 부끄러웠습니다. 지금도 간혹 주저앉고 싶을 때면 종종 그때를 떠올립니다. 나는 그 시절의 한심함을 평생 갚아가는 셈이지요. 지금 내 앞에 앉은 아직은 앳된 얼굴의 민석 씨는 나의 그 시절을 돌아보게 합니다. 생각해보니 제 친구도 무료 봉사를 했었군요. 병역 특례로 일찍이 삼성전자에 입사한 친구는 매일 야근으로 번 수당으로 저와 친구들의 클럽 비를 내주었습니다. 여전히 부끄럽군요.
어느 여름밤이었습니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숨통을 조여오던 밤, 나는 무작정 소월길을 달렸습니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그리고 여전히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내 인생으로부터 마치 도망이라도 가듯 그 길을 내달렸습니다. 나는 나의 10대를 경멸했습니다. 나의 20대를 증오했고, 나의 30대는 현재 진행 중이니 언젠가 지나고 평가하겠지요. 물론 긍정적인 평가는 내리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친구에게 한없이 부끄러웠던 그때의 나를 후회하며 지금껏 달렸습니다. 도대체 그렇게 밖에 살 수 없었던 것인지 수 십 번을 되물으며 달렸습니다. 그러면서도 내 상상 속의 미래, 그 속에 내 멋대로 꾸며낸 나의 모습에 흠뻑 젖어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나는 과거의 회한과 미래의 희망 위를 달려왔을 뿐입니다. 결국 한 번도 지금을, 나의 현재를 달려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고쳐보려고도 했으나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나는 몽상가를 직업으로 택한 사람이니까요.
21살 먹은 친구가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는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친구의 웃음이 너무 슬펐거든요. 예의가 발랐고 정중했으며, 물론 거기에는 밝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웃음은 사회생활에 다듬어진 어른의 웃음이었습니다.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는 것, 법의학자, 효도, 봉사, 사회 환원, 민석 씨의 입에서 나온 단어들. 지금 민석 씨는 과거의 기억으로 미래를 사는 듯 보였습니다. 민석 씨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지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있나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금 당신의 젊음이, 어쩌면 치기 어리고 어쩌면 어리석을지도 모를 그 젊음이 얼마나 눈이 부신지 알고 있나요? 당신은 당신의 지금을 달리고 있나요?
언제나 과거만을 달려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런 나조차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개한 벚꽃 구름이 온 산을 뒤덮던 밤, 나는 흩날리는 벚꽃을 맞으며 나의 소월길을 달렸으니까요. 생명이, 그 살아 있음이, 삶의 뜨거운 열기가 위엄을 뿜어내던 여름밤, 토해내던 열기가 꼭 내 젊음의 증언 같아서 마음으로 감사했던 그 여름밤, 나는 그 밤, 소월길을 달렸으니까요. 가을이면 온 바닥에 노란 융단이 깔리고, 나는 그런 밤이면 가을 빛에 취해 고약한 은행 냄새도 맡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샛노란 융단을 밟으며 아름다운 남산 길을 끝까지 달렸으니까요. 공기가 너무 차가워 코끝이 빨개지던 겨울밤도, 나는 겨울 산의 쓸쓸한 정취 아래 그 밤을 달렸으니까요. 남산의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나는 분명 느끼고 달렸으니까요. 나는 결국 지금을 달렸으니까요.
남산의 둘레길, 소월(素月), 시인 김정식의 호를 딴 운문의 길. 한문을 찾아보았습니다. 이 해석이 틀리지 않았다면 소월은 꾸밈없이 수수한 달. 강변에 살자던 시인의 이름을 서울을 굽어보는 산 길에 붙였을까만, 그 이름만큼이나 시적인 이 길을 나는 좋아합니다. 아마도 이 길을 달리던 나의 모든 계절을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부디 민석 씨도 그러하기를 마음을 다해 바라봅니다.
이 자리를 빌려 민석 씨에게 정중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당신의 인생을 그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어서 말이지요. 고맙습니다.
나는 한 사람의 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초상화를 그립니다. 앞으로 할 수 있는 한 꾸준히 해볼 요량입니다. 당신 삶의 이야기는 그림과 글, 그리고 유튜브 영상을 통해 남겨질 예정입니다. 물론 민감한 이야기는 혼자 듣겠습니다. 얼굴 공개를 꺼리시는 분들은 미리 말씀해 주시면 영상 또한 편집하겠습니다. 완성된 그림은 구매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어쨌거나 당신의 인생을 그리고 싶습니다. 가볍게 노크해 주세요.
Link: instagram@woodyplanb
- 작가 김성우-
#후암동#초상화#이야기#김성우작가#후암동작가#woody#그림#예술#미술#현대미술#회화#유화#후암동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