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 타들어간 생선 비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A였지만, 오늘 만큼은 식탁 위의 이 생선을 남김없이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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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A는 생에 있어 첫 자취 생활이 맞이했다. 취직과 이사가 겹치면서, A는 '이 때다' 하고 자취를 선언했다. "엄마. 집에서 회사로 가는 지하철이 유동인구가 제일 많대.. 자취해야 되나.." 라고 말했지만, 사실 A는 자취가 너무 하고 싶었을 뿐. A가 맞이할 직장생활을 자신보다 더 걱정해주는 엄마의 따뜻함을 영악하게 이용한 것이다. "자취하고 싶어? 엄마가 전세금까진 도와줄 수 있어." 엄마는 늘 A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다. 늘 같은 표정으로 같은 태도를 보여주시니, A는 엄마의 감정을 조심스럽게 살피는 법을 자연스럽게 까먹어간다. 온수버튼을 띡 누르면 이내 따뜻한 물을 먹을 수 있음에 굳이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과 같다.
자취를 시작하고서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특히, A는 부엌에서 하는 일이 크게 달라졌음을 느꼈다. 부엌이야 당연히 밥을 먹거나, 냉장고를 슬쩍 열어보는 정도의 공간이었다. 이제 A는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을 버린다. 처음에야 어색하고 귀찮은 일이겠지만, 어떻게 피할수 있으랴. A는 새로운 행동거지에 순응해갔다. 부엌에서의 새로운 삶에 꽤나 적응해가는 찰나, A는 뭔가 큰 것을 놓친 채로 가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라는 동안, 부엌에서의 엄마의 모습. 내가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부엌에서 엄마가 고군분투했기 때문이리라.
어렸을 적에 A는 엄마가 요리를 못한다고 생각했다. 늘 집밥 보다는 밖에서 사먹기를 좋아했다. "맨날 밖에서 먹으면 몸 버려~" 라던 엄마의 말에 "그럼 밥을 맛있게 차려주던가~" 라며, 그 와중에도 내 건강을 챙기는 엄마의 속도 모르는 대답만을 해왔다. 때로는 집 밥이 그립다는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는 요리를 못한다며, 대화의 재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랬던 내가 자취생활을 하면서 집 밥의 참맛을 그리워 한다. 그 어떤 비싸고 맛있는 음식점도 따라올 수 없는 우리 엄마 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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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름 신경썼답시고 생선 구이를 내어 주셨다. 무려 2개나.. 지난 몇십년간 그랬듯 엄마는 생선이 너무 맛있다면서, 내 흥미를 돋구려고 열심히 노력하신다. 힘들 때에는 길거리 사이비 전도사도 반갑다고 했던가… 집 밥이 그립던 A는 엄마의 호객행위가 귀를 타고 마음까지 들어왔다. 엄마는 지금까지 A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을 25살이 되어서, 집 밖으로 나가 살면서 알게된 것이다. A는 이내 못이기는 척 젓가락을 들었다. 생선은 생각보다 부드럽게 부서졌다. A는 눈물이 차오른다. "생선 맛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