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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었다

갈피를 찾아 헤매다

by 햇살샘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충분히 탐색하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원래,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인생 아닌가? 그 가운데에서도 자기 관리에 뛰어난 분들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꾸준히, 성실하게 해 낸다.


요즘 나의 문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여 꿈이 좌절된 상태이다. 내가 요즘 하는 노력은, 왠지 끝이 뭉툭해져 버린 못으로 무언가를 억지로 두드리는 기분이다.


이것저것 손은 대었지만 몰입이 잘 되지 않는다. 요즘 그나마 내가 애쓰고 있는 것은 영상 제작이다. 최근 출시된 영상제작 인공지능 VEO3를 접해 보았다. 인공지능으로 영상이 너무 실감 나게 만들어졌고, 그 덕에 당분간은 몰입할 수 있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잘 반응해 주자, 나는 더 깊이 빠져들었다.


내가 하고 싶던 일들이 좌절된 듯한 기분 가운데, 나는 보상심리인 듯 유튜브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VEO3 크레딧이 만료되었고, 나는 물 들어올 때 노를 젓자는 마음에서 비싼 VEO3 구독료를 결재했다. 그러나, VEO3는 내 생각보다 프롬프트 구현이 쉽지 않았다. 인물의 대사가 바뀌는 건 부지기수이며, 내가 원하는 인물 묘사가 잘 되지 않았다. 어느새 화장실 가는 것도 잊은 채, 세 시간이 넘게 열을 올리며 모니터 앞에 매달려 있었다.


"눈이 빨개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남편이 말했다. 나는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다며 저녁밥을 준비했다. 저녁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잠에 들었다.


올해, 여러 목표가 있었지만 과연 내가 잘 해내고 있는지 자문한다. 아마도 유튜브에 집착한 것은, 생산성 없게 느껴지는 나의 삶을 보상받으려는 심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보상심리는 또 다른 씨름으로 다가온다. 내 삶의 목표에서도, 영상 제작에서도 길을 잃은 듯하다.


올해도 벌써 하반기에 접어들었다. 가을,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길을 잃은 것 같은 나에게 누군가 도움의 손을 내밀어 주면 좋겠다. 아니면, 내 삶을 다시 새롭게 할 책을 만나고 싶다. 아니면, 그런 책을 써 봐도 좋겠다.


길을 잃었다. 난 다시, 방향을 찾을 수 있겠지?


호베마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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