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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이아저씨 Sep 29. 2024

경주

당신을 기억할 때7

 곰과 하늘의 자손인 단군, 알에서 나온 동명왕.

이 땅에 역사가 생긴 이후, 수많은 영웅들이 탄생설화를 남겼다.

많은 설화를 접했지만 영웅이 되기도 전에 탄생설화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었다.


너의 설화는 이렇다.

너의 어머님께선 1993년 초파일 불공을 드리러 어느 절에 가게 된다. 그러다 절의 큰 스님을 만나게 다.

큰 스님께서는 느닷없이 어머님을 붙잡아 두고는 자식을 낳게 될 것이라 했다. 어머님께서는 이미 두 아들을 슬하에 두고 있었다. 큰스님이 말을 이어 나갔다.

‘딸을 낳을 것이다. 선덕여왕이 다시 세상에 돌아오는 것이니 출산 전후로 경주의 선덕여왕릉에서 공불을 올리도록 하여라’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은 너를 잉태하였다. 큰스님은 ‘세상을 두루 비추라’는 뜻을 가진 이름도 손수 지어 주셨다.

너의 어머님은 가끔 내게,
본인의 신성한 경험에 나도 감응하길 바라듯 너의 설화를 이야기하신다. 그 때마다 어머님의 두 눈이 반짝이던 것이 기억난다. 당신의 딸이 이러이러해서 그만큼 소중하니 사위 될 사람보고 잘하라는 뜻이겠거니 하고 넘기곤 했다.


 

어쩌다 우리가 경주에 갔을 때,
낡디낡은 은색 르노를 빌려 울산에서 경주로 놀러갔을 때였다. 둘 다 운전이 서툴러서 시속80km만 넘어도 호들갑을 떨고, 심지어 주차하다 한 쪽 사이드미러를 부숴 먹은 날이었다.

나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커다란 입간판에 그려진 선덕여왕 캐릭터를 보게 되었다. 너의 설화가 생각났다. ‘선덕여왕릉을 가자. 차가 있으니 어디든 갈 수 있지 않느냐?’ 내가 얘기했다. 정작 본인은 경주에 선덕여왕릉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었던지, 생각도 못했다며 좋아했다. 갓난애기 때나 가보았을 신화적(?) 장소에 갈 생각에 들뜬 듯했다.

우리는 식사도 잊고 선덕여왕릉이라고 안내된 표지를 따라 차를 몰았다. 샛길로 빠져, 농로 어딘가 주차를 하고, 솔밭이 깔린 오솔길을 따라가 보니 마른 잔디로 뒤덮인 무덤이 하나 나왔다.

“기억나?”
 “20년도 전에 번 왔는데 기억날리가 없지”
 “예전에 죽을 때도, 한번 묻혔을 거 아냐”
 “엄마도 참, 오빠한테도 그 얘기 몇 번이고 했지?”

겨울 가뭄이라 잔디가 누런 건 둘째치고, 솔잎도 푸석푸석 힘이 없어 보였다. 탑돌이하듯 무덤 주위를 가볍게 걷다가 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힘이 안나네. 우리집이 인천이잖아. 그래서 경주를 오려면 정말 마음먹고 와야한다? 오빠네처럼 그냥 주말에 시간나면 올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야. 그런데, 막상 선덕여왕릉까지 왔는데 기운 빠진다. 겨울이라 그런가? 볼품없다. 마음 아프게”


너의 눈은 생기를 잃었다. 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부푼 기대도 함께 쪼그라들어 버렸다.

힘든 때였다. 개인의 인생으로 봐서도, 우리 함께의 인생으로 봐서도 삐걱거리고 있던 때였으니까.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너의 인생이 그대로 서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기적이게도 말이다. 정말로 오랜 기간을 만나왔음에도, 나는 네게 확신을 주고 있지 못했다. 너는 그걸 야속하게도 다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여태까지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 때,
 “선덕여왕은 어떤 삶을 살았어?” 네가 물었다.
 “우리나라 역사 통틀어서 최초의 여왕이었으니, 반대가 심하기도 했을 테니 쉽지는 않았을 것 같지 않아?”
 “그럼 선덕여왕의 환생으로 태어나는 게 좋은 걸까? 그렇게 시달렸다면 말야”
 “그래도 왕이었잖아. 좀 멋있긴 해”
 “뭘 이루고 싶을까? 날 통해서 말이야”
 “큰 목적이 있다기 보다는… 그저 주어진 주기에 맞춰서 태어날 수밖에 없어서 태어나게 된 걸 수도 있지 않을까?”
 “여전히 안타깝네. 살아생전에도 힘들었고, 지금도 뭐 나 그렇게 썩 행복하지는 않잖아? 날 통해서 이 세상을 바라본다면 여전히 살기 어렵고 힘든 세상이라 생각할 것 같은데”

좋은 말을 해주고 싶었다. 지금 네가 있는 그대로 의미 있다고 말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말문은 턱 막혀버렸다.

“거 봐. 오빠도 동의하나보네. 그래, 가자. 배고프다”
“이제 다시는 여기에 돌아올 일은 없을 거야. 이제는 그만 힘들고 싶다. 정말로”

 

해가 높이, 높이 솟아 정수리에 햇빛을 쏘아댔다.
말을 잃은 나는, 어떻게든 웃는 얼굴을 지어 보이려 해보았다. 너를 어떻게 행복하게 해주어야 할까? 행복은 스스로 찾는 거라고 말한다면 우리의 관계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이대로 온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먼저 손을 잡은 건 너였다.
나의 손을 잡고, 아무말 않고, 무덤가를 걸어 내려갔다.

내게 원한 대답이 있었을테지만 그것을 듣지 못하였다고 해서 너는 내 손을 놓지는 않았다.


2020년 12월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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