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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히다 Jun 21. 2024

아직은 서울이 살만한 곳이다.

에세이를 그리다

덥다. 더워. 많이 덥다.

언제부터인가 '기후난민'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나 때문 인가?

내가 무얼 잘못했지.

떠올려보니 자가용 이동을 많이 했다.

그래서 30분 이내의 거리는 무조건 걷기로 했다.


오늘은 그림 그리러 가는 날.
그런데 벌써부터 외기온이 34℃가 넘는다.

그러나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걷기로 했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한 낯 땡볕을 다시 걸었다.

신호등 하나 건너기가 벅차게 더웠다.

하는 수없이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의 그늘 터널 길을 선택했다.


중년 아주머니가 바퀴 달린 캐리어에 오이자루를 싣고 낑낑대며 오고 있다.

뒤따라오던 초등생엄마가 바닥에 끌려 흘러내리는 오이를 가리키며 일준다.

(아직 서울이 살만한 이유 1_ 스치는 인연이지만 타인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이가 있다는 것)

잠깐 멈추어 선 중년 아주머니는 구멍 난 망에 다시 오이를 쑤셔 넣고 그냥 떠나려 한다.

때마침 근처 그늘에 앉아 담소를 나누던 어르신 두 분이 중년 부인을 불러 세운다.
'이봐요. 또 떨어지겠어. 잠깐 쉬어서 잘 정리해서 싣고 가요'라고 소리치신다.

지나치려다 뒤돌아보니 오이망에 구멍이 두 개나 나 있다.

성능이 좋지 않은 캐리어, 억지로 매달려 있는 오이망, 그리고 흘러내린 도수 높은 안경을 연신 추켜올리는 아줌마까지 모두 것이 힘들어 보인다. 어쩔 수 없다. 지금 현재 이곳에서 내가 제일 젊어 보인다.

"잠깐만이요." 하고 오이망의 구멍 난 쪽이 위로 가게 돌려 올리고, 망이 끌리지 않게 무게균형을 맞춰 반듯하게 세워드렸다.(아직 서울이 살만한 이유 2_무관심으로 방관했던 나의 태도를 바꾸게 한 어르신들)

"아이고~ 고마워요. 오이라도..."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부득불 오이 2개를 건네주고 가신다.

(아직 서울이 살만한 이유 3_작은 일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어르신들이 '받아요'하신다. 

받아 든 오이를 어르신에게 하나씩 드리니,  두 분이 개를 갈라 드신다고 하시며 나 보고도 날도 더운데 앉아서 물대신 먹가라 하신다.(아직 서울이 살만한 이유 4_더위극복을 위해 함께 나누기할 수 있는 분이 있다는 것)


그런데 이런 것이 정말 '아직 서울이 살만한 이유'라고 할 수 있는가.

이런 것은 인간관계에서 기본적인 것이 아닌가.

아니다.

이제는 대인관계에서 기본적인 것이 사라진 지 오래다.

가끔씩 삭막한 인생살이의 탓으로 이야기할 수는 있을 망정 대인관계의 기본 요건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

이유 1 관심 가져주니 살만하다.

이유 2 방관태도를 고쳐주는 이가 있으니 살만하다.

이유 3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있으니 살만하다.

이유 4 함께 나누기해 줄 사람이 있어서 살만하다에 동조해야 할 강제성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사의 따뜻한 메시지는 

전해지면 좋을 누구에게나 필요한 정서감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삭막하기만 같은 이 도시에 아직 이런 정서의 흐름을 나눌 수 있으니
서울이 아직은 살만한 도시로 분명하지 아닐까.

아직은 서울이 살만한 곳이라는 것에 아낌없이 한 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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