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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형 Mar 21. 2024

나무와중학교

수업이 살아있는 학교

   나무와중학교

수업이 살아있는 학교


"선생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수요일 아침 출근하는 나를 보고  기숙사 당직이셨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선생님께서는 다급해 보이셨다. 불길한 예감에 나는 멈칫했다. 머리는 오만가지 생각을 하느라 잠시 방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다. 비밀번호는 계속 헛돌았다. 뒤에 서 계신 선생님의 그림자가 나를 재촉하였다. 몇 번의 실패 후에 문믈 열었다.


 전등만 겨우 켜고 선생님께 자리를 권했다. 자리에 앉는 선생님의 표정을 살폈다. 꽃쌤 추위로 가득한 교장실의 냉기가 선생님의 얼굴에도 서려 있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보니 그것만도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완연한 봄날의 안온한 물안개 같은 표정도 있었다.


  하지만 두 번째 표정에 대한 생각을 빠르게 지웠다. 왜냐면 기숙사 당직자가 출근하는 교장한테 할 말이 있다고 한 건 결국 좋은 일은 아니라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결재를 위해 기숙사 당직 일지를 내밀었다. 꽃의 세밀화를 보는 것처럼 기숙사의 저녁 일상이 세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뭔가를 빠르게 찾는 내 눈엔 그저 평상시와 똑같은 기숙사 저녁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 외엔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혹시나 위기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읽고 싶은 것만 읽으려는 본능이 중요한 것을 빠뜨린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샅샅이 읽었다. 그런데 역시 특이한 사항은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을 보았다. 선생님은 알 수 없는 안개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내가 먼저 물었다.


 "선생님, 간밤에 기숙사 당직 하시느라 수고하셨지요.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요?"


 마치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는 주문을 외듯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물었다. 그러면서 또 빠르게 선생님의 표정을 살폈다. 선생님은 말을 시작하기에 앞서 심호흡을 하셨다. 그 숨이 마치 그다음 말이 건너올 징검다리처럼 나에게 꽂혔다.


 거의 자포자기 수준으로 선생님을 보았다. 드디어 출항을 위해 독이 열리듯 선생님의 입이 움직였다. 핵폭탄 같은 말들이 쏟아져 나오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래도 강도는 약하길 기도하며 선생님의 입을 보았다.


 "교장 선생님!"


 역시 심상치 않았다. 떨림까지 느껴졌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체념하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로 선생님과 마주했다. 시간에도 근육이 있다면 그 시간의 근육은 경직될 대로 경직되어 한 발짝도 나아감을 허락하지 않는 상태였다.


 선고를 기다리는 내게 선생님께서 드디어 선고문을 읽듯 입을 여셨다.


 "교장 선생님!"


 경직된 시간의 근육이 더 경직되었다. 어조를 말로 나타낼 수 있다면 장편소설이 부족할 정도였다. 숨 넘어가는 소리가 책장을 넘기듯 크게 들렸다.


 "송이가 어제 ……!"


 호흡이 완전히 리듬을 잃었다. 잠시의 침묵은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고 깊은 바다로 던져진 것 같았다.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빈 잔을 잡았다. 호흡을 잃은 숨은 말을 짓지 못했다. 눈이 말을 대신했다.


 '어떤 말도 들을 준비기 되어 있으니, 어서 말씀을 하세요.'


 눈으로 하는 대화는 진지함을 너머 간절함을 전달하기에는 최고라는 것을 다시 절감했다. 선생님께서 드디어 말씀하셨다.

 

"교장 선생님! 제가 너무 놀랐습니다. 송이가 많이 아파서 기숙사에 들어가서 조금 쉬어라고 했는데 ……! 글쎄 아이가 ……!"


  또 선생님은 말씀을 멈추었다. 침묵 사이로 몇 편의 검은 뉴스가 지나갔다. 얼굴의 색변화를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두 손이 저절로 얼굴을 쓸었다. 얼굴을 떠나는 손 가득 한숨이 따라왔다. 그런데 한숨 끝에 다른 숨이 이어졌다. 숨을 이은 것은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아이가 도저히 기숙사를 못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 이유는 수업이 너무 기대되어서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힘이 났습니다. 그 힘을 준 아이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선생님은 봄 꽃 터지듯 아이에 대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이야기에서 꽃향이 났다. 선생님의 마음에 꽃을 피운 아이가 보고 싶었다. 내 마음을 안 선생님께서 먼저 일어서셨다. 교장실을 나가서 아이가 있는 홈베이스로 가는 내내 선생님은 잠시도 쉬지 않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말씀과 걸음에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흥이 있었다. 저 멀리서 허리는 거의 반으로 접혔지만, 기대 가득한 얼굴로 교실로 가는 송이가 보였다.


 아이 이름을 불렀지만, 소리는 목에 걸렸다. 내 마음에 봄이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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