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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시인을 찾아서

by 햇살샘

깨어진 삶을 붙들고

인생을 살다보면, 참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직면한다. 학교에서는 학교대로, 가정에서는 가정대로, 참 인생이 쉽지 않다. 학교를 떠나 쉬고 싶어 교원특별연수를 신청했다. 올해는 개인적인 시간이 있어 쉬고 있는 순간에도, 내 마음은 이런 저런 걱정으로 바쁘다. 문득 올라오는 불안과 슬픔, 후회가 미친듯 머릿속을 짓누른다.

가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듯한 때가 있다. 내가 바라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현실을 살아가기에 내가 너무나도 약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지’,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마음의 에너지가 이미 바닥이 나서 다시 용기를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

깨어진 삶, 깨어진 마음을 놓고 괴로워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다. 기도도, 뭐 거창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 한 단어, ‘아버지’를 부르짖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려움이 닥칠 때에, 내가 얼마나 죄인이며, 연약한 존재인지를 직시한다. 그러면서, 때로는 미친 듯이 나를 정죄하기도 한다. 그런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깨어진 삶을 놓고 아파한다.

내 마음이, 내 삶이 무너졌을 때, 어떻게 다시 나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살아날, 살아갈 것인가?


깨진 안경을 벗고

수업코칭연구소 선생님들과 연구 주제인 ‘번아웃’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선생님들의 경험을 들으며, 내가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번아웃’이 좀 더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선생님들은 중간 중간 지칠 때, 자신을 돌보는 방법이 있었다. 그런 반면, 나는 ‘자기 돌봄’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쉬지 않을 뿐더러, 쉬지 못한다’는 점을 알아차렸다.

또한, 선생님들께서 어려움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부정적인 것을 멀리하는 것을 보며, 내가 생각보다 꽤 부정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민한 성격이기에 쉽게 상처받았고, 그 상처를 싸맬 틈도 없이 쉼없이 달렸다. 그렇게 상처가 쌓이고, 쌓여, 쓰디쓴 부정의 열매가 때로는 입술을 통해, 때로는 삶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되돌아보니, 내 글은 참 많이 슬픔을 토로했고, 과거를 후회하는 등,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을 때가 많았다. 사실, 되돌아보면 기쁜 일, 감사한 일도 참 많았는데 나는 깨어진 그 균열의 조각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그 깨어진 조각으로 나를 찌르며 계속 나에게 상처를 줬다. 나를 아프게 하는 장본인은 나였다.

나의 삐뚤어진 시선, 왜곡된 사고, 이 모든 것이 깨진 안경이었다. 깨진 안경을 통해 바라본 교실 현장은 ‘위험천만한 장소’였고, 깨진 안경을 통해 관찰한 난, 참으로 약하고 부족한 존재였다. 깨진 안경을 통해 바라본 하나님은 ‘무심한 하나님’이었다. 이 깨진 안경을 통해 바라보았기에, 세상은 뒤틀려 있었고, 나는 믿음과 용기를 잃어갔던 것이다.

마흔이 넘은 나이인데,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나라는 존재가 부서지기 쉬운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삶에 깃든 ‘아름다움’과 ‘희망’까지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깨진 안경을 벗고, 흐린 눈이지만, 어둠 가운데 빛을 더듬는다.



일상의 시인 첫 번째, 감사

그렇게 뒤틀린 시선을 내려놓고 나니, 내가 다시 붙잡을 수 있었던 빛은 ‘감사’였다. 되돌아보니 2017년부터 감사일기를 써 오고 있었다. 부정적 편향에 쉽게 치우침을 알고 있기에, 선배 선생님의 추천에 바로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감사일기를 다시 꺼내 읽어보았다. 감사일기를 처음 쓴 날짜는 2017년 3월 25일이었다. 감사일기에는 그 당시 ‘비주얼 씽킹 연수’를 무료로 들어서 감사했다는 내용부터 시작해서, 저녁에 산책할 수 있음에, 운동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일상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특히, 주중 감사일기에는 학교생활에 대한 감사 내용이 많았다.



2017년 3월 28일 감사일기

두 아이의 갈등이 잘 해결됨에 감사

5학년 5반 아이들이 즐겁고 건강하게 생활함에 감사

함께 행복한 반을 위해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며 아이들의 마음이 연결됨에 감사

아이들이 존댓말 쓰기 캠페인을 다시 도전하고 재미있게 실천함에 감사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 돕는 손길에 감사

대학원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선물에 감사

기도 응답에 감사




내 마음은 2017년에 힘들었던 사건만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감사일기는 일상의 소중함, 학생들에 대한 고마움, 가족에 대한 감사가 스며 있었다. 대학원 과정으로 인해 몸이 많이 상했다며 울분을 품고 있었는데, ‘대학원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선물’이라는 표현도 참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갖는가, 어떻게 과거를 해석하는가는 정말 중요한 일인데, 내 삶을 다시 ‘감사’로 해석한다. 내가 만났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선의를 다시 기억하고, 내 삶에 주신 은혜를 기억한다. 교사로 산다는 건 쉽지 않을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의 선의’가 있다는 것, ‘배움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올해도 되돌아보니 어려운 순간에 여러 돕는 손길과 기도가 있었음을 기억한다. 오늘을 살아갈 용기가 없을 때, 다시금 감사로 삶을 바라보며 용기를 얻는다. 비록 내가 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할 지라도, 내 삶에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럼에도 내 삶은 귀하고, 삶에는 분명 감사할 제목이 있다.



일상의 시인 두 번째, 쉼다운 쉼

내가 소진되어 버린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은 ‘욕심’이었고, 그 밑바닥에는 ‘나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내 노력으로 어떻게든 해 보려고, 애를 썼으나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런 현실 속에서, 더 노력해야만 할 것 같았고, ‘게으르다’며 나를 계속 채찍질했다.

과거에 새벽 2시까지 수업 준비를 하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 때에도 여전히 ‘나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내 사고의 밑바닥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쉬지 않고 수업준비를 했다. 물론, 수업준비과 수업의 성공은 비례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런 행동 패턴으로 나는 과도한 노력으로 무엇이든 극복해 보고자 했지만, 그 노력이 한계에 달했고, 게다가 삶의 여러 사건들로 지쳐버린 나를 발견한다.

난 내 삶에 너무 ‘힘’을 많이 주고 있었던 것일까? 피아노를 배울 때를 돌이켜 보면, 손에 힘을 주면 예쁜 소리가 나지 않고 오히려 둔탁한 소리가 난다. 손에 힘을 꽉 주면, 빠른 곡을 연주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울림도 좋지 않다. 힘을 빼야 좋은 소리가 난다. 수영을 배울 때에도 힘을 주면 물에 가라앉고 만다. 힘을 적절히 빼고 움직여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난 그 동안 너무 힘을 주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생각에, ‘내 욕심’에 힘을 빼지 못했다.

과거에는 내 부족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겨웠다. 어떻게든 발전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힘을 뺀다. 세상의 여러 일들 앞에 내가 노력하고 힘을 준다고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음을 배웠다. 나이를 먹으며 순리를 배우는 듯하다. 겸허하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힘을 빼고, 오늘은 쉼을 선택한다. 오늘도 불안과 번아웃을 지나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감사와 쉼이 시처럼 스며들길 바란다. 그것은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임을, 나는 이제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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