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가 "수직 성장"에 반기를 드는 법
'어른이 된다'를 단 한 단어로 짧게 표현한다면 아마 거의 대부분은 '성장'을 떠올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성장'이라는 단어는 이룰 성(成)에 어른 장(長) 자가 합쳐진 것으로 그 뜻을 그대로 풀어 해석하자면 '어른을 이루다', 즉 '어른이 되다'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長"이라는 한자에는 또 하나의 이름이 존재한다. 한자를 모르는 이들에게도 익숙할 그 이름, 바로 ‘길 장’이다.
이렇듯 어른 장이 아닌 길 장이라는 이름를 따른다면, 성장은 '어른이 되다'가 아닌 '길게 되다'라는 의미로도 직역될 수있다.
성장(成長): 길게 [長] 되다 [成] / 어른[長]이 되다 [成]
'향상'이라는 단어 역시 이와 매우 비슷한 성질을 띠고 있다. 향할 향(向)에 윗 상(上) 자를 쓰는 이 단어는 위[上]로 향해가는 [向] 것을 점점 더 나아지는 상태로 간주한다.
이처럼 무언가 더 나아지거나 잘 자라는 모습을 표현할 때는 주로 이러한 수직적 이미지가 사용된다. 길어지거나, 위로 뻗어 나가거나. 우리는 이미 성장과 수직을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것에 몹시 익숙해진 상태다.
수직 이미지가 성장이라는 테마와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전제는 이 위에 더 좋은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저 멀리 위에는 이제껏 맛보지 못한 달콤한 과육이 있다는 듯, 세상은 우리에게 매번 조금 더 위로 향할 것을 종용한다. 조금 더 길어져야만, 조금 더 위로 올라가야만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속삭인다.
영화 <파퍼씨네 펭귄들> 속에서도 이러한 수직 이미지는 매우 두드러진다. 어린 톰은 집을 떠나 있는 아빠와 연락을 나눌 때면 제 키보다 높이 있는 무선 통신기를 사용하기 위해 있는 힘껏 까치발을 든다. 그리고 더이상 까치발을 들지 않아도 될 만큼 자란 다음에는 뉴욕에 있는 온갖 높은 건물들을 매입하며 커리어를 쌓는다. 영화에 드러나듯, 톰은 거래를 추진하는 족족 성공시키며 타율 100%를 자랑하지만 어쩐지 다른 사업가들은 그와의 동업을 영 꺼리는 모습이다. 그가 엄청난 성과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한 채가 있다며 동업을 미루는 것이다. 그러나 톰은 굴하지 않는다. 왠지 자신을 거부하는 듯한 그들 앞에서 톰은 불굴의 자세로 계속, 으스댄다.
말만 하세요. 플라자 호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국방부 건물?
톰이 예로 드는 건물들은 모두 높은 것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규모의 건물들이다. 톰은 이렇듯 드높은 건물을 매입하는 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다.
그뿐인가, 사업하느라 가족을 등한시했던 톰은 가족들에게 버려져 혼자 살게 되는데 그가 홀로 사는 곳 역시 아파트의 가장 꼭대기 층이다. 그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건 오직 그의 돈만 탐내는 아파트 경비원뿐. 이렇듯 톰은 높은 곳에서, 높은 것들 틈에서 혼자 있다. 가족들과의 관계에서도 계속 실패하며.
톰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은 자못 명확하다. 센트럴 파크 내 유일한 사유지, "태번 온 더 그린"을 매입해야 하는 상황이 그 시작이다. 이제껏 그가 거래해왔던 수많은 높은 빌딩들과는 다르게 단층 구조를 갖춘 낮은 레스토랑 하나, "태번 온 더 그린"은 사실 아빠와의 추억이 깃들어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그것을 잊고 점점 더 높이 향해가던 톰은 거래를 위해 방문한 "태번 온 더 그린"에서 가장 낮았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또한,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산이라며 난데없이 등장한 펭귄 역시 톰 인생의 터닝 포인트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말썽거리일 것만 같았던 펭귄과의 동거로 그는 서먹했던 가족들과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펭귄을 진심으로 아끼는 그의 모습에서 그간 보지 못했던 톰의 다정한 면모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날지 못하는 비운의 운명을 가진 낮은 키의 펭귄과 함께 잘 지내기 위해 톰은 기꺼이 무릎을 굽히고 시선을 아래로 둔다. 집 안의 아래층을 온전히 펭귄만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닫혀있던 창문을 열고 바깥에 있던 눈을 집 안으로 옮겨 쌓는다. 아파트 건물 맨 꼭대기 층에 눈이 웬 말인가. 눈은 가장 낮은 바닥에만 쌓이는 것을.
톰의 하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장 펭귄의 알이 부화하지 않자 톰은 대장과 함께하고자, 대장의 새끼가 무사히 알을 뚫고 나오기를 기다리고자 기꺼이 더 아래로 내려온다. 입김이 나오는 강추위 속에서 패딩을 입고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한다. 일에 미쳐있던 톰이 출근은 고사하고 하루 종일 알에만 매달린다. 추운 바닥에 몸을 대고 알이 무사히 부화하기만을 기다린다.
위에 머무르던 톰이 아래로 향하는 모습이 가장 두드러지는 건 서랍 밑에 숨겨져 있던 아빠의 편지를 발견하는 장면이다. 어릴 적, 키가 닿지 않는 무선 통신기에 기대어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던 소년은 어른이 되어 집 안의 가장 낮은 곳 서랍 밑바닥에서 뒤늦게나마 아빠의 음성을 듣는다. 무엇을 놓쳤는지 이제야 깨달아버린 아빠의 진심을 그제야 발견한다. 머리 위 무선 통신기에서는 미처 들을 수 없었던 아빠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
저 높은 곳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아빠의 존재를 정반대의 곳에서 느꼈을 때, 소년은 비로소 어른이 되고, 또 아빠가 된다. 어른(man)이 된다는 건, 이처럼 세상이 뒤집어지는 경험의 반복이니까.
느닷없는 펭귄과의 동거 생활이라는 코믹한 옷을 입고 있기는 하지만 영화가 가진 메시지나 상징은 사뭇 진지하다. 무작정 위로 가는 것만이 성장이고 성공인 줄만 아는 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들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장 높은 곳과 가장 낮은 곳 사이를 오가며 고착화된 아이디어의 전복을 도모한다.
키만 자랐다고 다 어른인가?
마음이 자라지 않은 사람은 결코 어른이 될 수 없다. 마음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개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야 한다. 위도, 아래도 고루 살피며 놓친 것은 없는지 살뜰 살뜰 보살펴야 한다. 우리의 하강은 결코 추락이 아니다. 가장 낮은 밑바닥에서 아빠의 사랑을 발견하고 앞으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았던 톰처럼, 성장은 전방위에 걸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