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 느낄 수 있는 것
지난 6월과 7월, 2개월 간 새로운 경험과 사람을 마주쳤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나아가려는 지금, 새 시작을 맞이한 기념으로 새로운 시리즈를 하나 시작하려고 한다. 속초에서 한달살기하면서 깨달은 것들이 많다. 그중 하나는 '공유'하는 것이다. 꼭 완벽하지 않아도 일단 공유하게 된다면 기회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늘 스스로 만족하기 전까지 나의 작업물이, 나의 생각들이 혹은 나의 애매한 재능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평가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사람으로서 이 두려움을 조금은 덜어내 보려 한다.
책을 많이 읽진 않지만, 책 한 권을 깊게 읽는 것을 좋아한다. 답을 정해놓는 자기계발서보다는 문학 소설 위주로 읽는다. 소설 속 주인공이 하는 생각들이 때론 고민에 대한 답변을 주고, 때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준다. 그리고 때론 비슷한 상황 혹은 아예 이해 안 가는 반대의 상황 속에서도 알 수 없는 위로를 건네받는다. 음미의 과정 속에서 혼자 읊조린 생각들을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그저 '나를 이해하는' 관점에서 즐기는 첫 번째 책리뷰를 시작-!
김영하 장편소설,
한줄 줄거리) '내가 알던 내가 진짜 맞나?' 주인공 철이가 자신의 자아를 알아가는 과정을 담아낸 SF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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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억지로 꾹 잠근 수도꼭지가 터져버린 날이었다.
그동안 자신의 욕망을 억지로 참았던 물줄기가 해방하듯 쏫아 흐르고 이에 따라 소리도 감정도 극에 올라갔다. 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뭐라 하던 말건 그것은 전혀 내 알바가 아니다.
내가 그때 진짜 미쳤었나?
딱 일주일이 지나니 약간의 부끄러움과 동시에 저지른 행동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 의문이 들기 시작하였다. 왜 나는 가끔 사리분별을 못하고 이상한 판단을 내리는 것일까?
p153
의식과 충분한 지능을 가진 존재라면 이 세상에 넘쳐나는 불필요한 고통들을 줄일 의무가 있어요.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더 높은 지성을 갖추려고 애쓰는 것도 그걸 위해서예요.
…
이 지구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압도적으로 생산해내는 존재는 바로 인간입니다.
p155
고통은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고통은 생물체를 보호하는 필수적 장치입니다.
고통이 되려 나를 보호한다는 관점
억지로 잠근 수도꼭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의 양을 이기지 못하고 조그마한 물방울들을 계속 흘러 내보낸다. 고통은 억지로 참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어떻게든 현 상황을 가장 객관적으로 표현하려는 솔직한 아이 같기도 하다. 고통을 느끼기 시작할 때면 왜 내게 이런 고통이 온 것인지 한없이 억울하다가도 원망스럽기도 하였는데. 그런데 인간은 또 고통이 익숙해질 때까지 참는다. 그리고 결국 불필요한 고통의 감정까지 생산해버린다.
이 대사가 내게는 굳이 불필요하게 더 큰 고통을 감내할 필요가 없으니 이제 그만 수도꼭지를 편하게 풀어도 된다는 위로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이 알아서 터져버리기 전, 불필요한 고통이 팽창하기 전 내가 직접 수도꼭지를 풀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만 같았다. 몰랐겠지만 늘 내 몸은 언제나 내 편이다. 내 몸에겐 그 누구의 시선도 잣대도 크게 중요하지 않다.
p283
“난 두만강 남쪽으로는 가지 않을 거야. 좋은 기억이 별로 없으니까. 여기, 기후는 혹독하지만 그래도 나쁜 기억은 없어서 견딜 만해. 인간도 거의 없고.”
나는 선이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어리석음이야말로 인간다운 것이 아닌가. 선이가 충분히 인간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충분히 인간이란 말인가.
나는 현명하지 못한 '인간'이다.
우리는 오감을 느낄 수 있고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고유함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극적인 행복함과 우울함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마냥 현명하기만 했다면, 진화가 거듭될수록 불편한 감정이 없는 최고의 인간상만이 남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우리를 보아하니 정말 인간은 현명하지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감정을 탐색하고 때로는 어리석은 짓을 행하는 고유한 인간이다. 그날의 행동이 이제는 전혀 부끄럽지 않아졌다. 그날 외에도 이상한 판단을 거듭했던 평소 그리고 여행의 순간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쿠바 갔을 때 비행기 이중 예매를 했던 멍청했던 내 자신. 이탈리아 갔을 때 비행기 일정을 꼼꼼히 체크 안한 멍청했던 내 자신. 직진본능으로 길을 개척하다가 길을 잃어 고생을 자처하는 멍청했던 내 자신. 그때는 그렇게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책. 그리고 빠른 결과의 수용이었다. 왜 갑자기 이런 멍청한 판단을 했을까? 뭐에 씌었었나? 근데 뭐 어떻게 어쩔 수 없지 뭐. 두 번 다시는- 절대 그러지 말자.
나는 현명하지 못한 '인간'이다. 이제는 깨달았으니 자책할 필요성도 못 느낀다. 그저 인간이기 때문에 때론 똑똑한 머리로 비효율적인 행동을 할 때도 있고, 아무도 실수하지 않을 법한 멍청한 행동을 자처할 때도 있는 거였다.
p135
그냥 얼음과 물일 뿐인데, 왜 이게 이렇게 가슴 시리게 예쁜 걸까? 물이란 게 수소와 산소 분자가 결합한 물질에 불과하잖아.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것을 아름답게 느끼도록 만들어진 걸까?
p278
시베리아의 매서운 바람을 맞아 얼어붙은 몸의 일부를 타고 흘러내려가는 따뜻한 차가 마음의 긴장과 불안을 누구뜨리는 느낌이 너무 좋아 잠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의식만으로는 결코 제대로 경험할 수 없는, 오직 몸으로 겪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인간에게 큰 가치인지
현명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오감을 느낄 수 있고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고유함을 가진 인간이다. 그동안 해답을 찾지 못했던 우리가 수천 년간 예술을 필요로 하는 이유, 자연을 보며 사색을 하는 이유, 당황스러울 정도로 특이한 상상한 자아내는 이유를 기계인 철이가 인간화가 되는 모습을 통해 찾았다. 철이가 의식만 존재할 때는 책도 사색도 의미 없이 느껴져 하다가, 몸이 생기고 선이와 대화할 수 있게 되고 오감을 느끼고 자아를 다시 깨닫기 시작한 후로 다시 철이는 책을 꺼내기 시작하였다.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벗어나기 위해 사색과 상상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색과 상상을 무언가로 표현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같은 감정의 사람들과 공유하고 공감한다는 것. 결국엔 그 고통에 벗어나 해방을 느낀다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는 것.
이것이 인간이 사는 가치이고 이것이 기계는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인간이 가진 고유물이 아닌가 싶다. 지금 고통에서 벗어나 당장 맨발로 뛰어나가야 하는 것이 나에게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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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소개한 책은 김영하의 장편소설, <작별인사>이다. 이 책을 읽었던 시기가 딱 퇴사를 하기로 마음먹었던 시기였다. 나는 이상하게 IT업종에 있으면서도 4차 산업에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것이 꼭 필요한가? 편리함 외엔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일까. 없어도 어쨌든 살 수 있잖아’라는 회의감이 가장 컸다. 그리고 인공지능과 기계랑 가까이할수록 편리함 외에는 당최 매력을 느끼지 못한 이 시기에 인간의 가치와 고유성을 이야기 해주는 이 책을 만나서 너무 행운이었다. 내가 가끔 사리분별을 못하고 이상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인간’이라 가능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모든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겐 정말 큰 위로로 시작해 결국 지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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