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의 문화로 알려진 '태움'은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각종 악폐습을 말하는데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자, 다른 말로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칠 때 소위 말하는 길들이기 과정에서 발생하는데, 이는 간호사들이 근무하는 병원이라는 환경이 환자의 생명과 연관되는 곳이기 때문에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가 당연시되다 보니 태움이 확실한 현장을 목격하거나 겪더라도 당연히 치르는 훈육의 일환으로 보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신규인 시절에는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고, 몇몇 사고가 발생할 때만 뉴스화되는 일이 많았던 문제였다.
내 개인적 생각이지만, 한 번도 태움을 겪어보지 못한 간호사는 많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태움은 위에서 이야기했듯 처음 병원에 들어간 사람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괴롭힘이기 때문에 병원에 처음 입사한 사람이라면 기존 인력만큼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환경이므로 누구나 한 번쯤 태움을 당해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실제 지인과 내가 겪었던 일을 예로 들자면,
입사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조금 한가해진 틈에 스테이션에서 입사 시에 했던 자기소개를 시키고 자기들끼리 피드백하며 멍청하다, 혹은 자기소개 문장을 돌림 하며 비웃는 행동으로 상처 준 일.
일을 못한다고 간호사실 뒤에서 안 보이는 팔뚝 안쪽을 꼬집거나 머리를 때리는 일.
나이트 근무마다 사비로 선임 간호사 간식을 매번 사 오게 시키는 일.
성형에 대해 병원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 없는데, 본인의 허락 없이 사람들 모인 자리에서 성형을 오픈한 일.
인계 도중 인계판에 작은 글씨가 안 보여 잠깐 신규 쪽으로 끌어당겼다고 인계의 기본이 안 되어 있다면서 인계판을 바닥으로 집어던지고 인계를 거부한 일.
환자 앞에서 간호 행위를 하고 있는데 쫓아와 잘못한 일을 이야기하며 환자 앞에서 망신 주는 일.
인계 내내 피드백하며 자신한테 넘기지 말아야 할 일을 넘겼다며 안 한 일을 다 해결할 때까지 집에 가지 말라고 한 일.
병원 내 물품을 숨겨 물품 카운트하는 신규를 일이 끝났는데도 못 가게 붙잡고 괴롭힌 일.
듀티 신청(간호사는 교대 근무이기 때문에 짜인 근무 표대로 일을 하는데, 자신이 원하는 휴일 날짜를 미리 신청받는다)을 못 하게 막거나, 다 나온 듀티 표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듀티를 위해 신규 듀티랑 바꾸는 일.
면전에서 멍청하다, 둔하다, 너 같은 애가 사람 죽인다.. 등 말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외모 비하, 가족 비하까지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간호사의 태움에는 가스라이팅이 늘 함께 하기 때문에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선임 간호사나 수간호사의 태도에 마지막에는 인간혐오까지 느끼게 되는 게 공통적이다.
이외에도 태움의 이야기는 무한정으로 쏟아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예의가 없어지면 이렇게까지 사람을 괴롭힐 수 있구나 싶은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태움이 많은 문제(자살, 우울증, 신체화 장애 등)를 일으키고, 임상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이 떠나는 문제로 연결되다 보니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왜 발생하는지,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연구하고 있다지만 탁상공론으로만 느껴지고 있어서 답답할 따름이다.
여전히 딱히 시원한 답은 나오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관심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이 들어 브런치 첫 글로 시작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