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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레온 Leon Firenze Leem May 08. 2020

이탈리아 부흥의 기원을 찾아서

(1) 이탈리아 부흥의 역사의 초석: 고대 로마

나는 격동의 시대를 좋아한다. 이전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이전 시대에 문제 의식을 갖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과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이념들을 좋아한다. 이 격동의 시대가 예술가 개개인의 독특한 시선과 철학에 의해 편집되어 예술 작품으로 기록되는 것은 더욱 더 좋아한다. 특히, 격동을 겪어 열린 이후의 시대가 번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빛과 어둠의 공존과 모순을 좋아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 예술가와 건축가들이 찬란히 빛났던 시대이다. 사람들의 이념이 완전히 바뀌고, 새로운 가치를 상징하기 위해 온갖 건축물과 예술품이 이전 시대와 양상을 달리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이름을 알고 있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산치오 같은 예술가들이 바로 르네상스 시대의 서유럽을 빛냈던 거장들이다. 이외에 단테, 메디치 가문, 보티첼리 등 많은 예술가들과 그들의 후원자들은 각기 다른 생을 살며 각자 다른 방법으로 그들의 시대를 역사에 뚜렷하게 새겼다. 그러나, 한 곳이 너무 밝으면 빛이 없는 곳은 더 어두워보이기 마련이다. 여러 예술가들이 빛을 발하는 동안, 그들이 찬란히 빛날수록 더욱 어둠으로 파고들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이 극명한 빛과 어둠의 대비에 끌려 르네상스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2019년 2월 르네상스의 기록들을 두 눈과 발로 직접 경험하기 위해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로 혼자 떠났다.


착륙 전에 마주한 로마의 밤

약 3주 간의 나의 이탈리아 여행은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시작된다. 르네상스를 더 깊이있게 이해하려면 고대 로마의 흔적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는 14~16세기에 고대 로마 문화/예술을 부흥시켜 인간적인 가치를 되찾기 위해 서유럽에서 나타난 운동이었기 때문에 르네상스의 기원인 고대 로마를 먼저 가 보기로 했다. 당시 대륙을 제패했던 고대 로마가 그 이후의 시대에 이탈리아와 그 인접 국가들에 불러온 영향들을 확인하고 싶은 이유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인천에서 프랑스 파리를 경유해 이탈리아 로마에 발을 디디게 된다.


# 2019년 2월 5일, 이탈리아 여행 1일차.

여행의 설렘 때문인지 일찍 눈이 떠졌다. 전 날 밤 늦은 시간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도착해 한인 픽업 서비스를 이용해서 로마 중심에 위치한 작은 숙소로 이동했다. 파리에서 경유해서 로마로 오는 과정에서 파리에 내 짐이 묶여 짐을 잃어버린 셈이 되었지만 이 사건은 내 기분에 흠집 조차 내지 못 할 정도로 나는 설렘에 가득 차 있었다.


이탈리아에 도착해 처음 찍은 사진들. 처음 밟는 이탈리아 땅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고대 로마 유적이자 로마의 랜드마크나 다름 없는 콜로세움이 내 첫번째 목적지였다. 여행 시작 훨씬 전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소매치기 이야기 때문에 잔뜩 긴장한 상태였지만 조금 차가운 듯 하면서도 맑고 상쾌한 로마의 겨울 공기와 파란 겨울 하늘이 설렘을 배가시켰다. 워커의 두툼한 고무 밑창 밑으로 느껴지는 세월을 간직한 돌바닥의 느낌도 내가 느꼈던 전율에 큰 몫을 했다. 콜로세움으로 향하던 길목에서 우연히 트레비 분수까지 마주하자 마치 이탈리아가 나를 반겨주고 있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트레비 분수 (Fontana di Trevi)

분수를 등진 채 동전을 뒤로 던져 분수 안에 동전을 넣으면 로마에 반드시 돌아온다는 낭만적인 소문을 간직한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는 한 앵글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1762년에 완성된 트레비 분수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건축가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디자인을 시작으로 니콜라 살비와 주제페 판니니가 완성한 로마의 대표적인 분수이다. 르네상스의 기원인 고대 로마를 만나러 가던 도중 르네상스의 일부를 마주쳐 버린 것이다. 개선문의 장식들을 떠오르게 하는 흰 대리석 조각상들과 민트색의 연못, 선명하다 못해 쨍한 푸른 하늘이 몹시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한참을 분수 앞에 앉아있다가 콜로세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콜로세움의 외관.

트레비 분수에서 콜로세움까지 가는 경로는 그리 멀지 않았다. 로마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건축물들과 바닥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걸으니 금방이었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일부가 나무에 가려진 콜로세움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그 유명한 고대 로마의 잔혹한 원형 경기장이 내 눈 앞에 있었다.


콜로세움의 내부.

약 5만명의 로마인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했던 콜로세움(Colosseum)은 명성에 맞게 거대한 위용을 자랑했다. 약 2000년 전에 지어진 5만명의 관객을 수용했던 이 4층짜리 건축물은 고대 로마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자랑함과 동시에 고대 로마가 시대를 제패할 수 있던 이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정치 변동의 증거물이자 고대 로마의 위용을 자랑하고,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한 정치적 장치로도 사용되었던 콜로세움은 세계적인 명성만큼이나 다양한 역사적 상징성을 가진다.

폭군으로 알려진 고대 로마의 황제 네로는 어머니와의 권력 다툼 끝에 어머니를 살해하고 본인의 위상을 위해 값비싼 프레스코화로 꾸며진 황금 궁전을 건설하는 바람에 로마 시민들의 질타를 받는다. 로마 시민들이 그에게 돌아서게 되면서 네로는 끝내 자살을 하게 되고, 이후 왕위를 계승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네로 황금 궁전의 인공호수를 헐고 그 자리에 로마 시민을 위한 경기장인 콜로세움을 짓는다. 이후 콜로세움은 검투 경기장으로 사용되며 정치적 혼란이 있을 때마다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한 오락거리로써의 기능을 한다. 콜로세움은 중세시대에 교회로 사용되기도 하는 등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오늘날까지 로마 역사의 증인이 되었다.


콜로세움의 바깥쪽 관객석을 따라 걸으면 창문 너머로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이 보인다. 콜로세움에서 나와 이 개선문을 지나면 고대 로마인들의 생활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는 포로 로마노 유적이 나온다.

티투스 황제 개선문

포로 로마노에 입장해서 팔라티노 언덕을 오르니 언덕 아래의 포로 로마노 유적이 한 눈에 보였다. 언덕 위에서 기분 좋게 부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 내려다보는 고대 로마의 심장은 그 웅장함과 건축물 하나하나의 디테일들이 사진에 담기지 않을 정도였다. 언덕 밑 포로 로마노로 내려가 신전, 기념비, 바실리카 등의 건축물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고대 로마인들의 삶을 상상했다. 약 1000년간 고대 로마의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와 콜로세움은 고대 로마 문화/예술 발달의 디딤돌이 되어 르네상스 예술의 초석이 되었을 것이다. 이탈리아 역사와 부흥의 기원인 셈이다.

팔라티노 언덕에서 내려다 본 포로 로마노 (좌측)
팔라티노 언덕에서 내려다 본 포로 로마노 (오른쪽)
포로로마노
포로로마노
포로로마노
포로로마노의 신전
캄피돌리오 광장에 위치한 미켈란젤로의 기마상


고대 로마의 심장에서 빠져나와 걷다보면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광장이 나온다. 캄피돌리오 광장이다.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유명한 도시 광장 답게 중앙에 미켈란젤로의 작품인 기마상이 설치되어 있다. 이 기마상과 광장의 건물들은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인데, 그 이유는 미켈란젤로가 건축 당시 고려한 투시성과 공간 통일성에 있다. 도보로 20분이 채 안 되는 거리에 천 년을 뛰어넘는 두 찬란한 시대가 공존한다. 로마의 매력은 이와 같이 시대와 공간이 교차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느꼈다.

판테온의 외관
판테온의 천장.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빠져나와 스페인 광장을 지나 레스토랑과 기념품점이 늘어진 골목들을 걷다보면 판테온이 나온다. 다신교였던 로마의 신전으로 건축되었던 판테온(Pantheon) 내부에는 제우스를 포함한 로마에서 중요하게 모셨던 신들이 모셔져있다. 판테온 내부에 들어가면 입장객의 절반은 모두 고개를 들어 천장을 응시하고 있는데, 이는 하늘을 한 조각 보여주는 천장에 뻥 뚫린 구멍 때문이다. 이 구멍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피렌체 대성당의 돔에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차용되어 더 유명하다.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 이탈리아를 연결하는 수 많은 실 중 하나인 셈이다.


판테온까지 무사히 관광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잠깐 쉬다가 낮에 본 건축물들의 야경을 보기 위해 밤에 다시 나와야 했다. 로마에서는 반드시 야경을 볼 것을 추천한다.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건축물들이 즐비한 로마의 밤은, 마치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처럼 밤이 되면 시간이 꿈틀대고 고대,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로마 시민들이 죄다 나와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일상을 영위할 것만 같다. 낮에는 웅장하게만 보였던 로마의 역사가 밤에는 몹시 낭만적이며 동시에 현실적으로 보인다.

야경 투어가 끝나고 숙소에 들어와 침대에 몸을 뉘이니 하루 동안 느낀 여러 감정들이 한번에 몰려왔다. 사실 아직 내가 이탈리아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첫째날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기원이었던 고대 로마를 보았으니 둘째날은 르네상스 이탈리아가 열린 직접적인 계기였던 중세시대를 경험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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