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만 서울시 부동산가격지원센터장 (세종대 교수) 인터뷰
현재 한국의 공시가 = 의미 없는 숫자
"A토지의 실제 가격이 1000만원이라 한다면 공시가는 600만원 정도밖에 안돼요. 공시가가 세금, 보험료의 기초가 된다는 이유로 그동안 현실과 동떨어진 숫자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죠. 공시가를 시세에 맞추되, 코로나와 같은 경제위기가 올 경우 세금 적용률을 낮추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지난 4월 22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세종대학교 광개토관에서 만난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위와 같이 밝혔다. 그는 지난 3월 말 서울시 부동산공시가격지원센터장으로 위촉됐다. 해당 센터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시가를 시세에 근접하게 올려 보유세를 올리자는 취지로 만든 기구다.
감정평가사 자격증을 소유하고 공시가 관련 연구용역을 하면서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된 임 교수는 "더 이상 의미 없는 숫자를 만들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현실화율(시세 반영률)을 100%까지 올리자는 주장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기준 표준단독주택과 표준지, 그리고 공동주택의 현실화율은 각각 53.6%, 65.5%, 69.0%다. 토지와 주택 유형별로 시세 반영률이 다르며, 그마저도 시세랑 괴리가 크다. 임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부통계는 토지가치를 계산하게 돼있는데 지금과 같은 공시가로는 제대로 된 현실을 파악할 수 없다"며 "아울러 공시가가 낮고 토지와 주택별로 현실화율이 다르다보니 무엇을 소유했는지에 따른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실화율을 100%까지 올리자는 것이 임 교수 주장이다. 다만 경제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용률을 달리할 수 있다. 가령, 공시가가 10억원인 주택을 가진 A씨는 평소에 재산세로 400만원(0.4% 세율 적용, 과세표준이 공시가와 근접하다고 가정)을 낸다고 가정하자. 코로나발 위기 땐 절반만 적용해서 5억원에 대한 세금 (세율 0.4% 적용시 200만원)만 납부하면 될 수도 있다. 정책의 유연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큰 정부'를 지양하는 편이고, 세금이 경제주체의 자율성을 떨어트릴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어서 급격히 현실화율을 100%까지 올리는데는 비판적이다. 다만 임 교수의 주장은 맞는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 '의미 있는 숫자'(현 시세와 맞는 시세)를 기록하고, 이에 근거해서 정책을 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점진적인 방향(약 10~15년)으로 맞춰나가야할 우리사회의 방향성이다.
압구정 아파트 은퇴자에겐 주택연금을 도입하자
임 교수의 주장 중 가장 흥미롭고 '합리적'이라 생각된 것은 사실 따로 있다. 바로 고가 아파트를 소유한 은퇴자에 대한 대책이다.
언론에선 항상 공시지가 상승, 보유세율 상승을 이야기하면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압구정, 반포 등 한강변 아파트를 소유한 은퇴자(고연령층)이 소득이 없는데 세금만 내게 돼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것이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사례다. 실제로 그런 선의의 피해자를 없애기 위해, 정부는 장기보유특별공제란 제도를 운영 중이다.
흥미로운 것은 '고자산 저소득자'(주로 은퇴자)에 대한 재산세 논의가 영국에서도 있었다는 것이다. 임 교수 소개에 따르면, 런던은 지난 2017년 이 같은 은퇴자 규모를 약 8만명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종부세 납부자가 59만명에 이르렀고, 노령비율 등을 감안하면 국내, 특히 서울에도 런던과 비슷한 정도의 고자산 은퇴자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임 교수는 이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게끔 '주택연금'을 활용하자고 말한다. 그는 "압구정 아파트 30억원 짜리를 보유한 사람이 있다면 이 중 9억원까지(현재 주택연금 한도) 주택연금을 들 수 있게끔하고 이를 통해 나오는 연금으로 세금을 내게 하면 된다"며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세금 납부를 사망할 때까지 연기시켜주고, 상속세에 얹어서 세금을 받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주택연금이 시가 9억원 이하(자산규모 중간 이하) 은퇴자들을 위한 연금제도인데, 이를 소위 말하는 고자산 은퇴자 (선의의 피해자)에게도 일부 확대 적용하자는 것이다. 내쫓길일이 없을테니 더 이상 선의의 피해자가 될리가 없으며, 세금폭탄론의 근거도 약해진다.
다만 현실에선 그럼에도 끝까지 주택연금을 활용하지 않는 비율이 많을 수 있다. 한 부동산 전문 관계자는 필자에게 말했다. "요새 압구정아파트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자식들한테 실질적으로 용돈을 받아요. 자식 입장에선 한강변 아파트가 천정부지로 가격이 뛰니, 그냥 계속 계시라고 말을 하죠." 상속에 대한 개념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고가 아파트 소유자들이 얼마나 주택연금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권'을 늘리고 합리적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고자산 은퇴자에 대한 주택연금 도입안은 괜찮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표준과 개별 간 공시가 차이를 교정하라
공시가는 5가지로 나뉜다. 국토부가 발표하는 표준지(표준이 되는 땅)과 표준 단독주택, 그리고 공동주택과, 기초 지자체(서울로 치면 각 자치구)가 산정하는 개별지, 개별 단독주택이 그것이다. 문제는 개별지와 개별 단독주택의 경우, 그 근거가 되는 표준지와 표준 단독주택보다 더 가격이 낮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가령 지난해 용산구 표준 단독주택 상승률은 35.40%였으나 용산구가 처음 내놨던 표준 단독주택 상승률은 27.75%로 7.65%나 더 낮았다. 임 교수는 "개별 단독주택은 각 기초 지자체의 지적과가 아닌 세제과에서 담당해 전문성이 다소 부족한 편"이라며 "아울러 민원인을 직접 상대하는 기초 지자체는 세금을 낮추기 위한 유인이 작용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임 교수가 속한 부동산공시가격지원센터는 기초 지자체 담당자들의 전문성을 높이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서울시민이 소유한 땅, 주택이 표준과 개별 양자 중 어느쪽이냐에 따라 공시가 상승률 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현재도 자치구에서 자체 판단이 어려운 부분은 서울시에 의뢰한다"며 "센터 내에 최소 4~5명의 감정평가사를 채용하고, 기초 지자체 공무원들을 교육시키며 전문성 향상을 위해 자료를 축적해나가는 것이 센터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토지의 경우 도로의 넓이, 토지의 생김새 등 '특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많이 발생해 이를 바로잡아주는 전문가 역할을 센터가 맡겠다는 것이다. 또한 여러 통계 분석을 통해 불합리했던 차이의 원인을 밝혀내는 작업도 병행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임 교수는 미국 사례를 들어 공시가가 지역별로 얼마나 시세를 반영했는지 공개하고 (우리나라는 전국 평균만 공개), 선정방식도 공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시가 산정의 투명성 제고를 위함이다. 그는 "세종시가 올해 시범사업으로 공시가 선정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려 한다"며 "서울을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