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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 Jan 16. 2022

(29) 45일,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기



 작년 12월부터 올해 1월 중순에 이른 지금까지, 저는 제목처럼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보내며 매 순간을 지냈습니다. 저의 선입견이겠지만 유독 '인생'이라는 단어에는 '흘러간다'라는 말이 붙으면 무언가 나태하고 게으르게 살았다는 어감이 느껴지는데요, 오늘은 제가 지난 45일간 인생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본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정의하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능하겠지만, 저의 경우엔 크게 나누어 2가지를 충족하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뜻과 관계없이) 주어 지거나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

 마음에 내키는 것을 하며 살아가는 것


 첫 번째는 아무래도 직장생활이나 인간관계, 집안의 대소사가 될 것이며, 두 번째는 피곤할 때 자고, 경험해 보고 싶은 것이나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 것들 중에서 크게 애쓰지 않고 금방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저의 45일은 위의 2가지만 하고 살았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이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인생에 큰 의미로 남을 수 있는 경험을 했다거나, 개인적인 성장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기억은 없었습니다. 주로 제가 했던 것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9시가 되기 전에 침대에 누워 잠에 든 것, 예전부터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영화나 책을 보고 읽는 것,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는 근처 교외로 드라이브를 다녀온 것 정도가 대부분의 일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평범한 일상을 제가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가 한 가지 있었습니다. 저도 최근에서야 깨달았는데, 저는 성인이 되고 나서 11년 동안 이번처럼 마음을 놓고, 큰 걱정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나날을 돌이켜보면, 저는 언제나 마음 한 구석에 불안과 걱정을 가득 쌓아두고 살아왔었습니다. 그 덕분에 휴가를 가서도 마음이 놓고 제대로 쉬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문제는 제 마음속에 쌓아둔 걱정과 불안이라는 것이 당장 해결될 것도 아니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제가 걱정하고 불안해왔던 대부분의 내용은 과거를 후회하고, 현재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미래에는 좀 더 잘해야만 한다는 조급함에 관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금으론 부족하다. 그러니 앞으로 더 잘해야 하고 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기 때문에 저는 쉬면서도 마음 한편이 언제나 무겁고 불편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런 고민과 걱정들이 제게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주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들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었던 것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 제가 쌓아왔던 것들은 조금 더 편하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마음을 가지고 해왔어도 얼마든지 쌓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번 45일간 제가 흘러가는 대로, 그럭저럭 큰 고민과 걱정 없이 살아본다는 선택을 했던 것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저의 삶에 대한 방식이 이제는 과부하가 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상승 욕구로만 가득 차 있던 저의 마음속 풍선에 바람을 빼야 할 순간이 왔다고 할까요? 워낙 오랫동안 마음이 불편할 정도로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살아왔었기에, 이렇게 살아왔던 시간에 비교한다면 45일 정도는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이렇게 흘러가는 산다는 것은 좋은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대부분의 일들이 뒤로 밀려나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루라도 빠지면 양치를 하지 않은 것처럼 마음이 불편해졌던 매일 일기 쓰기도 쓰지 않은 지 1주일이 넘었고, 2021년에도 100편의 글을 쓰겠다던 브런치 글도 이제 겨우 30편 남짓한 글밖에는 적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인 발전은 완전히 멈추었고, 늘어난 것은 푸근한 뱃살과 체중밖에는 없는 것 같아 걱정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겐 이 흘러가버린 45일이 인생에 한 번쯤은 필요한 순간이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매년 12월 31일이면 몇 시간을 고민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글과 영상을 만들어 한 해를 되돌아보며 부족했던 자신을 탓하고 후회하는 대신, 2021년 12월 31일 제가 선택했던 것은 저녁 8시쯤 와인을 한두 잔 마시고 보일러와 가습기가 따듯하게 작동하는 방 안에서 푹 잠들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상쾌하게 눈을 뜨며 2022년을 맞이었습니다.


 과거와 달리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는 저의 삶에 대한 마음가짐의 변화는 앞으로의 제 삶에 고통보다는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지금은 믿고 있습니다. 너무 불필요하게 걱정하고 고민만 하며 살았었기에, 이제야 너무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흘러가는 대로 살아본 지난 45일,

저에겐 자신의 마음속 불필요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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