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분명 어두운 하늘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둘 눈에 보이지 않던 별들이 보이더니 노란색, 흰색, 파란색, 분홍색 제각기 다른 색의 별들이 무수히 펼쳐지는 그런 꿈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는,
"별이 엄청 많았어, 끝도 없이 펼쳐지는 꿈이었어"
네게 잠결에 기억을 억지로 살려 말했다. 꿈은 말해야만 기억에 남지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어떤 꿈을 꾸었는지, 심지어 꿈을 꾸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되니까.
'그만큼 기억에 간직하고 싶은 꿈이었다',
'그만큼 황홀한 꿈이었다'
언제까지나 문득문득 머리를 스치는 꿈속의 그 이미지를 너와 함께 보게 될지는 꿈에서도 몰랐다.
강원도 인제군. 8월 말. 여름내 회사일로 조금도 쉬지 못했던 우리는 어떻게든 여름휴가를 다녀오겠다는 오기 하나로 강원도 여행을 택했다. 출발 겨우 2일 전 원래 정했던 연천군으로의 여행계획을 급히 수정했다.
'갯골'
전국 어디에나 하나쯤은 있을 법한 지명이지만, 어딘가 정감이 느껴지는 곳으로 핸들을 틀었다. 오후는 짧았다. 산과 산 사이에 자리한 계곡지형이라, 한여름이었음에도 해가 산 뒤로 넘어가자마자 사위가 어둑해졌다. 간간이 이어진 가로등 불빛과 숙소 여기저기서 비치는 백색 형광불빛만이 이곳에 사람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숙소 옆 계곡은 작은 소리로 흐를 뿐, 서울과 달리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식사와 함께 곁든 소주에 한껏 취기가 올라 숙소 문 밖을 나섰다. 어딜 가든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그저 걷기 위해서였다. 처음 보인 별은 북두칠성의 일부였다. 외가의 친척 누군가가 강둑에 앉아 내 손을 잡아 하늘 위의 별을 이어 준 기억처럼 나도 너의 손을 잡고 10년 전 처음 연애하듯,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으며 북두칠성을 그렸다.
그러다 문득,
눈에 보이는 별이 밝게 빛나는 북두칠성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1분 남짓이었다. 가로등 불빛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작지만 선명하게 빛나고 있는 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북두칠성 주위로 하나둘 깜빡깜빡 떠올랐다.
"잠시만, 지금 별이 갑자기 많아졌어"
"내가 저번에 얘기한 꿈같이 말이야. 이쪽으로 가보자. 빛이 없는 곳으로. 더 깊이 가보자"
"하나가 아니야! 너무 많아! 별이... 너무 많아"
"잠시만! 눈을 감고 가자. 눈이 최대한 어둠에 적응하도록 말이야. 저기 계곡 위에 다리까지만 가는 거야. 눈 꼭 감고 다리 난간 붙잡자마자 하늘을 쳐다보는 거야"
우리는 급히 손을 잡고, 눈을 감은 채로 빛이 가장 들지 않는 계곡 위 다리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
흰색, 푸른색, 분홍색, 수많은 별이 쏟아졌다. 셀 수 없이 많은 별이었다. 끝없는 별이었다.
"은하수다"
어렴풋이 수없이 떠있는 별들을 가로지르는 구름대였다. 사진으로만 보던 은하수가 분명했다.
카메라 노출시간을 길게 잡을수록 더 많은 빛이 담겨, 작은 불빛도 잡을 수 있듯, 어둠에 적응한 우리의 눈은 더 많은 별들을 잡아냈다. 그럴수록 은하수도 더욱 선명해졌다.
"저게 은하수야? 우리 위의 하늘이 저렇게 생겼다고....? 이제껏 매일밤 우리 위에 있었으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는 거야?"
취기 때문인지 황홀경 때문인지 알 수도 없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메라를 들어 은하수를 담아보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나 도저히 담기지 않았다.
"담을 수 없는 건가 봐"
담을 수 없어도 아쉽지 않았다. 언제든 위에 있다는 사실은 동일했으니까. 빛이 없는 곳으로 가기만 한다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것이니 그대로 남겨두고 우리는 다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