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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학용 Dec 01. 2020

#12 인도는 늘 이런 식이다

레에서 마날리까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를 넘어

새벽 3시. 달빛에 눈이 부셔 눈이 떠졌다. 히말라야의 이 오래된 도시는 어쩌자고 손끝에 닿을 듯 밤하늘이 가까운 데다 창마저 이리 넓고 투명해서 여행자의 잠을 깨우는지. 수북수북 방 안으로 쌓여 드는 달빛의 두께를 밟으며 창으로 다가선다. 레에 도착하던 날 공항에 내려서며 보았던 무지개. 그 기억이 벌써 15일 전의 것이 되었다.


창에 코가 닿을 듯 다가서자 달빛이 부드러운 감촉으로 전해진다. 지구 밖 그 먼 길을 건너 달빛이 여기 창까지 찾아왔듯이 우리들의 여행도 길을 찾아 어딘가로 다가서고 있음을 느낀다. 이제 아이들에겐 스스로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길 위에서의 낯선 시간은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처음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움이 되고 있다. 


새벽 4시 30분. 눈꺼풀이 무거우면 무거운 채로 아이들이 마당으로 모여든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장 커플 수미 씨와 겟쵸도 벌써 나와 있다. 아이들은 그들이 준비해준 샌드위치, 바나나, 주스를 배낭에 챙겨 넣는다. 아침 도시락인 셈이다. 겟쵸가 막내 우현의 짐을 둘러메고 모토바이크를 타고 먼저 떠나고, 우리들은 걸어서 버스가 출발하는 마을 공터로 향한다. 짙은 어둠 속 버스 불빛이 바다 끝 등대 같다. 

1박 2일 동안 타고 히말라야를 넘어갈 버스

우리들이 승차하자 버스가 부릉부릉 떠날 채비를 한다. 그때 막내 우현이 겟쵸에게 다가가 힘껏 껴안았다. 겟쵸가 서툰 한국어 발음으로 ‘동생~ 동생~’하며 우현이를 좋아했었다. 우현도 겟쵸에게 정이 들었나 보다. 손을 흔드는 겟쵸를 남겨두고 버스가 떠난다. 버스와 함께 우리들도, 겟쵸와 히말라야의 설산들과 야크와 우윳빛 강물을 어둠 속에 남겨두고 레를 떠난다. 여행이란 것이 만나고 또 떠나는 일이지만, 헤어지는 일에 젬병인 나는 감정의 꼬리를 끊지 못하고 침묵한다. 아이들도 말이 없음은 마찬가지다. 


레 시가지를 벗어나자 검문소가 나타나고, 곧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로가 시작된다. 구불구불 뱀처럼 몸을 꼬아 오르고 또 오른다. 길은 점점 험해지고 그만큼 산은 점점 더 높아진다. 


“삼촌, 버스가 왜 산을 타고 있어요?”


잠에서 깬 남수. 얼마나 올랐을까. 드디어 해발고도 5328미터인 탕롱 라(Tanglong La)에 올라섰다. 이 높은 곳에도 휴게소가 있다. 눈이 시리고, 숨이 차다. 하늘의 푸름이 투명하고 날카롭다. 카메라 앵글을 옮길 때마다 엽서가 된다. 


해발고도 표지석 앞에서 오토바이에 기대선 서양 남자가 내게 사진을 부탁해왔다. 우크라이나에서 이곳까지 오토바이와 함께 왔단다. 가늠할 수 없는 거리였고, 상상해보지 못했던 모험이다. 아이들은 경이로운 눈빛을 거두지 못한다. 그 남자를 만난 것만으로도 생각의 폭이 한 뼘은 더 확장되었을 것 같다.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우크라이나에서 온 라이더

정오 12시. 사르츄(Sarchu)에 도착했다. 마을이 아니라, 해발 5천 미터가 넘는 황량한 분지다. 몽골식 천막의 호텔 하나와 레스토랑 하나가 달랑 있다. 점심식사 시간이었으므로, 나는 인도 정식 ‘달’을 시켰다. 그리고는 우리 중 아무도 음식을 주문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구불구불 산을 오르는 사이에 뱃속이 뒤집어져 불편해진 것이다. 아이들은 쿠키 밥에 수다를 반찬으로 끼니를 때울 모양이었다. 


오후 1시. 다시 출발. 달 표면처럼 황량하고 아름다운 분지가 2시간도 넘게 이어진다. 놀랍게도, 이런 곳에도 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저이들은 어디에서 나타난 걸까. 이 높은 곳에 이런 넓은 땅이 있다는 것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이 산다는 것도, 이처럼 황량한 땅이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도 감히 상상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 올라오는 길에서 잠만 자진 않았나 보다.


“자다 깼는데, 낭떠러지를 돌고 있어 창밖을 봤다가… 아찔해서 눈을 돌렸어.”

“기사님 운전 솜씨가 쩔어. 한 손으로 물 마시고, 담배 피우고…”

“옆 자리 차장과 대화할 때 왜 자꾸 고개를 돌리시는 거냐고!”     


버스기사 아저씨가 어찌나 운전을 잘하시던지… 담배 피우며 그 험한 길을 달리기도 하며 어떨 땐 담배와 전화를 동시에 하며 핸들을 돌리셨다. 그 절벽 가파른 길 그것도 뺑뺑 굽이진 길을 아저씨는 너무도 태연하게 운전하셨다. 뒤에서 지켜보는 난 옆에 앉은 아저씨가 운전기사님께 말을 걸지 않길 얼마나 바랬는지…. 혹시나 핸들을 돌려야 할 타이밍을 놓치진 않으실까 마음을 졸여야 했다. -(어린 여행자의 일기, 진실)     
레에서 마날리 가는 길, 사르추
레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마날리 가는 길

오후 5시 30분. 운전기사님의 베스트 드라이빙 덕분에 무사히 께일롱(Keylong)에 도착했다. 1박을 할 마을이다. 이 높은 도로를 넘어 목적지인 인도 마날리까지는 이틀이 필요했고, 그 첫날 우리들은 꼬박 12시간을 달려온 것이다. 버스 회사에서 제공하는 숙박시설은 예상대로 군대 야전용 천막 텐트다. 바닥은 흙바닥 그대로였지만 사람이 서있어도 될 만큼 텐트는 높고 넓었으며, 의외로 침대가 있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불편해하지 않았다. 히말라야 트래킹이 준 선물이겠지.


그날 밤 그곳에 에피소드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라다크라는 하나의 세계가 가고 또 다른 세계가 시작되었음을 감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인도인 매니저에게 몇 번이고 확인했었다. 어린 여행자들이 내일은 꼭 멀미약이 필요하다고. 물어볼 때마다, 알겠다, 가져오라 하겠다, 곧 가져온다고 했다, 고 대답했다. 하지만 밤 9시가 되어 네 번째 확인을 하자 내일 아침에 사 오겠다고 둘러댄다. 


결국 내가 마을 병원까지 직접 가겠다고 했다. 그는 길 안내로 직원 두 명을 동행시켜 주었다. 2킬로미터 정도를 큰길로 걷다가, 마을길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좁고 어둡고 복잡한 골목길로 한참을 나아갔다. 앞서가던 두 녀석들이 갑자기 뒤돌아섰다. 그리곤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되는 듯이 진지한 얼굴로 속삭이는 것이다. 


“200루피가 있어야 해. 지금은 늦은 시간이라서 야간 엑스트라 요금을 내야 하거든.”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내가 본격적으로 인도 땅에 들어섰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동안 인도이면서도 인도가 아닌 라다크에서 너무 평화로웠던 것이다. 여행자 DNA가 꿈틀 깨어난다.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일단 병원까지 갑시다. 그럼, 그곳에서 줄게요!” 


나 혼자 성큼성큼 앞서가자 그들은 계속해서 야간 요금이 어쩌고 저쩌고 투덜거리며 따라왔다. 얼마 가지 않아 동네 병원 작은 불빛이 보였다. 드디어 멀미약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영어를 잘하던 간호사는 당연히 야간 엑스트라 요금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나는 그들에게 준비해 갔던 팁을 주지 않았다. 아니, 내 마음이 평화를 찾고 다시 팁을 주려고 했을 때는 뒤따라오던 그들이 이미 사라지고 없어 줄 수가 없었다. 


인도는 늘 이런 식이다. 제법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을 헤집어놓는다. 이왕에 팁으로 주려고 했던 돈이었다. 내 마음을 성찰하게 한 대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련만. 손바닥 위 지폐 몇 장을 내려 보다, 그들이 사라졌을 골목 어둠 속을 응시한다. 이렇게 한 세계가 가고 또 하나의 세계가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절감하며.         

레에서 마날리 가는 길의 께일롱, 천막 텐트에서 1박
히말라야 트래킹이 준 선물, 천막 텐트가 좋다는 아이들
오늘 버스를 12시간 탔는데 길이 진짜… 내가 여기서 죽어도 이상할 게 없겠구나 싶었지만 보란 듯이 살았다!!!! 어떤 숙소 앞에서 천막에서 잤는데 그냥 맨바닥에 매트리스 깔고 잘 줄 알았는데 침대가 있어 감동했다. -(어린 여행자의 일기, 유진)    

새벽부터 지각. 으악. 어제 우리 모둠 아이들과 너무 신나게 놀아서 그만 지각. Ooooops! 새벽 5시부터 시작한 버스 여행은 약 12시간? 멀미약을 먹어 멀미는 없었지만 피곤하고 지치긴 했다. 자고 눈 뜨면 버스, 또 눈 뜨면 버스, 또…. 그래도 버스에서 잠이 깨 멍하니 풍경을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12시간 동안 생각하다 잠들고 또 깨서 멍 때리고 이걸 반복했던 것 같다. 숙소는 와, 정말 생각보다 정말 좋았다. 침대도 있었고 텐트가 아늑하니 좋았다. 트래킹을 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감사함이었다. -(어린 여행자의 일기,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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