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 요양원 어르신들 위해 음악 강의 해주실 수 있나요?”
엄마가 계신 요양원의 직원분이 전화를 하셨다. 치매를 앓는 노인분들에게 어떤 강의를 해야할까. 나는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차라리 작은 음악회를 하면 어떨까요?”
나는 음악하는 주변 친구들과 짧은 음악회를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제안을 했다. 어르신들도 그걸 더 좋아하실 것 같았다.
직원분은 클래식 음악회를 한다는 나의 제안에 매우 기뻐하셨다. 나는 대학 때 종종 한 결혼식 반주를 떠올렸다. 하객들이 모이기전, 바이올린, 첼로하는 친구들과 미뉴엣이나 왈츠같이 듣기 편한 소품들을 연주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냥 유명한 소품 몇 곡 하면 되겠지. 친구 몇명 섭외해서 내가 반주하면 되지 뭐…
그러나 항상 머릿속에서는 쉬운 일이 실제 하려면 일이 많아진다. 일단 무료 봉사로 연주해 줄 음악가를 찾아야했다. 첼로를 하는 친구는 일본 투어 연주를 가고, 바이올린 하는 친구는 시간이 안 맞았다.
결국 건너 건너 네 명의 연주자를 섭외했다. 바이올린, 플루트, 첼로, 성악
나와 잘 아는 분들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알바로 결혼식 반주를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었다. 봉사를 하겠다고 나선 연주자들과 연습을 하는데 내가 제대로 연주를 못 하면 너무 죄송하고 창피하다.
나 혼자 7-8곡을 준비하려니 자잘하게 연습할 게 꽤 많았다. 그리고 큰 문제가 생겼으니, 바이올린-플룻 듀오팀이 피아노 반주악보를 구할 수 없다며 나에게 악보 편집을 부탁한 것이다. 나는 음악사 전공이지 작곡과 출신이 아닌데 악보 편집이라니.. 흑흑 악보 편집만 사흘이 걸렸다.
그리고는 연습 또 연습
보통 연주자들이 모여서 연습을 같이 하는데 각자 가능한 시간이 달라 내가 연주자들을 각각 만나야 했다. 더구나 요양원에 피아노가 없어서 키보드로 연주해야했다. 집에 있는 무거운 키보드를 들고 가서 반주를 했다. 피아노와 키보드는 터치감이 너무 달라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10일만에 모든 걸 준비해서 연주를 해야 했다. 고 3 때보다 연습을 더 열심히 하였다. 근육통과 두통으로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오랫만에 연습을 하고 합주를 하니 즐거웠다. 학생 때 추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음악회 하루 전날 밤,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다짐했다.
너무 흥분하지 말 것
내가 내는 소리를 귀담아 들을 것
내일 할 연주에서도 인생에서도 그리 하자 조용히 다짐했다.
다행히 연주는 대 성공이었다. 할머니들은 강당에 모여 숨죽여 우리의 연주를 들으셨다. 노사연의 <만남>을 연주할 때는 너무 좋아서 바이올린 반주에 맞춰 노래도 크게 부르셨다.
그리고 엄마.
나는 엄마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딸이 기획하고 무대에 올린 음악회를 보며
엄마는 흐뭇함을 넘어서
약간은 경건해보였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내가 너를 키웠구나
네가 음악가가 되어 우리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구나
엄마의 표정을 찍은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려고 한다. 그리고 무대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던 순간의 사람들의 호응과 따뜻한 반응도 기억 속에 꼭꼭 담아두려고 한다
우리에게 감동적인 무대를 보여주신 바리톤 김태일님의 <my way>
https://youtu.be/K4xvwwKbCbM?si=85ROWwvWKQ0cn3H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