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DYKIM May 09. 2020

초상화를 그립니다

유리 씨 이야기


골목과 골목을 모아 되는대로 엮어 붙이면 후암동이 됩니다. 얼키고설킨 거미줄 같은 골목길은 남산 자락의 정체성이죠. 동네에 들어서면 이리저리 꺾인 골목길이 사방으로 뻗쳐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선가 모여 작은 교차로들을 형성하지요. 횡단보도도 없고 신호등도 없지만 자율질서로 유지되는 곳, 아침이면 동네 어르신들이 둘러앉아 세상 이야기를 하는 곳이지요. 어림잡아 수 십 개의 동네 교차로 중 가장 유명한 교차로가 여기 있습니다. 물론 가장 유명한 교차로라는 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그 아래로 곧게 뻗은 골목을 따라 20m만 내려가면 제 작업실이 있거든요. 혹시 우리 집 근방 교차로가 더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후암동 주민분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타오르는 분노를 마음속으로 눌러 주십시오. 그런 의견 따위는 듣고 싶지 않으니까요.



작업실 맞은편으로 놀이터와 양로원이 함께 자리한 꽤 넓은 공간이 있습니다. 어지간한 건물보다 높은 나무들로 둘러싸여 작은 공원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골목길에 자리한 제 작업실은 1층의 절반이 통유리로 되어 있지요. 저는 그 창으로 쏟아져 드는 햇살과 창 너머 골목의 풍경을 매우 좋아합니다. 작업실 주제에 통 창이라니 꼴에 너무 멋을 부렸다고 욕하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참에 이것 하나는 분명히 말씀드려야겠군요. 꼴에 멋부리는 게 제 취미입니다. 저는 종종 작업실에 앉아서 쏟아지는 햇살의 텍스처로 계절의 바뀜을 느낍니다. 조금 오그라드는 멘트입니다만, 어쨌거나 오늘 햇살의 식감은 약간 노릇한, 아마도 봄과 여름 사이 어디인 듯합니다. 5월인데 당연한 소리 마라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는군요. 원래 사는 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어쨌거나 갓 내린 커피 한 잔과 이 정도의 햇살이면 훌륭하다고도 할 수 있는 하루의 시작입니다. 코로나가 전국을 강타하기 이전의 풍경이긴 합니다만, 오전 시간이면 주황색 원복을 입은 유치원 아이들이 일렬로 지나가곤 했습니다. 옆 친구의 손을 꼭 잡고 끝없이 재잘대는 아이들의 행렬이 햇살 속으로 멀어지는 풍경은 뭔가 비현실적이기까지 합니다. 통 창이라는 영사기를 틀어 놓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투영하는 것 같거든요. 물론 너 따위가 저렇게 귀여웠을 리 없다는 비판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게 느껴집니다. 그런 타당한 의견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뛰어노는 아이들


생각해보니 유리 씨는 해가 진 저녁에만 제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그 시간대에 저에게 유화 수업을 받았거든요. 처음으로 후암동에 왔던 날 유리 씨는 10분 동안 주차할 곳을 찾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전형적인 교포 발음으로 스튜디오에 첫발을 디디며 주차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오늘은 유리 씨가 처음으로 밝은 대낮에 후암동을 찾은 순간입니다. 유리 씨가 이곳에 다닌 지도 벌써 몇 개월은 되니, 그렇다면 상당한 시간을 보낸 이곳에서 햇살을 처음으로 맞는 것이죠. 나름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유리 씨가 감격 어린 목소리로 제게 말했습니다. "낮에도 주차가 안 된다!" 난감합니다.



한낮의 후암동을 처음 보는 유리 씨는 상당한 감동을 받은 듯합니다. 고즈넉한 동네 분위기가 너무 좋다며 감탄을 마지않더군요. 주차를 하고 걸어오는 길에 작업실 옥상의 설치된 야외용 천막도 처음 본 듯했습니다. 날이 좋은 날 거기서 친구들과 파티를 하냐며 놀라워했죠. 그 목소리의 톤이 생각보다 높아서 저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다고 수줍게 대답했습니다. 옥상에서 파티를 벌이는 제가 마약사범처럼 느껴졌거든요. 심지어 작업실 앞에 놀이터가 있는 줄도 몰랐다는 사실에 이르러서는 저도 조금 놀랐습니다. 생각해보니 밤의 골목길이란 초행자에게 있어 그저 위험한 길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변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단적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겠죠. 바뀐 것이라고는 햇살 하나인데 인간의 인식은 같은 공간을 전혀 다른 세계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경험을 통해 외부 세계를 인식한다는 게 철학에서 말하는 유물론적 인식론입니다. 마르크스 이론의 뼈대이니 이런 이야기를 했다가는 빨갱이로 잡혀갈지 모르겠군요. 어쨌거나 해골에 고인 물이 너무 달콤해 돔 페리뇽 같았다던 ㅇㅇ대사 님의 주옥같은 말씀이 떠오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화가 나기 시작하더군요. 그런 좁은 시각 덕에 주차를 못하는 건 결국 당신의 문제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 울컥했지만 꾹 참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햇살이 좋으니까요.


작업실 창



언젠가 유리 씨는 제게 핸드폰에 저장된 따님의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유리 씨의 아버지는 영국인으로 따님은 엄마와 아빠를 반씩 닮은 귀여운 아이입니다. 너무 귀엽지 않냐며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따님에 관한 따스한 일화들을 제게 말해 주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려는데 얘가 초상권 침해라고 못 찍게 한다!" 결국 그날 유리 씨는 따님을 캔버스에 옮기기로 결심했습니다. 결의를 품고 비장한 자세로 붓을 들었죠.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10분이 지나 못 그리겠다고 화를 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역광을 받아 얼굴 전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초보자에게는 쉽지 않은 사진을 들고 왔거든요. 그 그림은 지금도 미완성으로 남아 제 작업실 한구석에 있습니다. 유리 씨를 볼 때면 저 그림 빨리 해결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그럴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하죠. 대체 저 그림은 어떻게 할 거냐고 제가 다시 묻습니다. 그럼 "나는 저 그림 속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제게 화를 내죠. 악순환입니다. 정말이지 제가 봐도 누구인지 모르겠거든요.



유리 씨는 영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결혼 후 아이를 키운 곳은 싱가폴입니다. 지금 유리 씨의 따님은 유리 씨가 어린 시절 다녔던 영국의 사립학교를 대를 이어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따님이 설명하는 학교란 대충 이런 곳이더군요. 문이 위로 열리는 차에서 내린 영국 상류층 아이들과 명품으로 감싼 중국 갑부 아이들이 절반을 차지하는 학교. 그런 바보들 틈에서 재미있게 다닌다는 따님의 설명이 귀엽습니다. 어쨌거나 모교가 정말 모교가 된 셈이죠. 엄마가 다니던 학교를 딸이 다니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멀리 떨어진 딸과의 유대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는지 궁금해져서 물었습니다. 관계 유지를 위해 매일 따님과 통화를 한다고 하는데 정말 대단한 모성애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보통은 무슨 이야기를 하냐고 묻자 학교에서 뭘 배웠는지 묻는다고 하는군요. 정말 듣기만 해도 멀리하고 싶은 엄마입니다. 가끔 따님이 수업 내용을 횡설수설하며 이 모든 것이 선생님이 이상해서라는 핑계를 댄다고 합니다. 그 말을 하는 유리 씨의 격노가 걸러짐 없이 전해져 잠시 붓질을 멈추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이전의 주차 문제와 따님을 그린 경험으로 짐작건데 뭔가 비슷한 지점이 있는, 어쨌거나 귀여운 모녀입니다. 모쪼록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길 빌겠습니다.



작업실에서



유리 씨는 취미로 명리학을 공부합니다. 한 학기를 수강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잠시 휴강했다며 아쉬워합니다. 영어를 그렇게 섞어 쓰면서 지금 사주팔자를 논하냐고 따지려다 참았습니다. 오늘은 햇살이 좋으니까요. 무려 한 학기를 수업한 전문 식견을 바탕으로 제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제 사주를 봐주었습니다. 저는 쇠이니 불을 만나면 변한다고 하더군요. 쇠는 불에서 담금질이 되어야 모양이 형성된다나요? 어느 정도 열이 있어야 쇠가 유연해지기에 추위보다는 따뜻한 날씨가 제게 맞다 하였습니다. 그림을 그리며 내색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실은 마음속으로 무릎을 탁 쳤습니다. 훌륭하다!라는 깨달음이 저를 강렬하게 스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따뜻한 날씨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맞는 것인데 명리학은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 훌륭한 학문이었던 것입니다. 아닌가요? 죄송합니다.


표정이 풍부한 사람이 있습니다. 유리 씨가 그렇지요. 그리고 그 풍부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냅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그녀의 얼굴에 새겨져 있습니다. 특히 입 주변의 근육 변화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것 같습니다. 저는 약간의 진지함에 섞인 유쾌함, 곧 폭발하기 직전의 장난기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유쾌함과 대책 없는 솔직함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유리 씨에게 정중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당신의 인생을 그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어서 말이지요. 고맙습니다.





저는 한 사람의 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초상화를 그립니다. 앞으로 할 수 있는 한 꾸준히 해볼 요량입니다. 당신 삶의 이야기는 그림과 글, 그리고 유튜브 영상을 통해 남겨질 예정입니다. 물론 민감한 이야기는 저만 듣겠습니다. 얼굴 공개를 꺼리시는 분들은 미리 말씀해 주시면 영상 또한 편집하겠습니다. 완성된 그림은 구매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어쨌거나 당신의 인생을 그리고 싶습니다. 가볍게 노크해 주세요.


Link: instagram@woodyplanb




- 작가 김성우-






작가의 이전글 초상화를 그립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