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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영 May 07. 2020

적당한 음주는 몸에 좋다던데요?

알콜섭취의 영향에 관한 최신 연구결과

하루 한 잔 정도의 가벼운 음주는 몸에 좋다는 얘기를 흔히 듣습니다. 아주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1997년 미국에서 49만 명의 음주습관과 사망률을 조사한 결과 하루에 한두 잔 정도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들보다 사망률이 낮더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가벼운 음주가 몸에 좋은 것이 라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거든요. 이후로 비슷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고, 술을 전혀 마시지 않거나 많이 마시는 것보다는 하루 한두 잔 정도의 가벼운 음주가 건강상 유리하다는 결과가 많이 발표되었습니다. 특히 가벼운 음주가 심혈관질환 발병률을 낮춘다는 연구결과가 꾸준히 나왔지요. 덕분에 "하루에 맥주 한 잔, 심장병 예방에 도움된다", "하루 한 잔 술, 심장병 위험 4분의 1로 줄여" 같은 기사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루에 술 한 잔씩 마시는 것만으로 심장병 예방이 된다니, 애주가들에게 기쁜 소식이었겠지요. 그럼 평소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에게 심장병 예방을 위해 저녁마다 와인을 곁들이는 습관을 들여보라 권하는 건 어떨까요? 조금 망설여진다고요? 맞아요, 그렇게 권해서는 안됩니다. 



음주를 함부로 권해서는 안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득보다 실이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설령 가벼운 음주가 심장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간질환이나 소화계질환, 암과 같은 많은 다른 질병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단기적으로 부작용이 있잖아요. 인지능력이 떨어져 사고의 위험이 늘어나고 (그러니까 단 한 잔이라도 술을 마신 다음에는 자동차를 몬다든가 기계를 운전한다든가 하는 일이 아주 위험한 것이지요) 폭력에 휘말릴 위험도 커집니다. 꾸준히 술을 마시는 경우 알콜중독의 위험도 큽니다.



하루 한 잔 정도의 가벼운 음주는 보통 안전하다고 여겨지지만, 이때 '가벼운 음주'의 기준이 무엇인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루 한 잔의 가벼운 음주는 안전하다'고 할 때의 한 잔은 알콜 14그램을 기준으로 합니다. 알콜 도수가 5%인 맥주의 경우 355ml짜리 작은 한 캔, 20%인 소주라면 작은 소주잔으로 한 잔에 알콜 14그램이 들어 있습니다. 알콜 도수 12%인 와인이라면 150ml 즉 가득 채우지 않은 한 잔 정도를 말합니다. 만약 500ml짜리 맥두 두 캔을 마셨거나 큰 와인잔에 가득 따른 와인 두 잔을 마셨다면 알콜 14그램을 한 잔으로 여기는 계산법에 따르면 벌써 세 잔을 마신 셈입니다. 집에서 담근 과일주나 전통주 같은 경우에는 알콜 함량을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얼마나 많은 알콜을 섭취했는지 알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지요. 음주의 적정선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하루 한 잔은 괜찮댔어


그럼 이번엔 가벼운 음주가 심혈관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얘기를 좀 더 살펴볼까요? 앞서 언급한 1997년 미국 연구는 물론 비슷한 많은 연구들에서 음주량에 따른 심혈관질환 발병률의 그래프를 그려보면 U자 모양이 되었습니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거나 많이 마시는 경우에는 발병률이 높고 술을 조금만 마시는 경우에는 발병률이 낮으니 U자 모양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그래프 만으로는 알 수 없는 내용도 있습니다. 만약 연구 대상이었던 사람들 중 일부가 원래 술을 즐겨 마셨지만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 술을 끊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분명 술을 끊었으니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 분류되겠지만, 술을 끊어야 할만큼 건강이 좋지 않으므로 건강한 다른 사람들보다 심혈관질환에 걸릴 확률은 높겠지요. 그래프의 왼쪽 끄트머리가 위쪽으로 휘어지게 만들 겁니다. 실제로 평생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과 과거에 술을 마셨으나 끊은 사람을 구별한 연구에서는 술을 끊은 사람이 평생 술을 전혀 마시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심혈관질환 발병률이 높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가벼운 음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술을 전혀 마시지 않거나 많이 마시는 사람들과 알콜 섭취량 말고도 다른 차이점이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저녁식사에 와인 한 잔을 곁들이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성격이 느긋하고 여유로운 사람들일 수도 있잖겠어요? 그리고 이렇게 여유로운 성격의 소유자들이 스트레스에 강하고 심혈관질환에 덜 걸리는 거라면요. 그렇다면 약간의 알콜이 실제로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효과가 없더라도 U자 모양 그래프가 나올 수 있습니다. 또는 가벼운 음주를 즐기는 사람들이 친구가 많고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어서 더 건강할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외로운 사람들이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거든요.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술을 마시지 않는 외로운 사람들이 하루 한 잔씩 혼자 술을 마신다고 해서 심혈관질환 발병률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음주량과 심혈관질환 발병률 사이의 U자 모양 그래프 (출처: Wood et al, The Lancet 2018)


의문을 해결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실험이겠지요. 술을 마시지 않는 건강한 성인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술을 마시지 않게 하고 다른 그룹은 하루 한 잔씩 술을 마시도록 하는 겁니다. 그리고 심혈관질환 발병률이 두 그룹 사이에서 어떻게 다른지 보면 됩니다. 하지만 심혈관질환 발병률을 제대로 비교하려면 얼마나 오랫동안이나 연구를 계속해야 하는 걸까요? 건강한 성인이 심혈관질환에 걸릴 확률은 매우 낮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오랜 기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5년, 어쩌면 10년이 걸릴지도 몰라요. 이런 경우에는 실험연구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휴먼게놈프로젝트의 성공 이후로 새로운 길이 열렸습니다. 유전자형을 이용해서 실험 연구와 비슷한 효과를 얻는 것입니다.



인간의 유전정보는 항상 쌍으로 존재합니다. 엄마아빠로부터 하나씩 물려받기 때문이지요. 엄마와 아빠 각자도 유전정보를 쌍으로 가지고 있지만 둘 중 하나씩만 물려줄 수 있습니다. 한 쌍의 유전정보 중에서 어떤 것을 물려주게 될지는 난자와 정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무작위하게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DNA의 어떤 위치에 엄마는 A(아데닌)이라는 뉴클레오타이드와 G(구아닌)이라는 뉴클레오타이드를 가지고 있고, 아빠는 C(시토신)과 T(티민)을 가지고 있다고 해 봅시다. 엄마의 몸에서 만들어지는 난자의 절반은 DNA의 이 위치에 A를 갖게 되고 나머지 절반은 G를 갖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아빠의 몸에서 만들어지는 정자의 절반은 DNA의 같은 위치에 C를 갖게 되고 나머지 절반은 T를 갖게 됩니다. 어떤 난자와 어떤 정자가 만나는지에 따라 A와 G 중에서 하나, C와 T 중에서 하나를 물려받게 됩니다. AC, AT, GC, GT의 네 가지 유전자형 중 하나가 되겠지요. 그중 무엇을 갖게 될지가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무작위로 네 개의 그룹으로 나누는 실험과 비슷한 셈입니다. 만약 이 위치에 어떤 뉴클레오타이드를 갖는지에 따라 알콜 섭취량이 달라진다면, 알콜 섭취량을 무작위로 결정하는 실험이라고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실제로 ALDH2 (aldehyde dehydrogenase 2)라는 효소를 만들어내는 유전자의 특정 위치에 A를 갖느냐 G를 갖느냐에 따라 알콜 섭취량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술을 마시면 알콜이 분해되어 아세트알데히드가 생기는데, 아세트알데히드는 독성물질이기 때문에 몸에 축적되지 않도록 분해해 주어야 합니다. 아세트알데히드를 분해해서 해롭지 않은 아세테이트로 바꾸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ALDH2입니다. 그런데 이 유전자의 어떤 위치에 G가 아니라 A를 갖는 경우 기능이 훨씬 떨어지는 ALDH2가 만들어집니다. 엄마로부터도 A, 아빠로부터도 A를 물려받아 AA 유전자형을 가진 사람은 ALDH2 효소의 기능이 아주 약합니다. 이렇게 ALDH2의 기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술을 마셨을 때 아세트알데히드가 느릿느릿 분해되기 때문에 술을 조금만 마셔도 괴로움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술을 한모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거나 속이 메슥거리는 사람이 있지요? 아마도 ALDH2에 AA 유전자형을 가진 사람일 겁니다. 중국에서 이루어진 최신 연구에 따르면 AA 유전자형인 사람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GG 유전자형, 그러니까 ALDH2의 기능이 최고로 좋은 사람들은 평균 하루 네 잔까지도 마시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제 사람들에게 술을 얼마나 마시는지 묻는 대신 ALDH2에 어떤 유전자형을 가졌는지를 조사함으로써 사람들을 무작위로 술을 마시는 그룹과 마시지 않는 그룹으로 나누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ALDH2의 유전자형에 따라 심장병 발병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조사하면, 일종의 실험연구를 하는 셈이 됩니다. AA 유전자형을 갖느냐 GG 유전자형을 갖느냐 하는 것은 우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므로 느긋한 성격이나 인간관계 등 다른 요인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집니다. 또, 어떤 유전자형을 갖는지는 태어날 때 결정되어서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 것이기에 건강상의 이유로 술을 끊은 사람들 때문에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닐지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중국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연구한 결과 술을 못 마시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술을 많이 마시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 비해 심장병 발병률이 크게 낮아지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유전자에 의해 예측된 알콜 섭취량과 심장병 발병률 사이에는 U자 모양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답니다. 가벼운 음주의 심장병 예방 효과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증거가 나온 것이지요. 애주가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가벼운 음주가 건강에 좋다는 건 이제 시대에 뒤떨어진 얘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음주량에 의한 뇌졸중 위험 변화는 기존 연구방법으로는 U자 모양이지만 (위) 사실은 직선임 (아래) (출처: Millwood et al, The Lancet 2019)


이런식으로 유전정보를 활용해서 실험과 유사한 효과를 얻는 연구방법을 "멘델의 무작위 (Mendelian randomization)" 연구라고 합니다.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방식이 무작위적이라는 사실을 밝힌 멘델의 유전법칙을 활용한 무작위 실험이라는 뜻입니다. 휴먼게놈프로젝트와 이어진 유전자 분석 연구의 비약적 발전 덕분에 멘델의 무작위 연구는 아주 인기있는 연구기법이 되었습니다. 비윤리적이거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서 실험연구를 할 수 없는 경우에 아주 유용하지요.



다만 실험을 할 수 없는 모든 경우에 멘델의 무작위 실험 기법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벼운 음주가 심혈관질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자 하는 경우에 멘델의 무작위 연구 기법을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알콜 섭취에 영향을 미치는 ALDH2라는 효소의 유전자형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련 유전자가 알려져 있지 않은 경우에는 이런 연구가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공기오염이 사망률을 높이는지를 알아보는 연구를 생각해보면, 실험을 할 수 없는 연구임에는 틀림없지만 멘델의 무작위 연구 또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공기오염 노출 정도를 결정하는 유전자라는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이럴 땐 역시 고전적인 기법에 기대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코호트연구나 환자-대조군연구와 같은 고전적인 연구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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