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어제 미리 공지해 두었던 빨간 머리 앤 영어필사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내가 운영하는 <최고그림책방> 네이버카페는 주로 영어필사 회원들이 영어필사를 하고 인증숏을 올리는 글들로 서로의 안부를 전하고 받는다. 벌써 3번째 책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더블엔 송현옥 대표님은 다양한 필사저서를 펴내는 분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송현옥 대표님을 만났고, 그 인연을 계기로 <그림책으로 시작하는 성교육>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하나의 계시였던 걸까? 나의 무수한 시도와 시작들이, 이 책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점을 마구마구 찍고 작은 시작들을 하고 시도하면서 좌절도 많이 했다. 시작하고 끝내지 못한 일도 아직 많다. 하지만 내가 꾸준히 해오고 있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필사다. 영어필사다.
더블엔 출판사에서 펴내는 영어필사책은 편집과 짜임구성이 잘 되어있어 좋았다. 영어라는 언어를 늘 우리 곁에 두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어를 술술 말할 줄 아는 것은 아니다. 나도 그렇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거다.
영어라는 과목이 어려웠다기보다, 역시나 친해지지 않았다. 학교공부는 더욱 재미가 없었다. 뻔한 스토리에 정해진 교과서의 흐름이 따분하고 재미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성인이 된 이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간호사 국가고시를 공부하던 시기에도 영어알파벳들이 늘 곁에 머물러있었지만, 다가가기 힘든 그대였다.
그러던 내가 서른 중반부터 영어와 친해지려고 이런저런 시도들을 시작했다. 그중에 하나가 영어모임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해진 장소에서 사람들 (주로 엄마들)과 만났다. 평일 오전시간대였으니 엄마들에게 조금은 열린 문이었다. 일을 꾸준히 해온 나였지만, 그 당시 시간이 어찌 났던 것 같다. 영어교재를 함께 공부하고, 부자연스러운 발음으로 드문드문 읽어 내려갔다. 단순히 영어를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일주일에 한 번이었지만) 영어라는 언어에 조금씩 친해지게 만들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영어에, 모임에 서서히 빠져들었다.
모임의 시작이 있듯이 끝도 있었다. 어떤 계기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영어모임이 나에게서 멀어졌다. 아마 일정이 맞지 않아 모임에 나 가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모임을 만들었다. 나의 주거지인 집에서 모임을 열어보기로 했다. 근처에 거주하는 원어민 선생님을 초대해 다른 엄마들과 함께 영어모임을 한 적도 있었다.
병원에서 주로 사용하는 임상영어회화책을 주 교재로 모임을 진행한 적도 있었고, <모아나> 애니메이션 교재로 모임을 진행한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모임을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어떤 모임을 만들고 사람을 모집하고 모임을 진행하는 것이 나에게 맞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런 계기들이 그림책모임을 만들었고, 지금 김포에서 운영하고 있는 최고그림책방에서 독서모임, 필사모임을 매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매주 한 번씩 만나는 모임이지만, 그들의 일상이 늘 새롭고 설렌다. 지난 한 주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꽤나 즐겁다.
바로 어제 시작한 <빨간 머리 앤> 영어필사는 어린 왕자에 이은 책이다. 이전 어린 왕자 역시 우리에게 너무나 친근한 책이지만, 나는 사실 어린 시절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왕자를 본 적이 없었다. 이번 영어필사를 계기로 <어린 왕자> 영어필사책을 파고들게 되었고 어린 왕자에 대해서 깊게 아주 깊게 내용을 알아갈 수 있었다. 그 속에 나오는 주옥같은 구절들도 영어로 따라 적으면서 더 깊이 있게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다.
내 또래라면 누구나 좋아할 빨간 머리 앤 역시 내가 직접 선정한 책이다. 역시나 더블엔 출판사에서 펴낸 책이다. 드문드문 기억나는 빨간 머리 앤 속 명장면들이 하나둘 스쳐 지나간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열 때마다 나는 새로운 빨간 머리 앤을 마주할 것이다.
빨간 머리 앤의 가족에 대해서, 빨간 머리 앤의 친구에 대해서, 빨간 머리 앤의 매일이 설레는 일상이야기에 대해서 나는 앞으로 한 자 한 자 적어나갈 볼 생각이다. 함께 하고 싶은 분은 누구나 환영한다. <최고그림책방> 네이버카페에 가입 후 각자 속도에 맞추어 매일 인증숏을 올려주면 된다.
각자의 상황과 사정이 다르다. 매일이 목표가 아니라, 퐁당퐁당 하더라도 100일 완주해 보기가 목표가 되길 바란다. 내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댄다면 지금 바로 시작할 때다. 하다가 스탑해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작심삼일 하다가 쉬고 다시 작심삼일 하면 된다 그렇게 1일이 10일이 되고 30일이 되고 100일이 되어가는 기쁨을 누려보기를 바란다.
혼자 하기는 어렵지만, 누군가 다른 장소에서 <빨간머릴앤>을 함께 필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든든하고 위안이 된다. 함께 빨간 머리 앤 배를 타보자. 열심히 저어 나가보자. 그러다 보면 아주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영어라는 친구에 가까워질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