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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막스 Feb 22. 2023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다

맨체스터에서 축구를 보며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축구 말고는 모르던 소년이었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우리 반의 남자아이들은 일제히 급식실로 달려갔다. 10분 만에 점심을 다 먹고 향한 곳은 바로 운동장. 몇 명인지 제대로 셀 수도 없는 아이들이 공 하나만 바라보고 여기저기서 우르르 뛰어든다. 규칙이란 건 없이 그저 흙먼지 잔뜩 마시면서 하던 축구가 참 재밌었다. 대한민국의 많은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축구 선수라는 꿈을 가져보지 않나. 나도 그중 한 명이어서 먼 훗날에 국가대표가 된다면 어떠할까라는 재밌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축구에 빠져있던 나의 영웅은 박지성이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서 좋아하게 됐다. 말수가 적은 데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이타적인 성격까지. 박지성의 경기를 보면 누구보다도 많이 뛰고 다른 선수들에게 패스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나 역시도 혼자 공을 몰고 가기보다는 친구들에게 패스해 주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이 화려한 해외 유명 축구 선수들을 좋아할 때 나는 박지성을 많이 좋아했다.


 내가 박지성을 처음 알게 됐을 때 그는 영국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구단에서 뛰고 있었다. 당시 많은 한국인들이 그랬듯이 나도 자연스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이 됐다. 우리나라는 영국보다 9시간이 빠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새벽이 되어야 그들의 경기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많은 밤을 영국에서 축구를 보고 있을 사람들과 함께 했다. 박지성이 상대에게 태클을 당해 넘어지면 같이 가슴이 아팠고, 골을 넣으면 관중석에 앉아있는 그 누구보다도 기뻤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축구 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박지성이 뛸 당시의 축구 경기는 내가 어렸을 적 가졌던 추억과 낭만이 담겨있기에 더 아름답게 기억된다. 당시 영상만 찾아봐도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내가 가장 떼 묻지 않았던 시절 순수하게 좋아했던 것은 시간이 지나도 잊기 힘든 것 같다. 약 7만 5천 명의 관중은 박지성이 슈팅을 하기 직전 모두 숨을 죽였다가 그가 골을 넣으면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린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가 막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한국인 최초로 영국에 진출한 것도 모자라 세계 최고의 구단 중 한 곳에서 이런 활약을 펼치는 게 번번이 믿기지 않았다. 영국인들과 같이 열광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만나고 싶어 맨체스터로 향했다. 


 맨체스터 시내에서 저녁을 먹은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경기장인 올드 트래퍼드로 가기 위해 트램을 탔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오늘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들렸다. 경기장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도 속속 트램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정거장에 내리자 영국에서 내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던 구글맵도 필요가 없었다. 다들 경기장으로 가는 사람들이기에 인파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드디어 내 눈앞에 올드 트래퍼드가 펼쳐졌다. 텔레비전으로는 도대체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텔레비전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모습도 많이 알게 됐다. 경기장 앞에서부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음식을 파는 노점상, 경기장 스토어에서 유니폼을 사기 위해 쇼핑을 하는 사람들까지. 경찰도 정말 많았는데, 심지어 말을 타고 있는 경찰도 있어서 신기했다. 그렇게나 다양한 사람들이 이 한 경기를 위해 함께하는지는 몰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vs 리즈 유나이티드의 경기가 진행 중인 올드 트래퍼드

 내가 응원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경기에서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경기장을 방문했던 이날은 경기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내가 여기 서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꼬마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경기장에 가서 같이 응원가를 부른다. 그리고 골이 터지면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한다. 약 7만 5천 명이 내뿜는 함성 속에 내가 있는 것이다. 어릴 적 소망을 이룬 것 같아 혼자 속으로 조용히 감동을 느꼈다. 영국인들에게는 매주 즐길 수 있는 이 일상이 한국인인 나로서는 일생일대의 순간이라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경기장 속에 있으면서 감동도 받았지만 나를 진정으로 사로잡았던 감정은 이상함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맨체스터에 간다면 펄쩍펄쩍 뛰면서 행복해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직접 와보니 그런 일은 없었다. 대신 내가 여기 있다는 게 계속 이상했고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마냥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수많은 감정이 나를 찾아왔다. 경기를 보면서 계속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새벽에 일어나 눈을 비비면서 텔레비전 앞에 앉아있던 초등학생 말이다. 내가 어렸을 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이 지금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올드 트래퍼드에는 어린 시절의 나처럼 전 세계 수많은 아이들의 꿈이 담겨있을 거라 생각하니 저절로 해맑은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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