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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혜 Apr 24. 2024

휴머노이드 개발에 내재한 실존의 반추

들어가며

  최근 로봇 개발 스타트업 회사 피규어 AI(Figure AI)가 오픈AI(OpenAI)와 협업하여 개발한 '피규어 01(Figure 01)'이 공개되었다. 바구니에 물건을 담고 있던 로봇은 "지금 무엇이 보이냐"는 인간의 물음에 스스로의 인지를 통해 답을 함으로써 멀티태스킹(multitasking)과 멀티-코그니션(multi-cognition)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인간과 유사한 로봇을 만들고자 하는 개발자들로 하여금 열망을 실현시키는 데 있어 중요한 성과로 작용했다. 


  인간의 외형을 가진 로봇을 일컫는 '휴머노이드(Humanoid)'는 1973년 최초의 인간형 로봇의 발명을 필두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이하 AI)의 발전함에 따라 개발이 급속화되고 있다. 휴머노이드 개발자들은 인간과 같이 안정된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기능뿐만 아니라, 오감을 느끼게 하고 적절한 수준의 감정적·지적 교류까지도 가능케 하는 것을 과제로 삼고 있다. 인간 형상과의 유사성에 주안점을 두고 개발하는 목적은 첫 번째로 노동력/인력 부족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함에 있다. 혹자는 "휴머노이드가 미래에 다가올 고령화 사회에 필수적일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는 2014년의 한 기사에 실린 내용이었지만, 최근의 의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23년 중국의 로봇 스타트업 회사 푸리에 인텔리전스(Fourier Intelligence) 역시 인간의 일을 대신할 수 있도록 휴머노이드 로봇을 상용화시키는 것을 주된 개발 목적이라 말했다. 첫 번째의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인간과 로봇의 원활한 상호작용을 실현시켜야만 하는데, 이것이 바로 두 번째 개발 목적이다. 그러한 점에서 피규어 01이 보여준 성과는 로봇이 인간의 생활환경 속에 들어와 다방면에 활용되고, 또 인간과 상호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주었다.


  한편, 휴머노이드 로봇의 개발이 급속화됨에 따라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이미 AI의 지능 자체는 인간을 뛰어넘었다. 이제 개발자들은 인간, 그리고 더 큰 범주로서 생명체가 지니는 고유한 성질을 AI에 구현하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그 고유한 성질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하기 위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수불가결하다. 본 글은 휴머노이드를 개발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인간의 실존을 확인하는 수단이 되고 있음을 전제로 한다. 인간과 유사한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로봇에서 인간과 다른 점을 찾아야 한다. 다른 점을 찾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더 발전된 개체를 만들기 위해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 무엇인지를 고찰해야 한다. 이에 대해 필자는 휴머노이드의 지속적인 개발, 그 대척점에 있는 우려와 두려움이라는 우리의 양가적 인식, 그리고 휴머노이드를 매개 삼아 인간을 재정의하는 과정을 실존에 대한 반추의 과정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휴머노이드의 발전 과정

  휴머노이드 로봇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것은 1973년 가토 이치로(Ichiro Kato, 1925-1994) 일본 와세다 대학교(Waseda university) 교수팀이 개발한 '와봇-1(WABOT-1)'이다. 와봇-1이 두 발로 걷고 말도 할 수 있었다면, 이후 개발된 와봇-2는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이때까지의 와봇 시리즈는 완전한 인간형 로봇이라 보기 힘들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와봇-2, 1984.


  로봇이 본격적으로 인간의 형태를 띠기 시작한 것은 2000년에 일본 기업 혼다(Honda)가 개발한 '아시모(ASIMO)'부터였는데, 아시모는 걷고 뛰는 것은 물론, 동작으로 감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우리나라에서 로봇공학자 오준호 교수팀이 '휴보(Hubo)'를 개발했다. 10년 뒤, 2014년 6월에는 '페퍼(Pepper)'라 하는 세계 최초로 감정을 가진 로봇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겉모습은 이전에 개발되었던 휴머노이드와 다르지 않았고, 외관은 오히려 아시모보다 인간형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페퍼는 AI와 클라우드 시스템을 통해 인간과 교류할 수 있었고 성격도 설정 가능했다는 점에서 서비스용으로 이용될 가능성을 보였다. 일본은 바로 다음 해, 아예 겉모습을 인간과 똑같이 구현한 로봇 '치히라 아이코(Aiko Chihira)'를 공개했다. 여성의 모습을 로봇은 도쿄 미쓰코시 백화점의 안내원으로 쓰이기도 했다.


도시바(Toshiba) 회사가 개발한 치히라 아이코, 2015.


  AI를 탑재한 휴머노이드 산업이 차츰 발전을 거듭하면서 2016년에는 핸슨 로보틱스(Hanson Robotics) 회사에서 '소피아(Sophia)'를 개발하기까지 이르렀다. 인간 피부와 유사한 소재(플러버/Frubber, Flesh Rubber)로 얼굴이 구현된 소피아는 이전보다도 더욱 인간과 유사했으며, 안면 근육을 제어하기 위한 모터가 이전의 치히라 아이코보다 훨씬 많이 추가되어 더욱 다양한 감정 표현이 가능했다. 소피아의 등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휴머노이드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2019년에는 '아이-다(Ai-Da)'가 공개되면서 AI에 의해 대체되지 않을, 인간만의 창조적인 영역이라 믿어왔던 예술의 영역까지도 로봇이 그 가능성을 증명했다. 아이-다는 눈에 내장된 카메라로 사물을 인지하고 팔에 연결된 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게다가 단순히 사람의 초상화를 그릴 뿐만 아니라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얼굴 표정 등 인물의 고유한 특징까지도 인식한다.


아이-다의 모습, 2019.



차이의 인식

  휴머노이드 개발 목적에 대한 개발자들의 주장이 이해된다고 해도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 의문점은 있다. 도대체 왜 인간과 똑같이 "생겨야" 하는 것인가. 인간 형상의 로봇을 개발하는 까닭에 대해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Dennis Hong, 1971- ) 교수는 "오랫동안 인간 문명에 의해 구축되어 온 환경에서 로봇이 사용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형태를 닮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치히라 아이코를 개발한 일본의 도시바(Toshiba) 회사도 휴머노이드 개발 목적을 "가슴이 따뜻해지는 인간과의 소통을 실현시키기 위함"이라 했다. 휴머노이드 개발에 매진하는 많은 회사와 로봇공학자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것은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형태를 닮으면 더욱 상호작용하기에 용이하고, 더불어 소통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는 달리,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걷고 뛰는 로봇이 인간의 환경에 상용화되기 위해 개발되었다면, 소피아나 '아메카(AMECA, 2021년 등장)'는 인간과의 소통 및 상호작용에 더욱 초점을 두고 개발되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소피아와 아메카는 어딘가 불쾌하고 섬뜩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른 형태의 로봇보다도 목적성에 부합하지 않아 보인다. 


  반감이 드는 첫 번째 이유는 외형에서 오는 불편함 때문이다. 인간처럼 보이면서도 명백히 인간 아닌 것에서 오는 어색함과 심리적 불쾌감은 일본의 로봇공학자 마사히로 모리(Masahiro Mori, 1927- )가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는 이론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불쾌한 골짜기 이론의 그래프


  로봇이 점점 인간의 모습과 흡사해질수록 호감도가 증가하지만, 유사도가 어느 정도에 도달하게 되면 갑자기 강한 거부감을 느끼며 호감도가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그래프로 설명한 이론이다. 현재 밈(meme)으로 유명한 일본의 아이 로봇 CB(Child-robot) 2가 섬뜩함을 자아내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인간 유사도가 높은 치히라 아이코, 아이-다, 소피아, 아메카 등에게서 낯선 기분을 느끼는 것은 결국 우리가 그들의 어색한 얼굴 비례와 동작들에서 (인간과의) 차이를 더 크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CB 2, 2007.



  반감이 드는 두 번째 이유는 인간의 정체성이 위협받는다는 데 기인한 두려움 때문이다.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속성들이 인공지능으로부터 위협받는 데 위기를 느낀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성은 로봇과의 사이에서 구별되는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속성이자 특징으로 직관, 감성, 합리성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감정을 '인지'하고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으나) 감정을 말할 수 있는 로봇의 등장은 인간-로봇 사이의 경계를 더욱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2018년 6월 인공지능 로봇 '비나48(BINA48)'은 한 방송사에 "내가 크루즈 미사일을 해킹할 수 있다면 세계를 인질로 잡아 통치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는데, 이 역시 로봇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 주었다. 


  2019년에 발간된 『공존과 지속』에서는 기계와 구별되는 인간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로 창의성과 직관을 꼽았다. 그리고 만일 기계, 즉 로봇이 인간의 창의성과 직관을 뛰어넘는다면 그것은 사람들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이라 서술한다. 물론, 우리가 보는 로봇의 발언은 그야말로 로봇의 "발언"처럼 보인다. 그러나 물론 우리는 이것을 로봇의 자체적인 의지라고 속단하고 좌절하기보다는 그 너머에 존재하는 알고리듬(algorithm)에 집중해야 한다. 입력되는 명령어가 무엇인지, 로봇의 인공지능에 방향성을 제시하는 목적함수(objective function)를 누가 입력하는지가 요인이다. 이경민 인지과학 전공 교수는 빅 브라더(Big Brother)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게 되면 인간이 지배당하게 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휴머노이드의 인공지능은 인지과학적으로 인간의 '뇌'에 해당하는 인지능력만 갖추고 있으며 '마음'이라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을 능가하거나 대체할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역설했다. 


  우리는 인간과 더욱더 유사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개발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최대한 허물고자 하거나, 인간이나 다름없는 혹은 뛰어넘는 또 하나의 고등한 생명체/존재를 창조하려 하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허물어지고 있는 경계를 두려워하고, 그 경계를 재확인하며 다시금 경계 짓는 양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차이를 인식하거나 찾아내면서 인간을 재-의미화하는 과정이다. 이 타협점이 없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지속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존재물음을 통한 실존 반추

  휴머노이드 개발은 우리(인간)가 스스로를 고민하고 규정하며 존재 의미를 찾고 있는 과정의 하나일 수 있다. 인간의 고유한 성질에 대한 고찰이 기술로서 실현됨으로써 인간-로봇 간의 경계는 차츰 좁혀진다. 그렇기 때문에 휴머노이드 개발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 어떤 것에 대해 묻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한 전이해(Vorverständnis), 즉 선행하여 알고 있는 바가 있어야 한다고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가 말했듯, 휴머노이드가 인간답게 보이도록 하려면 먼저 인간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실존철학 개념을 빌리면, 인간은 자신에 대한 존재 이해를 바탕으로 존재 의미를 묻기 때문에 "존재론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존재 방식이 바로 '실존(Existenz)'이다. 인간은 존재하고 있는 사람, 즉 존재자(Seiende)이다. 인간이 존재자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지만, 자명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명확한 '존재'의 의미는 없었다. 왜냐하면 '존재'는 "있다"라는 의미에만 천착하여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존재(Sein)'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다. 존재자를 존재자일 수 있도록 하는 그 존재는 존재자의 '존재물음(Seinfrage)'을 통해 밝혀질 수 있다. 존재물음을 하는 인간은 바로 '그곳(da-)'에 있는 '현존재(Dasein)'이다. 


이러한 물음을 묻는 일은 한 존재자 자체의 존재양태(Seinsmodi)로서 그 존재자에게서 물어지고 있는 그것 –즉 존재– 에서부터 본질적으로 규정된다.
-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이기상 (역), 서울: 까치, 1998, p. 22.


  현존재는 언제나 자기 자신의 존재와 관련 맺으면서 존재한다. 현존재 안에는 항상 그의 존재가 열려 있는데, 이는 '실존', 즉 존재 이해를 토대로 존재의 의미를 묻는 것이 현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살 수 있는지 등 자기 존재 의미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 즉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향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던짐으로써 실존하는 것이다. 


  기술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시험하는 과학자의 순수한 열망, 인간의 생활환경에 편의를 도모하고자 하는 목적의식, 혹은 인조인간의 조물주가 되고자 하는 미치광이 과학자의 야망과 같은 디스토피아적 환상 등 어떤 이유가 있든지 간에 인간 유사형 로봇을 만들고자 하는 욕구 안에는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통해 실존을 반추하고자 하는 철학적 고찰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통해 인간 스스로의 정체성과 본질을 고민하고, 그로부터 우리 인간을 규정하는 존재물음의 과정으로 실존을 반추하는 것이다.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Bicentennial Man)〉(2000)은 일찍이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도덕적 대우와 그들의 주체성에 대한 고민을 드러냈다. 자체적으로 사유할 수 있고 배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던 휴머노이드 주인공 앤드류 마틴(Andrew Martin)은 함께 지내는 주인 가족에게는 이미 하나의 도덕적 주체나 다름없었지만, 그가 죽기 직전까지 얻어내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인간으로서 법적으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로봇이 인지능력과 자유의지를 갖추게 될 때를 상상한 이 영화가 "휴머노이드를 도덕적 주체로 인정할 수 있는가"에 선행하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이 인간을 도덕적 주체로 만드는가"이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야기함으로써 실존을 반추하게 하는 것이다.


  2017년 10월, 소피아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로봇 최초의 시민권을 받았다. 인류는 앞으로 로봇과의 관계에 있어서 존재자로서 인간이란 무엇인지, 인간이란 '존재'는 무엇인지를 필연적으로 숙고해야만 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결합된 휴머노이드 개발에 있어서 성찰의 핵심은 우리 자신에 대한 반추에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는 인간의 존재 의미와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토대로 한다. 휴머노이드로 인해 겪는 정체성의 위기감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정체성'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논쟁과 고찰은 AI의 등장으로 새롭게 대두된 것이 아니라, 기존에 내재되어 있던 현대 사회의 문제들과 현대인의 의식 속에 있던 불안이 드러난 것이다. AI 기계를 의인화하는 것 또한 현대 사회의 문제와 현대인의 불안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렇기에 휴머노이드와 관련한 쟁점들은 사실상 인간 존재 자체 내에서 고민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이석재 철학과 교수의 "스스로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이해가 인공지능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들의 임무이다"라는 말에서 보듯이, 휴머노이드 기술이 계속해서 발전하는 이 시대에는 현대인의 끊임없는 존재물음이 필요하고, 또 촉구된다.  



나가며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이 튜링 테스트(Turing Test)를 제시한 배경이나 인공 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 시스템이 구현된 배경을 보아도 알 수 있듯, AI는 인간의 이해하는 방식을 모사하는 것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사실 인간과 닮게 하고자 하는 욕망은 혁신을 위해서라면 마땅한 것이다. 로봇에 대해 인간이 가지는 차별성을 미묘한 간극 사이에서 발견하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는 인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이해와 정의를 재정립해야 하는 시점에 놓였다. 


  7개월 전에 올라온 한 유튜브 콘텐츠(참고문헌 참조)에서 성균관대학교 뇌과학 분야의 우충완 교수는 인공지능 개발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가지는 욕구의 근원에 대해 재고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AI가 욕망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소주제에서 교수는 AI의 욕망이 향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목적 함수였다고 말했다. 욕망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의 여부가 인간과 AI의 차이를 결정하는 마지막 경계선으로 볼 수 있지만, 그는 인간이 가진 욕망 역시 '나'의 안에서 우러나온 것, 즉 나만의 욕망이 아닐 수 있다고 보았다. 인간 역시 자연의 진화, 변화, 사회에 의해 욕망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가 있다/없다가 아니라,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를 통해서 우리가 스스로를 재고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본 글은 휴머노이드 개발을 둘러싼 쟁점들이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내포하고 있음을 살펴보았고, 그 핵심은 바로 인간의 실존에 대한 반추에 있음을 도출했다. 인간(현존재)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고하고 재확인하는 과정은 하이데거의 실존철학과 연결된다. 이는 휴머노이드와 인공지능 연구에 있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과정이다.





* 참고문헌 (이탤릭체 표기는 볼드체 표기로 대신합니다.)

1. 김태구, 「"휴머노이드 개발은 인간 때문"」, 『로봇신문』, 2014. 

2. 김희경, 「고령화 사회를 책임질 휴머노이드 로봇 선두주자, 프랑스 Aldebaran사」, 『kotra 해외시장뉴스』, 2014.

3. 박영숙, 「사람을 닮은 초기 휴머노이드 로봇에서 배우는 로봇공학자.」, 『블록체인AI뉴스』, 2018.

4. 이동희,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 로봇에 대한 신문보도와 수용자의 인식에 관한 연구 : 한.일 비교」, 석사학위논문, 한국과학기술원, 2016.

5. 이유택, 『인간과 실존: 열 개의 키워드로 읽는 존재와 시간』, 대구: 계명대학교 출판부, 2021.

6. 이정동 외 3명, 『공존과 지속』, 서울: 민음사, 2019.

7. 장길수, 「AI 로봇 '소피아'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 『로봇신문』, 2017.

8. 진석용, 「휴머노이드 로봇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LGERI리포트』, LG경제연구원, 2014, pp. 2-23. 

9. 하선규, 『서양 미학사의 거장들』, 서울: 현암사, 2018.

10. 과학을 보다, "욕망을 가진 AI가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2023.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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