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일중독이야.”
내가 30대 초반일 즈음, 동생이 내게 던진 말이었다. 난 그 말을 인정하기 싫었고, 동생이 과민반응을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대학생이던 동생이 세상 물정을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교직 초반, 교사로 겪은 트라우마는 날 쉴새없이 일하며 빈틈없이 준비하려고 애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늘 부족한 사람 같았기에, 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력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직장생활의 연차가 쌓여감에 따라, 난 직장일 외에도 여러 일들을 벌였다. 가지치기가 잘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일만 해도 바쁠텐데, 무리한 학업병행과 수차례의 시험관 시술은, 내 몸과 마음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같은 일을 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피곤해했고, 몸도 자주 아팠다. 여러 차례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은 후에야, 삶에 브레이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상태가 아무래도 번아웃 같았다.
결국, 특별연수를 신청하고 쉼을 갖기로 했다. 그러나, 이 쉼의 기간에도 파견 기관에서 제시한 보고서를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렇게 쉬어도 되나?’, ‘다른 사람들은 더 열심히 살아갈텐데’라며 자꾸만 나를 다그치며 일을 벌였다. 그렇게 쉬지 못하던 나를 멈춰세운 건, 다름 아닌 남편의 뇌경색이었다.
남편이 아프면서부터, 나는 정말 오롯이 남편의 건강회복을 최우선과제로 삼고 살기 시작했다. 컴퓨터에 앉아있는 시간이 줄고, 요리와 운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건강스무디를 만들고, 영양을 고려해 아침 식사를 했다. 오전 근무가 마치면 퇴근 후, 집에 와 남편과 점심식사를 하고 함께 집 근처 자그마한 숲을 산책했다. 저녁에도 최대한 건강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기 위해, 평소 하지 않던 여러 요리법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남편뿐만 아니라 나도 조금씩 건강해짐을 느꼈다. 늘 복통을 안고 살았는데, 복통이 조금씩 좋아진 것이다. ‘먹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구나’ 이제야 난 깨달았다. 늘 시간에 쫓겨 밥도 대충 때우던 나였는데, 40대가 되어서야 건강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젊을 때에는 나를 갈아넣어 사회에 적응하고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하는 거야.’라면서 말이다. 남편도 돈을 많이 벌겠다고, 삼교대 근무를 하다가 무리해서 탈이 난 것이다. 나도 아프고 남편도 아프면서 이제는 그런 삶이 아니라, 속도를 늦추고 몸과 마음을 돌볼 때임을 알게 되었다.
현대 사회는 개인에게 점점 더 많은 책임과 능력을 요구한다. 학교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며, 점점 더 자기에게 많은 것을 강요하며, 완벽을 추구하며 자기를 착취한다. 나 또한 끊임없이 나를 착취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남편이 내 옆에 있는 것에 감사하고, 남편과 내가 이렇게 걸으며 조곤조곤 수다할 수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따뜻한 식사를 준비해서,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것, 같이 손잡고 걸을 수 있는 것도 인생의 선물이다.
‘늘 부족하다’며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의 욕망과 기대를 내게 강요하기를 멈춘다. 타인들의 기준을 맞추려 애쓰기보다는, 소소한 일상을 감사하며 살아가기를 선택한다. 물론 소셜미디어와 같이 세상의 욕망을 부추기는 소리에 완전히 자유롭지 않지만 말이다.
삶을 살아가다보면 무수한 결핍을 만난다. 예전에는 그 결핍을 어떻게든 채우려고 노력하며 안달하며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삶을 수용하는 법을 배운다.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야. 그럼에도 내 삶은 아름다워.’ ‘결핍이 많지. 그럼에도 내 삶은 소중해.’ 결핍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쓸모를 묻는 사회에서,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내 속에 있는 빛을 찾아 나선다.
『채근담』에는 ‘명이점통(明而漸通)’이라는 말이 있다. ‘밝음으로써 점점 통하게 하라’는 뜻으로 어둠을 억지로 내쫓기보다는 밝음을 키워 점차 막힌 곳을 열어가라는 의미이다. 나 또한, 결핍이나 부족함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삶의 소중한 것들에 감사하며,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다.
그동안 애썼을 나의 몸과 마음에 사과를 건낸다. ‘미안해, 쉬지 않고 너를 자꾸만 다그쳐서.’ 날 위해, 건강한 음식을 선물로 주고, 따뜻한 차로 쉼을 선물한다. 소중한 가족에게 감격하며, 일상이 기적임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