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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ee Jul 10. 2023

ep.4 [멕시코] 이곳에서만 가능한 여행자만의 이야기

멕시코의 멕시코시티에서



ep4.

이곳에서만 가능한
여행자만의 이야기


여행만 오면 어린이가 되어 버리는 나, 오늘도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이른 아침부터 눈이 번뜩 떠졌다. 전날과 달리 깨끗하고 따뜻한 물줄기를 들이받으며 시원하게 씻어주고, 창문을 활짝 열어 벌써부터 쌓여버린 빨래와 따뜻한 햇빛과의 만남을 기대해 본다. 모래먼지에 뒹굴어져도 화장은 하고 싶고, 오프로드를 달려도 원피스만은 입고 싶은 본능을 참지 못했던 3년 전의 모습과 변함없이 고데기와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은 후 만족하듯 옷을 털어내면 이제야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된다.


경보경보 무진장하게 배고픔주의!!! 빨리 뱃속에 아무거나 채워넣ㅓ라!!

어제 대충 때운 배의 알람시계가 미친듯이 울려댔었다. 배고프다 못해 저릿한 배를 움켜잡으며 슬리퍼를 끌고 1층으로 향하였다. 어제 처음 마주했던 카페에서는 티비 소리가 들려왔다. 식탁에 앉아 가만히 TV를 보고 있는 할머니를 향해 다가갔다.


혹시 지금 아침식사 가능할까요?

"당연히 가능하지." 할머니는 말을 이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커다란 메뉴판 앞에 서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아는 단어로 가득 채워진 메뉴를 읊었다.


Omellete de queso con tomate... y uno Americano, por favor
(치즈&토마토 오믈렛이랑... 커피 한잔 주세요)

"Si!" 이제 말을 뗀 손녀를 보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과 함께 주방으로 향하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티비 속 배우들의 대화소리를 배경음 삼아 주위를 쓰윽 둘러보았다. 정말 많아야 10명 정도를 채울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화질과 음질이 다소 떨어지는 TV와 세월의 흔적들이 보이는 의자와 식탁. 어느 시골의 작은 구멍가게에 온 것같은 느낌이었다. 약간은 촌스러워 보이기도 어찌보면 포근해 보이기도 한, 낯설지만 익숙한 공기였다. 주방이 훤히 보이는 자리에 앉아 카페 곳곳을 관찰하다 보니 어느새 할머니의 요리가 완성이 되었다.


애나의 작은 카페

김이 폴폴 나는 뜨거운 커피부터 한 모금 들이켰다. '으음 이상하다? 멕시코 커피가 왜케 잘 맞지?' 커피가 맛없었다는 사람들의 후기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이번엔 오믈렛을 입으로 가져보았다. 정직하면서도 맛있는 맛, 단촐하면서도 익숙한 맛. 곧이어 구운 식빵 하나를 같이 먹으라고 건네주셨다. 조그마한 식탁에 꽉 차있는 아침 식사를 단숨에 해결하였다.


매번 만족스러운 식사에 헤ㅔ거리며 할머니가 계신 바로 옆 카운터로 가 계산을 마친 후, 핸드폰으로 열심히 타자기를 두드렸다.


오늘 체크아웃하고, 짐을 잠시 맡겨줄 수 있으신가요?

오늘은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계획'한 프리다칼로 박물관을 가는 날이다. 내게 큰 충격을 주었던 프리다칼로의 작품들은 세계 각지의 사람들에게도 센세이션을 주었는지 사전 예약을 안 하면 품절이 되어 발 디딜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예정된 프리다칼로 박물관을 다녀오면 특별한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의 숙소가 좋아도 다시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주인 할머니는 열쇠를 들고 카운터 옆 자그마한 창고를 열어 나의 짐을 소중히 보관해 주셨다. 무거운 짐 없는 가벼운 몸으로 거리로 나왔다. 박물관은 차로 15분 남짓한 거리에 위치하였다. 지하철을 타기에도 애매하고 무엇보다 아직 지하철을 탈 용기가 나지 않아 첫 우버에 올라탔다.


프리다칼로의 작품을 보러 향하는 길은 그녀의 그림처럼 색달랐다. 형형색색의 건물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한적하면서도 낭만적인 거리의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차로 고작 몇 분 떨어졌다고 거리의 분위기가 확확 달라지다니, 참 독특한 곳이다. 40분이나 일찍이 도착한 나는 오히려 이 시간이 달갑다는 듯이 카메라를 들고 동네를 천천히 활보하기 시작하였다. 박물관 앞으로는 예약한 시간대에 맞춰 기다란 줄이 늘어져 있었고 그 앞에서는 모자를 쓴 아저씨가 기타를 메고 버스킹을 하였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발걸음을 옮기면 연주자가 바뀌면서 푸른 하늘을 가릴 만큼 큰 보라색 나무들이 반겨주었다. 그 밑으로는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이들을 지나치며 웨어터들이 음식을 나를 때 그는 홀로 묵직이 기타를 치며 감미롭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여기 너무 죠타..

여유 넘치게 거리를 천천히 배회하다 대왕 큰 나비에 식겁하여 줄행랑도 하였다. 멕시코.. 다 좋은데 나비 날개가 손바닥만 하다;; (자고로 이자는 나비나방을 극혐한다.)


골목 사이사이를 지나며 사진기와의 시간을 가지다 약속된 시간에 맞춰 늘어진 줄에 뒤따라 섰다. 이곳은 대부분 가족단위들로 혼자 온 여행객은 나 한 명이었다. 하지만 외롭지 않았다. 왜냐면 바로 뒤엔...


귀요미 등장

인생 2회 차의 표정을 가진 아이는 내가 웃을 때마다 듬직한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침착맨보다 더 침착한 상애기였다.


아이랑 피카부~하며 놀다 아니 어쩌면 혼자만 즐기다가 허리에 찬 가방에 꾸깃꾸깃 구겨진 종이를 꺼내 펼쳤다. 입장을 하려면 이 바코드가 반드시 필요로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사진 촬영 허용비까지 지불 후, 종이에 그려진 QR을 직원에게 건네었다.


삐익---

앞 길을 가로막는 단호한 알림음에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직원과 종이를 번갈아가면서 보았다. 직원은 이 상황이 의아한 듯 건네받은 종이를 붙잡고 한참을 보았다.


미안한데.. 이건 내일티켓이야
하 내가 그렇지 뭐

한국에서 발을 뗀 지 5일 차, 왜 이렇게 잠잠하다 했다. 덜렁방구 어쩔방구답게 스스로 고생을 창조해내었다. 캘린더에 박힌 날짜에 맞춰 오긴 하였으나 15시간의 시차로 인해 캘린더가 하루씩 전날로 밀리는 불상사로 일구어낸 업적이었다.


에라이 애기구경만 실컷 하고 간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나라는 사람이 생각한 것보다 얼마나 더 멍청한 인간인지 체험하게 해 준다. 매번 신박함으로 헛걸음질을 하는 것도 나름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멍청할수록 천재라고 표한다면 1등을 당연하게 먹을 자신감으로 직원을 바라보며 머쓱한 코를 쓰윽 닦아냈다.


그래도 이전 돌아다닌 동네들과 다른, 내 취향의 거리를 돌아다녀 볼 수 있어 좋았던 오전 산책이었다. 빈말이 전혀 아니다. 다만 우버비는 조금 많이 아까웠다.


바보짓에 혼자 킥킥거리며 우버에 다시 불러 숙소로 돌아왔다. 이 친구 가만 보면 참 별생각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혼자 잘 웃고 잘 노는 것 같다. 원래 숙소를 떠나기 전 오후 1시쯤에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드린 것과 달리 1시간 만에 다시 돌아온 아이의 등장에 깜짝 놀라셨지만 친절히 배웅까지 해주며 따수운 멕시코 할머니댁에 인사를 건넸다.


나를 기다리는 알림이 띠링 울린다. 노란 아이콘 위에 떠 있는 빨간 아이콘을 눌러 답장한 뒤 캐리어를 들고 또다시 밖을 나섰다. 나는 지금 멕시코 여행 3일 차, 3번째 숙소로 향하는 길이다.


다시 뜨겁게 차오르는 대낮의 햇빛에 땀방울을 흘리며 어느 호텔로 들어왔다. 이곳은 나의 첫날 숙소랑 비할 수도 없는 4성급의 호텔이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꽃 그리고 바닐라 향이 섞인 기분 좋은 디퓨저 냄새가 내 코에 스며 들어왔다.


어?! 혹시 OO언니 맞으시나요..?

뒤태에서 풍기는 한국인의 포스에 무작정 달려들었다. 멕시코 와서 처음 보는 동양인이자 한국인이 반가웠던 나는 첫 만남에 들뜬 인사로 반겼다. 오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특별한 만남은 바로 새로운 동행자였다. 남다른 스페인어로 혜성같이 등장한 A언니는 중남미에 파견 온 직장인이셨다. 휴가 겸 멕시코를 오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여자 혼자다 보니 같이 다니면 좋을 것 같아 있는동안 함께 하기로 하였다. 또한, 숙박비를 아끼고자 숙박을 같이 써도 되냐고 먼저 제안하였는데 흔쾌히 오케이해주어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어제도, 그제도 1박에 5만 원으로 낡은 숙소에서 지냈는데 둘이 같이 쓰니 좋은 호텔에서 1박에 5만 원이었다. 같이 여행하면 확실히 경비부담이 덜어져 좋다. 좋은 인상의 동행과 스페인어까지 겸비한 언어 능통자와 함께라니..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호텔마저 좋다.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방에 도착하자마자 냉큼 누워버렸다.


난 기분이가 좋으면 일단 누워
오늘 우리 어디로 갈까?

멕시코시티하면 센트로, 여행하면 구시가지. 여행 3일 차임에도 아직까지 핵심 거리인 센트로를 가보지 못하였다. 교통편 이용을 필요로 하기도 하였고 여행카페에서 엄한 사건사고를 골라보며 아직까지 겁을 잔뜩 먹고 있었기에 센트로를 미리 가보지 못하였다. '동행이 생기면 젤 먼저 센트로부터 가야지'하는 마음에 센트로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언니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기나긴 고민 없이 짐을 내려놓고 센트로로 향하였다.


우버를 불러 가는 길에는 조용할 틈 없이 이야기로 채우며 식당으로 향하였다. 서로의 직종이 신기했던 우리는 첫 만남이 무색할 정도로 어색함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듯 하였다.


그렇게 십여분을 가다 보니 창문밖의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지금까지 지나쳐온, 머물었던 동네에는 없었던 높은 회색의 웅장한 건물들. 거리를 꽉 메우는 인파들. 따가운 햇살과 타코의 열기가 더해진 공기. 꽉 막히는 도로와 차 사이를 가로지르는 사람들의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분위기. 정돈되지 않은, 불규칙 속에 숨겨진 규칙이 있는, 날것의 형체들이 모인 공간이었다. 이제야 내가 멕시코에 온 것에 실감을 하며 설렘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였다.

내 앞길을 막 길을 막지를 말란 말이야잇!

우버에서 내린 바로 코 앞의 식당은 타코의 열기와 냄새를 풍기며 사람들을 식당으로 들여보내고 있었다. 바깥 날씨보다 더 뜨거운 공기에 땀을 송송 흘리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4-5명의 겨우 앉을 수 있는 비좁은 타코집으로 들어왔다. 이곳은 내가 한국에서부터 찜해놓았던 곱창타코 전문 집이었다. 한국에서는 유별나게 비싼 소곱창이 이곳에서는 단돈 2,000~3,000원이면 된다.


유명 타코맛집, Taquería El Torito

맛집의 자태를 띄는 비주얼에 기대감이 찬 눈으로 타코를 들었다.


타코집에서 맞는 입술 필러

과거 맵부심 출신, 왕년의 명성을 이 한입에서 다 잃어버렸다. 캡사이신 매운맛도 칼칼한 매운맛도 마한 매운맛도 아닌 얼얼한 멕시코 매운맛이었다. 몇 입 먹다 너무 입안이 얼얼해서 사이다를 시키고 고수까지 왕창 더 넣어달라고 애원하였다. 나와 동행언니는 씁하- 씁하-를 반복하며 타코와 사투를 벌였다.


스읍--하,.. ㅆㅡㅂ-하

곱창이 생각보다 많이 느끼하였는데 이 느끼함을 잡기 위해 이 집이 소스가 유별나게 매웠던 것 같았다. 자연산 입술 필러를 맞아 한껏 통통해진 입술로 다시 난잡한 도로에 섰다. 정신 사나운 거리를 지나며 이제야 진짜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 신이 나 발자국을 한 번 내밀 때마다 사진을 찰칵. 사진을 한 번 찍을 때마다 감탄사 한 번. 역시 여행은 약간의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잠깐의 미래마저도 예측할 수 없는 공간에서 도파민이 폭발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밀고 빠지는 센트로 거리를 거닐다 언니가 북마크를 해두었던 미술관이 근방에 찍혔다. 구경외엔 계획이 딱히 없었던 우리는 열이나 식힐 겸 이곳으로 향하였다.


미술관은 국립 미술관으로 추정되는 규모가 꽤 큰 미술관이었다. 기대도 정보도 전혀 없이 햔한 미술관의 퀄리티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고전, 현대 그림이 연도별로 모여있고 그림, 조각상, 건축 다양한 작품이 모여있었다. 오늘 프리다칼로 미술관은 놓쳤지만 언니 덕택에 만족스러운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멕시코 국립미술관


ㅇㅏ니 근데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의 인생샷 찍어주는 것은 전세계 국룰이구먼?

전시를 보며 복도를 이곳저곳 가르다가 여자친구를 위해 한 몸 받쳐 사진을 찍는 남자를 보았다. 역시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눈에 띄인 김에 우리도 그 장소에서 한 컷 하였다.


어딘가 모르게 신나보이는 자태

한 시간가량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1층 2층 빠짐없이 관람하다 보니 이제는 이동을 해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오늘의 특별한 만남이 한 번 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4시 소깔로 광장 앞 Don Porfirio 카페에서 봐요!

곧 만날 인연에게 문자를 남기고 뜨거운 햇볕이 살짝 가신 광장으로 다시 나섰다. 30분 정도 시간이 붕 떠서 주변의 인파를 피해 지도로 이곳저곳을 찾아보다 처음 들어보는 광장에 잠시 들리고 가기로 하였다. 지금 이곳에서 걸어 10분 떨어진 곳이니 잠시 둘러보고 오면 시간 때우기 딱이겠다.


지도는 우리를 메인 스트릿에서 벗어난 길로 안내해 주었다. 사람이 조금 한적해지니 이제야 한숨 고르는 것 같다. 별생각 없이 편의점에 들러 목도 축이며 가리키는 표식을 따라 쭈욱 걸었다. 근데 조금 이상하다. 미묘하게 낯선 기분이 든다. 어딘가 모르게 퀘퀘한 냄새가 이전 활기찬 거리의 공기를 헤집어 놓았고 그 길게 늘어진 냄새를 따라 갈수록 거리에는 바닥에 늘어진 사람들이 보였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우리는 돌아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다시 그 길을 걷기엔 이미 두려움이 생겨버렸다. 낯선 이름의 광장 코앞에 다다른 우리는 돌아갈 때만큼은 광장 뒷길의 다른 길로 돌아가기로 하며 가던 길을 이어갔다.


누가 봐도 관광객의 모습을 띠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한 광장에 도착하였다. 작은 광장 한가운데는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트럼펫, 색소폰 악기를 멘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버스킹인 건가..?' 차고 있는 악기와 같이 활기찬 느낌이 아닌 어딘가 모르게 불량한 분위기에 또 한 번 혼자 움찔하였다.


우리를 건드리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경찰들로 바글바글했던 소깔로 근처와 달리 단 한 명의 경찰도 없는, 관광객을 보호해 줄 사람이 없는 안전한 동네가 아님을 눈치껏 알아채었다. 우리는 이곳을 가볍게 훑어보고 뒷길로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돌아가는 길 또한 아까와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아니, 더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내 앞에는 눈이 풀린 채로 몸이 한 없이 축- 쳐져 한걸음 한 걸음 힘겹게 발을 떼는 사람이 하나 둘 지나갔다.


OO아 눈 마주치지 마

안전한 중남미 국가에 업무 중에 있지만 그 위험하다는 엘살바도르 출장 경험이 있었던 언니는 약에 취한 사람이 지나치자마자 입을 뗐다. 길을 완전히 잘못 든 것 같다. 도로 하나에 이렇게나 분위기가 달라지다니. 속으로는 긴장했지만 겉은 태연한 척 마른침을 삼키며 길을 걷다 경찰과 관광객이 슬슬 보이기 시작하면서 안도감에 큰 숨을 내뱉었다.


2명이어서 다행이었지 혼자였으면 울면서 뛰쳐나왔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이름 모를 공간에 함부로 발을 디딛지않도록 유의해야겠다.


잠시 헛길을 간동안 소깔로 주변은 더 많은 사람들로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옆에서는 인디오 차림을 한 분이 연기를 뿜으며 의식을 치르고 있고, 길을 건너면 상인들이 돗자리를 깔고 각종 소품들을 팔았다. 소품들 앞에서는 경찰들이 이를 지키고, 경찰들이 바라보고 있는 바로 건물 앞에서는 BTS노래로 연주를 하는 사람, 북을 두드리며 버스킹을 하는 사람…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다. 온갖 소음과 모든 사람들이 지금 이 한 공간에서 모인 기분이었다. 개연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조합이 웃기기도 하면서 기가 빨려 빨리 벗어나고 싶기도 한 마음으로 혼이 쏙 나간 채 그들의 움직임에 휩쓸려 도착지점에 다다랐다.


인파 속에 빨려들어가기

언니랑 나는 카페가 있는 백화점으로 들어오자마자 벙찐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맛이 간 4개의 눈동자

대답대신 웃음을 헛헛 치며 얼빠진 표정 그대로 또 다시 사람들로 가득한 엘리베이터에 함께 섰다. 모두들 진이 빠진 멍한 표정으로 버튼 위의 숫자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띵- 소리가 들려온 후에야 조용한 공백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누군가는 부채질을 하며 지친 기색을 보였고, 누군가는 닫힘 버튼을 미친듯이 눌러대며 문이 빨리 닫히길 바라였다.


성격 급한 거도 다 똑같넼ㅋㅋㅋㅋ

이번에도 역시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나 보다. 멕시코에서 익숙한 한국인들의 행동이 보이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근데 이젠 제발 사람 좀 그만 있ㅇ,..


엘레베이터 문이 열림과 동시에 길~~게 늘어진 줄이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빨릴 때로 빨린 나의 기

이어지는 줄의 환연에 머리를 짚은 것과 달리 다행히 사람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곧 입장이 다가올 때쯤, 유난히 크게 들리는 엘레베이터 도착음에 뒤를 돌았다. 문이 열리는 순간 한국인으로 보이는 이와 눈이 맞쳤다. 이 공간에서 유일무이한 한국인과의 만남에 화들짝 놀라 크게 뜬 두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혹시..?

예정되었던 오늘의 새로운 만남이 모두 성사되었다. 3달간의 남미 여행을 하였던 장기 여행자, 파견 중 휴가 나온 여행자, 그리고 자체적으로 무급휴가를 온 여행자.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한국인이 내 옆에 2명이나 있었고, '여자 혼자 여행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곳이지 않아?' 온갖 호들갑으로 겁을 주었던 주변인들의 말들과 달리 지금 이곳에 혼자 여행하고 있는 3명의 여자들이 모여있었다.


우리가 모이게 된 이유는 이러하였다. 여행자와 현지인 사이에서 유명한 멕시티 근교지, 똘란똥고라는 곳이 있다. 멕시티에서 4~5시간 떨어져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자체가 워낙 큰 대륙이기에 이 정도는 근교로 퉁친다. 이곳은 도착하기까지 꽤나 험난한 교통편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물놀이만큼은 함께 할수록 재미나기에 똘란똥고만큼은 여행자 모두가 혼자보다는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멕시코에 오게 된 이유 중 하나였던 똘란똥고만큼은 꼭 들리고 싶어 멕시코를 오기 전 여러 여행자들에게 연락을 두드렸다. 그렇게 여러 여행자들이 모였지만, 모두 로컬 여행을 하는 그리고 혼자 여행을 하는 여행자였기에 '그때 일정 맞으면 함께 보아요'라는 말을 남기고 이곳에 계획 없이 오게 되었다. 연락이 오갔던 몇몇 사람들은 다른 여행 경로로 만남이 무산이 되었고 그중 일정이 우연히 맞는 여행자들과 지금 이 자리에 만나게 된 것이다.


각자 여행의 흐름에 따라 우연에 우연을 더한 만남. 모두 길바닥에서 혼자 있었기에 지금의 순간이 반가웠고, 여행을 좋아하기에 어색할 틈도 없었다.


멕시코에서 인도 짜이 마시기

재미난 이야기의 끝은 우리를 숙소로 그냥 보내지 않았다. 우리는 이곳에서 지친 몸과 목을 잠시 축이고 다시 소깔로의 거리로 함께 걸어 나갔다. 현재 멕시코는 부활주일로 거리가 축제 분위기였었다. 넓은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 찼었다. 성당에서는 빵과 계란을 나누어주고 사람들을 가족들과 아이스크림, 타코를 먹으며 혼돈의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즐겼다.


밀려드는 인파에 동참하기

우리들도 사람들의 인파에 따라 성당에도 들리고 거리를 구경하다 거리의 끝점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에 도착하였다. 동행이 있으니 사진도 대화도 되고, 무엇보다 이 거리가 지금까지 묵었던 숙소의 동네랑 비교도 안되게 흥미롭다 보니 산책 나온 갱얼쥐마냥 방방 뛰어다녔다.


지나가는 개도 인정할 기분째짐
우리나라의 김밥천국 같은 곳인데 어제 먹고 너무 맛있어서 데려오고 싶었어요!

어느덧 저녁시간이 찾아오면서 모두가 배고픈 배를 잡을 때였다. 후발대로 만난 B언니는 이 근방의 호스텔에 묵어 이곳의 맛집을 잘 꿰고 있었다. 언니를 따라 메인 스트릿으로 다시 돌아가 큼직한 고기 덩어리를 굽고 있는 가게 앞에 멈춰 섰다. '많은 요리사에 비해 식당이 작네..?'라고 생각하기도 전, 언니는 가게 안쪽에 있는 작은 계단에 올라탔다. 2층, 3층, 4층… 생각지도 못한 대규모에 입에 떡 벌어졌고 이만하면 맛없기는 힘들겠다 싶은 신뢰가 생겼다.


자리를 앉자마자 직원은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수많은 메뉴들에 입이 떡 벌어진다. 점심에 먹었던 타코가 든든했던 것인지 크게 배가 고프지 않아 나는 타코대신 멕시코의 국밥이라고 불리는 치뽈레를 선택하였다. 안 그래도 치뽈레의 맛이 너무 궁금했는데 이제야 이 궁금증을 해소시킬 수 있겠다. 그리고 여기서 끝내지 않고 웨이터를 한 번 더 불러내었다.


젤 인기 많은 맥주가 무엇인가요?
그걸로 3개 주세요!


치뽈레와 테카테 맥주

1일 차, 2일 차 맥주를 먹을만한 식당이 아니라 입에 대지도 못하였는데 여행 와서 첫 맥주를 여행자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우리는 타코와 치뽈레 그리고 맥주를 마시면서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이어갔다. 지금 이 여행의 순간, 서로의 직업도 나이도 사절이다. 우리는 이곳에서만큼은 '여행자'일 뿐이다. 우리의 대화는 고민과 미래에 대한 압박 혹은 불안감보다는 오로지 오늘은 뭐 먹지 내일은 어디 가지, 다른 여행은 어땠는지 괜찮았는지, 오로지 여행을 위한 이야기만을 내뱉으며 여행의 하루를 만들어간다.


이래서 여행자들과의 만남이 좋아…
여행에서만 가능한 대화가 있어


A언니의 말에 B언니와 나는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서의 겁을 주었던 말대신 이곳에서는 용기 있게 잘 왔다고 응원해 주었고, 장기여행 중 번아웃이 왔음에도 애정하는 마음으로 여행을 잇고 있는 언니를 응원해 주었으며, 타지에서 기댈 곳 없이 일을 하고 있는 언니를 응원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 여정이 끝나고 앞으로 다가올 여정을 기대해 주었다.


이야기의 농도가 짙어짐과 함께 우리를 비추는 햇빛이 사라지고 밤하늘이 짙었다. 오늘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어둑어둑해진 밤 이곳에 머무는 B언니의 숙소를 데려다주고 나서야 오늘의 하루를 끝맺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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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저는 여행에서 만난 인연 모두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여행에서 만난 인연들을 유독 더 특별하게 여긴다. 내 옆에 오랜 시간 함께 해준 이들처럼 나에 대한 깊은 정보는 없지만, 그래서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는 인연은 아니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 특별하다고 새기고 있어 뜨문뜨문 생각이 날 때 연락을 주고받거나 여행을 끝마치고 본국으로 돌아와 만남을 이어가기도 하였었다.


요즘 같이 흉흉한 세상에서 서로의 출신을 모른다는 것은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때론 겉치레와 같은 개개인의 배경을 생략하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만 봐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곤 한다.


어릴 적의 나를 되돌아보면 주변인들에게 '함께 이곳으로 여행 가지 않을래?'를 참 많이 묻고 다녔던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여행지의 폭격에 '너랑 함께하는 여행은 언제나 예스지! 근데 그 여행지만큼은 좀'과 같은 퇴짜 또한 많이 당하였었다. 취향이 남다르다고 전혀 생각되지 않지만 10대 때부터 늘 주변 친구들과 관심사의 텐션이 맞지 않아 홀로 목마른 목을 적실 수 있는 공간에 뛰어 들어갔었다.


대상에 대한 애정을 공감받지 못해 답답한 가슴팍을 팍팍 두드리다가 참지 못하고 토해내듯 뛰쳐나오면 너무나도 쉽게 가슴이 뻥 뚫린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들 나만큼 덕후짓에 진심이라니…' 아니, 나보다 이짓에 미쳐있는 이들이 더욱 많았던 것 같다.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은 긴 서론에 불과하다. 오늘 처음 본 이들이지만, 애정하는 것들을 나누며 '공감'할 수 있음에 헛헛함에 체한 속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깨끗해진 공간 사이에 정(情)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것은 도파민을 자극하는 호르몬이 오랜 시간을 나누지 않아도 급진적인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게 내어주는, 일종의 '친구 프리패스권'이라 할 수 있겠다. 공감의 능력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작은 것 하나하나의 영향을 받은 연약한 인간들에게 큰 역량을 발휘하고 있었다.


10대 때 시험책을 들고 쇼케이스에 가고, 시험이 끝나면 연달아 공연을 다니고, 함께 콘서트 스텝일을 하면서 아른 아침부터 밤까지 공연장에서 함께 이야기했던 시간들, 20대 때 여행에서 우연한 혹은 의도적인 첫 만남으로 예측할 수 없는 고된 상황을 함께 헤쳐나가며 때론 낭만적인 하루를 함께 흘러 보냈던 시간들. 오랜 시간을 서로 함께 한 것이 아닌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나누며 아주 잠시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시간들.


어쩌면 너무 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답답함과 헛헛함에 오랜시간을 함께 나눈 이들을 향해 나를 제발 이해해 달라고 공감해 달라고 애써 부르짖고 바라지 않아도 되었다. 애정하는 것으로 둘러싸인 그 공간에는 지금도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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