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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구 Jan 20. 2024

“누구도 고귀하지 않다”

효구 비평


본 글은 반연간 <시인들> 2024년 봄호에 수록된 계간평입니다. 



1. 높고 아름다운 힘



베르타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비나 쪽을 바라보며, 참 고귀하지를 않구나 이 사람들은, 하고 생각했다. 분명 자신도 고귀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고귀하지를, 전혀 고귀하지를 않다고 베르타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같은 생각을 반복했다. 



베르타는 가을 저녁의 찬 기운에 오싹함을 느꼈다. 자신이 왜 그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왔는지가 분명히 이해되었다. 참 고귀하지를 않다, 전혀 고귀하지를 않구나 우리는…… …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 



- 권여선, 『각각의 계절』, 「하늘 높이 아름답게」 中



 교보문고에서는 2023년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여섯 편을 발표했는데, 그 중 1위가 바로 권여선의 『각각의 계절』이다. 평소 그만의 풀이 방식으로 인간의 본질을 관통하는 깊은 여운의 이야기를 남겨왔던 권여선을 향한 독자들의 애틋함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가 2023년 봄에 발간한 『각각의 계절』에는 이 세상에 수 없이 만연한 ‘관계’, 그 피할 수 없는 연속의 고리 안에서 사람은 어떻게 그것을 이어나가는가에 대해 날카로운 관찰과 유심한 시선의 이야기들이 있다. 작가는 냉정하도록 정직하지만, 동시에 인간적인 자세로 사연들을 끌어낸다. 여기서‘관계’를 둘러싼 인물들의 못난 실상과 서글픈 마음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독자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 거울을 들여다보듯 스스로의‘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그 중 「하늘 높이 아름답게」는 어느 교회 공동체에 소속된 자매들의 모습을 그린다. 이 작품은 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는 자매들의 모습을 ‘고귀하지 않다’고 여기던 화자 베르타가 모든 이에게 사랑을 베풀다가 죽은 마리아를 향해 ‘허튼소리’를 거들었던 자신도 결국 ‘고귀하지 않음’을 스스로 깨닫는 과정을 보여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라는 마리아의 마지막 대사는 인간의 고귀함은 악함을 극복하려는 의지 즉, ‘새로운 힘’으로 은유된 이타적인 노력을 통해 우리는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작가가 던지는 결의의 전언이다. 모두가 함께 가야할 이 새로운 계절들을, 연일 험해지는 나날을 나아가게 하는‘새로운 힘’이란, 불화와 갈등을 넘어서는 우리들의 좋은 마음, 사랑과 배려의 미덕을 통해 가능하다. 


 물론 모든 관계에서 좋을 수는 없다. 사람들은 이 불행한 운명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기왕이면 잘 지내보자는 바른 마음을 보존하고, 그 ‘바름’에 대해 찬찬히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묻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불화의 원인은 무엇일까. 현대인의 갈등의 양상은 어떻게 드러나며, 다양한 관계의 다툼 속에 회복의 대안이 있을까. 본 계간평에서는 갈등과 오해를 해결하고 화해와 사랑의 장으로 나아가는 도리(道理)를 2023년 <시인들> 가을·겨울호에 수록된 시들에 쓰인 시인들의 마음을 통로 삼아 확인해보고자 한다. 



2. 우리가 다투는 이유 


     

참 빛나던 오랜 동료 일찍 죽었고 가망도 없어 뵈던 걔는 성공해서 나 같은 사람들 뒤통수나 치겠지. 그 꼴 보는 나 속 시원하겠지. 익명이면서 구면이겠지. 할부만큼 지속되는 진정한 배움. 내 가장 영민한 친구는 평생 학자금 대출을 갚는다. 우리 집엔 대졸이 흔해서 감흥이 없었다. 나를 보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래서 지금

차라리 너랑 나랑 치고 박고

싸우기라도 했다면 그랬다면 다음번엔


박참새, 『정신머리』, 「마지막 수업」 中



  2023년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인 박참새의 첫 시집 『정신머리』 중 「마지막 수업」에서는 함께 읽고, 쓰고 말하며 수업을 들었던 친구를 향한 복잡하고 애증어린 감정을 쏟아낸다. 억눌러왔던 울분의 감정들이 심화되면서 급기야 친구와‘치고 박고 싸우기라도 했다면’ 어떨지를 상상해볼 정도로 마음이 격해지는 순간, 시는 마치 결론부가 찢긴 편지처럼 종결된다. 


 혼자 살아가는 삶이 아니다보니, 사람들과 이래저래 부딪치며 지내다보면 관계에서 생기는 오해나 갈등으로부터 피할 수가 없게 된다. 인간이 얼마나 무르고 나약한지, 너무나도 쉽게 상처를 받는 탓이다. 어쩌면 갈등의 시작점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보호 기제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상처를 받은 한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가까웠던 직장 동료에 대해 험담을 하기도, 오래된 옛 친구와 치졸한 언쟁을 벌이기도, 매일 밥상을 마주하는 식구에게 악담을 퍼붓기도 한다. 


 보통 이런 갈등의 원인은 개개인의 다름에서 비롯된다. 각자 다른 환경과 배경을 가지고 성장해온 사람들이 시시각각 발생하는 특수한 정황 안에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다 보니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특히 개인의 권리에 대한 의식 수준이 높아진 현대인들은 가정이나 학교 혹은 직장과 같이 자신이 하나의 커뮤니티 안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 변변한 신뢰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스스로를 깎아 내리거나 낮추지 않는다. 자신이 존재하는 그 자체의 귀함과, 그가 행하는 언사 또한 소중함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유한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의 존귀함을 충분히 이해하는 개별 주체들이 모였을 때 다양한 감정과 정황들이 펼쳐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언쟁이나 갈등 상황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사회에서 생겨나는 갈등의 양상을 개개인의 고유한 특성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극단적으로 각자의 다름을 존중하고 최대한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는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 있다 해도, 개성을 가진 여럿이 함께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조금은 불만족스럽고, 또 약간은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독일어에 ‘샤덴프로이데’, ‘타인의 불행에서 오는 기쁨’이라는 말이 있을까.


 약간의 박탈감이나 불만족은 감수하고 늘 좋은 마음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이타적인 사람들만 모여 있다면 참 다행이겠다. 안타깝게도 사회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좋은 마음씨의 사람들이 모여 있더라도, 경쟁을 부추기는 체제 아래에 놓인 개인은 살아남기 위한 각자의 보호 기제를 발휘한다. 개개인이 모여 만든 공동체는 하나의 공동체적 목표를 형성하지만, 함께 모여 만든 목표를 지켜내기 위한 개인이 타인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돌보는 편을 택하다보면 공동의 결의는 요원해지고 급기야 애초의 지향점을 해치는 모순이 생긴다. 그러다보니 어떤 조직에서는 평화로워 보이기만 하는 모종의 팀웍이 어느 순간부터 정도를 넘어서서 서로에게 해악을 못 미쳐 안달이 난 사건으로 치닫기도 한다.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의 서열에 따라 생기는 악습의 하나인‘태움’이 그 사례가 될 수 있겠다. 사람들을 특수한 공동체의 체계 안에 끼워 맞추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시스템을 따르게끔 하면서 생기는 병폐들. 하나의 정해진 조직의 규칙 안에 개인을 과도하게 귀속시키려다가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고는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지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3. 상처받은 사람들 – 현대인의 갈등 양상



북쪽 창을 바라보는 여기는

텃새들이 사는 세상

돌아보면, 달콤한 점심시간이었는데

아무도 내 이름을 물은 적 없다 


김광명,「이직한 회사에는 텃새가 산다」 中



내리칠 때마다 파랗게 불거져 나온 고독의 혈관, 차가운 핏줄 속에 풀어놓은 투신投身의 사연들

석양의 주삿바늘이 앰블런스 소리와 함께 무뎌진다 시체를 찾아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부위가 있고 차마 썩지 않는 생전生前의 그늘이 있다


자연은 약발이 서지 않는다 한다 사람이라는 병명病名을 잊고서 자꾸만 아픈 곳을 문질러본다


기혁, 「연연戀戀」 中



건널목에서 마주 선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지 않는다.

신호등처럼 깜빡이던 사람은 빈 손 바닥을 허공에 내밀고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들은 빠르게 서로를 지나쳐간다.


김지숙,「건널목 옆 정류소」 中



 <시인들> 2023년 가을·겨울 호에 수록된 김광명의「이직한 회사에는 텃새가 산다」에서 어느 직장인이 이직한 회사에서 누구도 그의 이름을 묻지 않는 냉정한 현대 사회의 조직 문화의 한 장면을 그려내는 시인의 어투가 자못 씁쓸하다. 이 외로운 화자의 자조(自嘲)는 소외된 자의 자존심을 건 ‘버티기 작전’에서 비롯된다. 왜 그저 끙끙 참으며 버티는가? ‘소외시키지 말 것’을, ‘존중해 줄 것’을 호소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차피 그것이 조직 안에서 해결되지 않을 문화적 악습의 일부임에 화자는 체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회사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인식하는 동등한 ‘관계’,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각자의 정직한 감정과 태도로 교감하는 ‘관계’는 불가하다. 따라서 이 회사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책임은 분명 체제와 규칙 안에 있다. 


 기혁의 「연연戀戀」은 현대 사회에 만연한 개인의 불안과 거기서 비롯된 전체적인 병폐의 모습을 그린다. ‘투신’으로 죽어간 누군가, 약으로도 병을 해소시킬 수 없는 불치(不治)의 사회에서 희생된 자의 ‘생전’의 그늘을 언급하며 마음으로 ‘연연戀戀’하는 시인의 동정어린 시선이 서글프다. 그가 “사람”을 “병명(病名)”이라 칭한 것은 사람 그 개인의 문제를 짚어내기 보다는 사람과 사람이 모여 생기는 과오와 갈등 상황이 빚은 병(病)에 가까운 사건들, 그것으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자의 피해를 칭하는 것이리라. 


 한편, 김지숙의「건널목 옆 정류소」가 있는 거리 위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길을 가느라 바쁘다. 서로를 쳐다볼 겨를도 없고 서로에게 관심가질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이미 상처로 얼룩진 현대인들이 익숙하기라도 한 듯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식은 ‘빈 손 바닥’처럼 마음을 텅 비우고 남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일이다. 그저 일신의 안위를 보존하기 위해 소심하고 처량한 회피의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다. 


 위 세 편의 시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얼마나 고독한지를 보여주면서 이 쓸쓸한 폐단 속에 유우한 개인들이 공공연한 희생에 노출되어 있음을 나직이 읊조린다. 반복되는 관계의 불화와 갈등의 양상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다시 상처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소외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다. 그래서 현대 문학의 발화 지점은 대개 소외에 대한 공포로 위축된 개인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의 토로 혹은 자신이 구축한 세계로의 도피를 통해 해결책을 마련하거나, 세계를 외면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자리 안에서 다소 폐쇄적인 위안을 얻으려는 경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문학 경향은 분명 같은 상황에 처했던 누군가에게 위로나 공감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문학이 기대하는 위대함은 단순한 고통의 표시에 있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그것은 고통스러운 파멸을 기반으로 한 숭고한 카타르시스의 획득이 아니던가. 고뇌를 통해 어렵게 깨달은 값진 미학, 사사로운 위안의 감정을 넘어서는 ‘비극미’는 어디에 있는가? 시시콜콜한 술회를 넘어선 힘의 미학, 그러니까 권여선의 소설 속 마리아가 말한 ‘새로운 힘’으로 나아갈만한 비장한 제안은 없을까?



4. 어깨 위 먼지를 툭툭



같은 감정에 두 번 발을 담그는 것은

반칙이었지만 우리는 비로소

불순물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어깨를 쓰다듬는다



가능성이라는 말, 이따금 슬픔으로 향하는 강가에서

당신의 어깨를 만진다

수북하게 쌓인 우주의 먼지를 툭툭

털어보는 것이다



기혁, 「내일 여름, 두 번째 천변에서」 中 



 <시인들> 2023년 가을·겨울 호에 수록된 기혁의 「내일 여름, 두 번째 천변에서」에서는 ‘같은 감정’임에도 용기를 내어 두 차례나 걸고 넘어간 두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분명 ‘불순물’처럼 나쁘고 쓸모없어 보이는 감정이었을 텐데 이들이 자존심을 내걸고 서로의 감정을 다시 마주한 것은 결국 서로를 향한 모종의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이 기대감이란 인간의 ‘선함’을 향한 희망의 감정이다. 슬픔과 상처의 기조를 무릅쓰고 선량함의‘가능성’을 시험하는 일, 수북한 먼지처럼 만연한 상처와 오해를 무심한 듯 ‘툭툭’ 털어내는 ‘의연함’이 이들의 관계를 회생시킨다. 


 사소한 갈등 상황은 개개인의 다름과 개성에서 비롯한 생리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러한 개개인이 모여 이룬 공동체 속 모순으로 인한 체제적 폐해를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개인은 각자의 사적인 사건과 고통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성찰의 과정을 진지하게 모색해야할 것이다. 또한, 공동체는 각자가 실리에 급급하지 않고 소수의 약자가 겪을 위해(危害)를 막아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함께 머리를 맞대고 상처받은 개인의 아픔을 해소시키기 위한 치유의 텃밭을 일구어야만 한다. 그 풍성한 수확의 미덕을 여럿에게 부지런히 일깨워야 한다.


 고통스럽지만 갈등 상황을 겪고 극복하며 인간은 성숙해진다. 그 과정을 거듭할수록 새로운 다름을 마주함에 있어 의연해지고 관계 앞에 너그러운 마음으로 임하게 된다. 반복되는 부정적인 감정의 출현을 굳세게 막아내고 그것으로부터 나와 타인을 지켜내 보자. 그리고 각자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자. 당신이 앞에 선 누군가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줄 때, 누군가는 당신의 어깨에 묻은 것들을 털어줄 것이다. 진실한 사랑의 마음은 정녕 통하여서, 당신의 어깨를 어루만지는‘하늘 높이 아름다운’ 위로의 손길이 반드시 와 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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