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설정
제임스 클리어의 책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는 좋은 습관을 가지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책의 원제는 ‘Atomic Habits’이다. ‘atomic’이라는 영어 단어는 ‘원자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원자의 습관들...? 이렇게만 들으면 책의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지 한 번에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책의 요지는 아주 사소한 습관이라도 모이다 보면 거대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좋은 습관을 기르는 여러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격하게 공감한 것이 바로 환경 설정이다.
좋은 습관 형성을 위한 환경 설정이라는 것이 꼭 거창한 방법만 있지는 않다. 환경 설정은 아주 사소하게도 진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운동의 필요성을 느껴 헬스장 회원권을 끊어놓고 퇴근 후 쉬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운동을 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운동복을 방 안의 선반에 꺼내 놓아 보자. 이는 그 사람이 운동을 갈 확률을 높여줄 텐데, 그 이유는 매일 퇴근하고 방에 들어오면 내 시야에 운동복이 보이므로 운동에 대한 생각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운동복을 옷장 속 깊이 처박아 놓는 것보다는 운동하는 습관을 기르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읽고 나서는 인간의 의지란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자신의 마음을 채찍질한다고 해서 100% 언제나 일을 해내진 못한다. 만약 해내더라도 심각한 마음의 병을 불러올 수 있다. 자신의 의지만을 가지고 발전을 이뤄내는 것은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아주 많이 힘들기 때문에, 제임스 클리어는 인위적으로 환경을 조성해서 좋은 습관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라고 설명하고 있다.
수만 가지의 환경 설정 중 가장 강한 버전이 바로 해외에서 사는 것이라 생각한다. 각자 일상이 있다면 의식하지 않아도 반복하는 삶의 패턴이 있을 것이다. 집, 학교, 직장, 버스 안, 지하철 안.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를 살며 누군가는 큰 발전을 느낄 수도 있다. 공부를 통해 지적으로 성장하고, 일을 해내며 성과를 올리는 등 말이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반복되는 삶에 권태를 느끼고 지겨워할 수도 있다. 만약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그때가 바로 변화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니까.
해외 생활이 환경 설정의 최고봉인 이유는 원래 나의 생활과 180도 다르기 때문이다. 아예 다른 나라에 가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주변 환경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어떻게 보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라고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인간은 생존의 욕구가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처하면 자신을 끊임없이 움직여 해답을 찾아나간다고 생각하는데, 해외 생활이 그 정점이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이 혼자 살아남아야 하니까.
이 과정에서 인간은 괄목한 만한 성장을 이뤄낸다. 해외에 나가 살면 저절로 환경이 바뀌어 있으니 본국에서의 나와는 다른, 그리고 분명 한국에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행동 방식이 의식하지 않고도 많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것들이 모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전의 라이프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 나올 것이다. 애초에 해외에서는 본국에서와 똑같은 모습의 라이프스타일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는 나라가 다른데 어떻게 생활상이 똑같을 수가 있겠나.
나 역시도 완전히 다른 환경에 살아보며 한국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경험을 많이 했다. 영국은 한국만큼 치안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늦게까지 밖에 있지 않았다. 핸드폰 데이터도 한국처럼 빨리 터지지 않는다. 특히 지하나 건물의 실내에서 잘 안 된다. 영국에는 피시방도, 코인노래방도 없다. 한식에 들어가는 식재료도 별로 없다. 이런 상황이라 당연히 내가 보내는 하루 일과와 더불어 사소하게는 놀고먹는 것까지도 변화를 주지 않으면 안 됐다. 그래서 아침에 빵을 먹게 됐고, 쉴 때는 공원에 나갔다. 그리고 밤은 거의 기숙사에서 보냈다.
다른 나라에 사는 것은 삶을 다르게 살아볼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삶이 리셋이 됐다고 해야 하나. 원래 내 일상은 자연스럽게 삭제된 것이니, 내 마음에 맞게 다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통해 한국에 있을 때는 가지지 못했던 여러 가지의 좋은 습관을 새로이 형성하게 됐다.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가보는 것도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교환학생이 여행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내 일상을 둘러싼 환경이 바뀐다는 것이다. 다른 방식의 삶을 사는 것은 여행에서 오는 깨달음을 넘어 더 강력한 삶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발전이란 변화를 수반한다. 삶에서 변화를 크게 원하지 않는 가치관이라면 모르겠지만,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면 새로운 환경 설정이 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새로운 환경 설정은 해외를 가지 못하더라도 한국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방의 구조를 바꿔본다던가, 새로운 동아리에 들어간다던가, 이직을 한다던가. 전부 나의 주변 환경을 바꾸는 일들이다. 하지만 최고 버전의 환경 설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 나는 다시 태어났다. 영국 생활을 통해 느낀 점을 바탕으로 전과는 또 다른, 새로운 버전의 한국 생활을 준비해보려 한다.
반갑다,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