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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영 May 07. 2020

치료보다 예방

코호트연구는 만성질환 예방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사람의 건강을 돌보는 학문이 질병에 대항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는 질병을 잘 치료하는 것입니다.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하고, 질병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를 제공함으로써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덜고자 하는 것이지요. 20세기 중반 항생제가 개발된 덕분에 감염으로 인한 사망률이 크게 감소한 것이라든가, 다양한 항암제가 개발되어서 암으로 인한 사망률이 크게 감소한 것 등이 "치료"를 중점에 둔 방식의 성공사례들입니다. 둘째는 질병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감염성 질병의 경우 백신을 개발해서 널리 접종케 한다든가 감염경로를 차단한다든가 해서 감염 자체를 줄이려고 합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수많은 어린이들의 목숨을 앗아가곤 했던 소아마비가 지금은 지구상 대부분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전적으로 20세기 후반 소아마비 백신이 개발되고, 전세계가 소아마비 백신 접종에 힘썼던 덕분입니다. 그렇다면 감염으로 인한 질병이 아닌 경우에는 어떨까요?



오늘날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질병은 감염으로 인한 것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심장병, 암, 당뇨 같은 질병들 말입니다. 옛날, 그러니까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훨씬 짧던 시절에는 심장병이나 암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이런 질병에 걸리는 것은 보통 노인들인데, 많은 사람들이 노인이 되기 전에 죽었기 때문이에요. 요즘에는 위생과 영양상태도 좋고 의료 혜택을 받기도 쉬워서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훨씬 길어졌습니다. 2016년에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82년을 살 것으로 기대된다고 해요. 16세기 영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평균 35년 정도를 살았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오래 살게 된 것이지요. 노인인구가 늘어나면서 심장병이나 암, 당뇨처럼 나이듦에 따라 발병률이 증가하는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습니다. 의료 혜택을 누리기 쉬워지면서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은 떨어졌기 때문에 이런 질병에 걸린다는 것은 오랜 세월 치료를 계속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당뇨 진단을 받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혈당관리에 신경쓰면서 살아야 하고, 고혈압인 사람은 죽을 때까지 혈압을 관리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지요. 평균수명이 늘어난다는 건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병치레를 하면서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한 겁니다. 이런 질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커지겠지요.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많은 나라들이 비감염성 질환의 "예방"에 힘쓰는 이유입니다.



질병을 예방하려면, 무엇이 질병을 일으키는지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감염성 질병의 경우에는 어떤 미생물에 감염된 것인지를 알아내야 합니다. 에이즈가 처음 알려졌던 1980년대에는 아무도 이것이 어떤 질병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고, 어떤 바이러스인지 밝혀지고 나서야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게 되었지요. 요즘에는 HIV에 감염되어도 치료만 잘 받으면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위험 없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감염성 질병의 경우에는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질병의 원인이 한가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스무 배 가량 높아지지만, 담배를 피우는 사람 모두가 폐암에 걸리는 것도 아니고 폐암에 걸리는 사람 전부가 흡연자인 것도 아닙니다. 흡연이 폐암의 충분조건도 필요조건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어떤 요인이 어떤 질병에 걸릴 위험을 얼마나 높이는지 하나 하나 찾아봐야만 합니다. 붉은 고기를 많이 먹으면 암에 잘 걸리는 걸까? 살이 찌면 당뇨에 더 잘 걸리는 걸까?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동맥경화에 걸리기 쉬워지는걸까? 이런 질문에 답하는 데에 코호트연구가 큰 도움이 됩니다.


1948년 시작된 프레이밍햄 연구에 참여했던 의사들


1948년 프레이밍햄이라는 미국의 작은 도시에서 심장병의 원인을 밝히고자 하는 목적으로 코호트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프레이밍햄 심장병 연구 (Framingham Heart Study)"라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최장기 코호트연구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심장병이 없는 성인 5000명을 20년간 추적조사했고, 그다음에는 이 사람들의 자식들을, 그리고 그다음에는 손자손녀들을 추적조사했고, 조사대상을 조금씩 넓혀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프레이밍햄 성인 인구가 만 명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야심찬 프로젝트였는지 감이 오지요? 이 야심찬 프로젝트는 실제로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연구를 기반으로 발표된 논문만 3700 편이 넘습니다. 이후로 추진된 수많은 코호트연구에 귀감이 되기도 했고요. 오늘날 우리가 심장병에 대해 알고 있는 많은 사실들이 프레이밍햄 심장병 연구 덕분에 밝혀졌습니다. 고혈압이 심장병에 걸릴 위험을 크게 높인다는 것, 혈중 HDL 콜레스테롤은 낮을수록, LDL 콜레스테롤은 높을수록 심장병에 걸릴 확률이 높더라는 것, 당뇨에 걸리면 심장병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는 것 등입니다. 요즘에는 상식으로 여겨지는 사실들이지요.



프레이밍햄 심장병 연구가 시작될 무렵에는 나이들면 혈압이 올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로 생각되었습니다. 1941년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혈압은 188/105 mmHg였는데도 주치의는 60세인 점을 고려하면 정상혈압이라고 판단했다고 해요.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5년에 심장병으로 사망했습니다. 프레이밍햄 심장병 연구 덕분에 1957년 쯤에는 혈압이 160/95 mmHg 이상인 경우 정상혈압인 경우보다 심장병 발병률이 네 배 가까이 높아진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다만 이런 연구성과가 의료현장에 반영되기까지는 한참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의학전문가들이 코호트연구처럼 실험 없이 관찰에만 기반한 연구 성과를 믿지 못하는 건 흔히 벌어지는 일입니다. 이후 연구가 진행되고 자료가 쌓이면서 고혈압 치료의 중요성이 더욱 분명해졌고, 한편으로는 고혈압치료제의 효과가 무작위대조시험 결과로 검증되면서 보수적인 의학계도 마침내 프레이밍햄 심장병 연구 결과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어떤 요인이 심장병 위험을 높이는지를 알면, 심장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고혈압이 심장병 위험을 높인다면, 고혈압을 치료함으로써 심장병을 예방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혈압을 떨어뜨리는 약을 먹을 수도 있겠지요. 더 좋은 방법은 생활습관을 바꾸는 겁니다. 짜게 먹지 않는 것, 살을 빼는 것만으로도 혈압을 한참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요즘같았으면 루스벨트 대통령도 일찌감치 혈압조절을 위한 치료를 받았을 테고, 아마도 훨씬 오래 살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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