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정원 이야기
- 정원과 그-
정원이 하나 둘 늘면서 나를 가두고 있던 그는 하나 둘 사라졌습니다. 목표한 테마 정원이 완성되었을 땐 그의 빈자리도 완성되었습니다.
정원과 그는 닮았습니다.
정원은 기존의 것을 비움으로써 더 풍성한 새로움을 채웠습니다.
그도 스스로를 지움으로써 나에게 새로운 시간을 주었습니다. 그 시간 중 하나가 정원의 시간입니다.
지움과 비움의 시간은 말을 앗아 갔습니다. 한동안 실어증 환자처럼 살았습니다. 하루에 만든 말은 겨우 한 두 마디뿐이었습니다. 주말엔 그마저도 만들지 못했습니다. 만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 떠오른 단어가 있었습니다.
"정원!"
그 말은 내 안에, 사무실 안에, 사람 안에 갇혀 있던 나를 조금씩 조금씩 밖으로 불러냈습니다.
밖으로 나온 나는 지팡이를 찾듯 호미부터 찾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가지 않는 공터로 갔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모두 뽑았습니다. 뽑히지 않는 건 호미로 괭이로 캐냈습니다. 숨도 쉬지 않고 했습니다.
그러다 속에서 더운 무엇이 올라오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땅은 그런 나를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주었습니다. 그래도 진정이 되지 않으면 풀 속으로 나를 던졌습니다. 그러면 땅은 말해주었습니다. 결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고, 보이지 않는 땅 아래에는 더 큰 세계가 있다고!
정원 만드는 일의 시작은 파괴자가 되는 것입니다. 개미 공동체는 물론 기존에 터를 잡고 있던 생명들의 체계를 허물어야 합니다. 정원을 만들면서 작은 공간이지만 그곳에는 참 많은 생명들이 서로의 방식대로 터를 잡고 살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마음으로 보았습니다.
마음이 결코 좋지는 않았지만, 모두에게 동의를 구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보다 훨씬 생명력이 강한 그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공동체를 꾸릴 것이라 여기며 정원의 터를 다졌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있던 말들이 파종되는 씨앗처럼 밖으로 나왔습니다. 제일 먼저 나온 말은 "미안하다!"였습니다. 그 말은 정원을 넓히는 주문과도 같았습니다. 자리를 내주는, 아니 정확히 말해 자리를 뺏기는 작은 생명을 볼 때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실어증도 점차 치료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 가득 담겨 있던 그도 조금씩 모습을 지웠습니다.
매일 정원은 그를 대신하여 나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 말은 내가 심은 말의 메아리 같았습니다. 말을 잊었던 시간에서 매일 말이 자랐습니다.
정원에 이주한 섬개야광나무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시겠습니까!
"밤새 땅과 협상을 하였습니다. 땅이 뿌리에게 길을 허락하였습니다. 조건은 너무 서두리지 않은 것과 주변 식물과 충분히 마음을 나눈 후 길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곳에 뿌리 내림을 허락해 준 땅과 기존에 터를 잡고 있는 생명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느라 밤이 갔습니다."
정원의 수다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수다스러울 정도로 정원이 나를 보고 말을 합니다. 그 정원이 다시 내 마음에 이야기 씨앗을 심습니다. 그 씨앗이 새로운 이야기를 싹을 틔울 준비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