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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Sep 30. 2021

옛 친구를 찾아 나서는 길

글쓰기, 꾸준함의 중요성.



 학점, 대외활동, 봉사활동, 자격증 공부···. 몰아치는 현실 속에서 글 쓰는 것을 잊고 살았다.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올바르겠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도 무심결에 글감이나 단어가 툭툭 튀어나오는 건 여전했다. 문장이 되지 못한 채 토막 난 단어들. 천천히 입 안에서 굴릴 때면 글을 향한 열망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첫 번째 계기가 운명적으로 찾아왔다. 



 지난 학기 '시 창작 실기론' 수업을 수강하였다. 아무리 바쁜 삶 속에서도 잡은 마지막 글은 놓지 말자. 내가 양보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그러나 막상 수업을 들으니 눈앞이 막막했다. 글 쓸 때 말이 많은 내게 시 창작은 소설 창작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작성한 시를 검사받는 첫 첨삭 시간에 형편없는 시를 내놓고야 말았다. 교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다시 써야겠구나" 하셨다. 고뇌한 흔적을 지워내고 다시 시를 작성하며 생각했다. "이 수업 큰일 난 거 아니야?" 


 아예 다른 쪽으로 접근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시를 쓰는 것에 집중하는 것보다, 이야기를 담는 것에 집중하면 어떨까? 방식을 바꾼 이후부터는 좋은 평을 받았다. 장원이라는 칭찬까지 들은 이후로는 시에 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긴 인연으로 이번 학기 역시 교수님의 시 창작 수업을 수강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시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글은 내게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이구나 하는 두 번째 계기가 있었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한 권의 책. 


 마치, 지레 겁먹고 도망가는 내 멱살을 붙잡아 끌어당기는 느낌.



 작년 여름 경, 박연준 시인의 '모월 모일'이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 "택시 안에서 태어난 시들은 죄다 한강에 빠져 죽었다." 모든 문장이 좋았지만 저 문장 하나로 인해 작품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올해. 고생한 내게 줄 선물을 고르고 있을 무렵 눈앞을 스쳐 지나간 박연준 시인의 신간, '쓰는 기분'. 이번에도 좋은 책일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책 설명을 읽지도 않고 카트에 담았다. 


 그리고 어느 날 새벽. 일부러 세상이 잠든 시간에 책장을 넘겼다. 동화책을 읽으며 아이를 잠재우는 어른처럼. 책 초반 메타포에 관한 설명이 있었다. 은유에는 도통 소질이 없어서 잠시 눈을 끔뻑거렸다. 메타포를 연습하기 위한 예시 단어가 있었지만, 우선 나름의 과정부터 거쳤다. 



 정신을 가다듬고, 주름 하나 없는 종이를 꺼내 깊은 호흡 한 번

 방금 전 결연했던 마음은 어디 가고 막막함이 밀려왔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쓰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구나. 



 외면하고 마저 메타포를 작성했다. 솔직히 다 별로였다. 하지만 연습 과정이니 완성하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그 뒤 불을 끄고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세상에 관심을 가져야 언어 감각이 섬세해진다고 한다. 내가 글 앞에서 주저하는 것도, 종이 위에서 방황하는 것도 이 탓이 아닐지 생각했다. 바쁨을 핑계로 옛 친구를, 좋아하던 글을 너무 방치해온 게 아닐까. 이제부터는 다시 옛 친구를 찾아 나서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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