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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KIM May 09. 2020

2m의 거리

상경 씨 이야기


 

 빛에도 무게가 있다는 걸 아시나요? 쏟아져 내리는 빛을 받으며 저도 모르게 눈을 감는 건, 그 빛의 무게가 눈꺼풀을 눌러서이기 때문입니다. 고백하지만 나는 그 무게를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그런데 아마도 내 존재의 모순 때문이겠지요. 나는 내가 사랑하는 빛만큼이나 그 빛에 저항한 사물의 그늘 역시 사랑합니다. 빛과 어둠을 모두 사랑하는 것. 알고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에서 그러더군요. 둘 다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요. 불일치와 모순의 조합, 아마래도 그게 나인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구석진 자리를 좋아합니다. 되도록 옆자리가 비어 있는 테이블을 선호합니다. 홀로 커피를 마시는 작은 순간을 고대하고, 조용히 와인잔을 드는 나만의 시간을 기대합니다. 나는 혼자였으면 합니다. 그런데 내 존재의 모순은 나를 그렇게만은 내버려 두지 않더군요. 나는 나의 고독만큼이나 당신과의 대화를 고대합니다. 어느 기분 좋은 저녁, 와인잔을 그득 채울 때 나는 반드시 수다쟁이이어야만 합니다. 내 어쭙잖은 유머에 당신이 활짝 웃어준다면 좋겠습니다. 내가 모순적인가요? 가까이 있어달라고, 또 오지 말아 달라고 동시에 부탁해서는 안 되는 건가요?




2m의 사회적 간격이 화두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덕분이지요. 그런데 혹시 당신은 내가 이 간격을 항상 지켜왔음을 알고 있나요? 그 간격은 당신의 비말이 내게 닿지 않을 거리입니다. 그리고 나의 비말이 당신에게 닿지 않을 거리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삶에 얼룩을 묻히지 않을 거리입니다. 나는 내 손으로 막대를 주워 들고 주위를 빙 둘러 반경 2m의 원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원을 넘어서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 원의 반경은 내 삶의 중력장입니다. 그 원의 바깥에서 나는 충분히 당신을 밀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원의 내부로 들어서면 내 의지는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곳은 오직 나의 슬픔과 한없는 나약함, 당신 살갗의 그리움만이 작동하는 거리입니다. 들어선 모든 것을 내 쪽으로 당겨버리는 중력의 거리에서 나는 당신을 밀어낼 힘이 없습니다.


간혹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이 원의 반경 안으로 불쑥 넘어오는 이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생경함이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순식간에 허물어져 버린 나의 마음이 내 인간성의 증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간격 내에서만 볼 수 있는 나의 모습이 있습니다. 나 자신조차 부끄러워하는 나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 모습을 들켜버리고 나면 나는 당신과는 눈도 마주칠 수 없게 되어버리더군요. 보여줄 준비가 안 된 상대에게 들켜버린 내 비루함처럼 자격지심을 자극하는 것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그들을 떠났습니다. 내가 떠나면서도 그렇게 들어선 당신들이 나를 휘젓고 떠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아주 다른 말은 아니거니와 그 편이 마음도 편하니까요.


인생이란 그 간격을 적절히 유지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탁드리겠습니다. 혹시 내가 예민하더라도 조금 이해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나와 당신 사이의 거리를 잊지 않기 위함이라고 그렇게 말이죠. 내 손으로 막대를 주워 들고 주위를 빙 둘러 그린 그 반경 2m의 원을 나는 넘어서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안위와 나의 평안을 위함입니다. 나는 기쁨 앞에 허무하고 슬픔 앞에 덤덤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나의 모습이 당신께는 그리 보였으면 합니다. 내 맥박의 요동치는 두근거림을 당신이 들을 수 없는 거리에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진흙처럼 튀는 내 남루함이 당신에게 얼룩을 남기지 않을 거리에서 나는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나는 당신을 당신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슬픔의 반경 밖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게 나의 2m입니다. 슬픔과 고단함으로 빚어진 나의 심장이 안전하게 뛸 수 있는 거리.


그러나 오해는 마세요. 내게 오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 거리를 지키며 충분히 즐거울 수 있잖아요? 2m의 간격은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듣기에,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도달하기에 충분한 거리랍니다. 나는 그저 우리가 서로에게 예의 발랐으면 좋겠습니다. 내 눈의 슬픔을 당신이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나도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당신의 슬픔을 모두 감싸줄 수 있을 것처럼 거만하게 행동하지 않겠습니다. 노크도 없이 당신의 원 안으로 불쑥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약속은 그것뿐입니다. 나는 단지 우리가 우리 사이의 사회적 거리를 잘 유지했으면 할 뿐입니다. 내가 너무 이상한가요?


이 세상에는 나와 닮은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상경 씨에게 이 이야기를 선물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정중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당신의 인생을 그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어서 말이지요.






저는 한 사람의 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초상화를 그립니다. 앞으로 할 수 있는 한 꾸준히 해볼 요량입니다. 당신 삶의 이야기는 그림과 글, 그리고 유튜브 영상을 통해 남겨질 예정입니다. 물론 민감한 이야기는 저만 듣겠습니다. 얼굴 공개를 꺼리시는 분들은 미리 말씀해 주시면 영상 또한 편집하겠습니다. 완성된 그림은 구매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어쨌거나 당신의 인생을 그리고 싶습니다. 가볍게 노크해 주세요.

Link: instagram@woodyplanb


- 작가 김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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