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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노무사 Dec 22. 2020

법정스님, <오두막 편지>

오두막에 홀로 사셨던 법정스님의 음성이 귓가에 들리는 듯!

   


법정스님의 책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주옥같은 저서들이 대부분이지만, 어떤 사람에게 기억에 많이 남을지 여부는 그 책을 어떤 타이밍에 읽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소유》를 법정스님의 대표작으로 꼽고 있고, 나 역시 《무소유》를 범우사에서 나온 문고판으로 1998년 6월에 사서 보기도 했지만, 오히려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는 법정스님의 작품은 《오두막 편지》이다.     



송광사 불일암, 법정스님의 밭



《오두막 편지》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 강사를 하면서 방황하던 시절,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 중 하나이다.

그 시절에는 책을 하나 읽게 되면 아주 꼼꼼하게 한 줄, 한 줄 정성스럽게 읽었고, 수많은 문장들이 가슴에 꽂혀 내 영혼을 흔들어 깨우곤 했다.     


《오두막 편지》는 법정스님이 송광사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산골에서 홀로 살고 계실 때 펴내셨는데, 그 시절 느낌이 물씬 풍기는 대목이 많다.     



송광사 불일암, 요사채



개울물 소리에 실려 조용히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살아 있는 우주의 맥박을 느낄 수 있다는 내용과 새벽에 내리는 빗소리에서 우주의 호흡이 자신의 숨결과 서로 이어지고 있음을 감지한다는 부분,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자연의 소리는 늘 들어도 시끄럽거나 무료하지 않고 마음을 그윽하게 한다는 대목, 서산에 해 기울어 산그늘이 내릴 무렵이면 훨훨 벗어 붙이고 맨발로 채소밭에 들어가 김매는 일이 오두막의 일과라는 그림 같은 문장, 그리고 맨발로 밭의 흙을 밟는 감촉을 이야기하며 흙을 가까이하는 것은 살아 있는 우주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일이고 삶의 뿌리를 든든한 대지에 내릴 수 있게 하며, 나약하고 관념적인 도시의 사막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는 소박한 말씀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송광사 불일암



법정스님 입적하신 후 스님을 능가하는 에세이 작가는 찾기 힘든 것 같다. 그건 아마도 쓰신 글과 실제 삶이 일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즘같이 마음이 휑한 시기에는 법정스님이 더 그리워진다. 그 단단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미소와 소박한 삶 자체가.



-> 이 글은 9월 25일 출간된 <여성 직장인으로 살아 내기>에 실려 있습니다.



불일암 가는 대나무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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