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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레온 Leon Firenze Leem Nov 27. 2022

Diary of a Fleeting Affair

모든 관계가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위험을 감수할 준비

Rotton Tomatoes_Diary of a Fleeting Affair (2022)


회피형 둘이 만나서 연애하려고 하는 이야기.

주인공 둘 다 회피형 & 안전제일주의라 결정적인 순간에서 자꾸 한발 물러나는데, 하필이면 상황조차 이 회피형들의 일말의 용기를 꺾는다.


주인공 둘은 만남 초반에서부터 둘의 관계를 혼외 섹슈얼 파트너로 정의한다.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둘의 만남은 잦아지고 서로에 대한 둘의 감정도 변화하는데 이들의 관계는 새롭게 정의되지 않는다.

분명 이제 둘이 사랑하고, 질투하고, 작은 소유욕과 독점욕도 느끼는데 이러한 감정의 변화를 본인 스스로와 상대방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무관심한 듯한 언행으로 무장한다.


알맹이는 계속 바뀌고 있는데 껍데기는 그대로인 답답한 관계 속에서 분명 서로에게 얻고 싶은 확신이 있는데, 그 확신을 직접적으로 요구하지도 않고, 상대에게 확신을 주는 말과 행동을 해주지도 않는다.

이 관계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늘 시달리지만, 서로를 잇는 실낱같은 연결 고리를 붙잡고 있는 것 말곤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문제는 이 고리도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것이고, 관계는 끊임없이 불안정하다.


둘은 처음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지 않고, 최대한 관계에서 감정을 배제하려고 함으로써 관계를 안정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그게 쉽고 확실하니까.

그런데 오히려 이러한 관계적 회피가 이 둘 사이를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게 만든다.

둘이 감정적으로 주고 받는 표현들이 없으니까. 서로에게 준 확신도 없고.


한 발짝씩만 더 나오면 될 걸, 자꾸 발을 빼다가 결국 Simon은 Charlotte을 Louise(시몽과 샬롯의 여성 원나잇파트너)에게 뺏기고 만다.

끝을 고하는 Charlotte을 Simon은 단 한번도 붙잡지 않는데, Charlotte은 이전에 이러한 Simon의 성격을 두고 "over-considerate"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결국 회피형의 사람들은 본인 스스로와 상대를 지나치게 배려하기 때문에 어떠한 언행도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건가,

모두에게 그 어떤 부담도 지우고 싶지 않아서 그냥 관계가 다른 요인에 의해 자연스럽게 종결되길 기다리는 건가, 생각했다.


Charlotte도 Simon도 이별에 꽤나 의연하다.

섹슈얼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는 내내 이 관계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각자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일 것이고,

결정적인 순간에 확신을 주지 않고 회피해버리는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수많은 작은 상처들에 너무 무뎌진 나머지 이별이 주는 고통을 당장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Charlotte이 Simon과의 끝을 고하고 Louise랑 연애를 시작한 2년 뒤 Simon과 Charlotte이 우연히 다시 만난다.

둘의 관계 속에서 회피성과 두려움을 더욱 강하게 내비췄던 Simon은 이때 Charlotte에게 과거의 자신의 태도를 사과하고, 관계의 재결합을 제안한다.

Charlotte은 Simon을 밀어내며 “당신도 나도, 잘못을 하지는 않았다. 그냥 타이밍이 안 맞았을 뿐이다. 당시는 당신이 용기를 낼 타이밍이 아니었던 거다.” 하고, Simon은 “그 타이밍과 용기를 직접 만드는 것도 내가 당시 가져야할 태도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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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영 후 주연배우와의 Q&A세션에서, 엠마누엘 무레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결정적인 메시지는 “every relationship carries risk” 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관계는 위험을 수반하지만, 그 위험을 기꺼이 감수할 만한 관계인지, 내가 그 위험을 감수해도 괜찮은 타이밍과 상황에 놓여있는지, 상대방도 그 위험을 나와 함께 감수할 의사가 있는지에 따라 관계의 과정과 결말이 달라지는 거니까.

결국 모든 관계는 위험을 수반하지만,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에 따라 관계의 과정과 결말이 달라진다 가 영화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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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과 감정선, 미장센이 부담스럽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이른 봄부터 여름에 걸쳐있음에도 불구하고 프레임  모든 색감이 전체적으로 도를 한층 덜어낸 톤이었는데, 영화의 내러티브 곡선이 완만하고 차분해서 색감과 줄거리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적극적으로 관계 발전에 임하지 않고, 자꾸만  발짝 빼고, 행동을 하기 전에 과하게 생각하고, 말을 자꾸 삼키는 주인공들의 태도가  차분하고 정제된 뮤트/라이트 톤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Diary of a Fleeting Affair라는 제목 답게, 둘의 만남이 일기처럼 날짜로 기록되는 것도 좋았다.

일기장 같은 영화 구조 덕분에 만남 주기와 관계의 알맹이 변화가 time-linear하게 보였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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