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츄츄 Apr 25. 2023

더러운 것의 기준

관장 이야기

더러운 것의 기준

더럽다: 때나 찌꺼기 따위가 있어 지저분하다. 언행이 순수하지 못하거나 인색하다. 못마땅하거나 불쾌하다.


사전적 의미에서 더럽다는 꽤나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더러움의 기준은 어떻게 될까? 잠깐 생각을 해보았다.


다른 직업도 다르지 않겠지만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일하는 내내 조금 더 청결함과 위생을 중요시한다.


일명 손 위생 시점이라고 불리는  

환자 접촉 전, 무균이나 청결한 처치 전, 체액이나 분비물에 노출된 경우, 환자 접촉 전, 후, 환자 주변 기구를 접촉한 후, 눈에 보이는 오염물에 노출된 이후 우리는 손 위생을 한다.


이 이야기인즉, 무언가를 만지면 손을 닦아야 한다는 건데, 그렇게 의료인이 매개가 되는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나와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실천한다고 생각하면 더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이렇게 열심히 손 위생을 시행하지만 우리가 하는 행위가 모두 깨끗하지 않더라도 더럽게(?) 소중한 일이란 걸 인식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관장과 관련된 이야기다.


관장에는 여러 목적과 종류가 있지만 흔히들 아는 변비를 해결하는 배출관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관장은 의학적인 목적으로 항문을 통해 약물을 장 내에 주입하는 행위로, 일단 쉽게 말하면 변비를 해결하는 행위이다.


병원에 입원하면 평소처럼 변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발생한다.

이유는 흔히 쓰는 항생제나 먹는 약(진통제)의 부작용, 환경의 변화가 그 이유일 수 있는데, 어쨌든 먹고 자고 배설하는 행위는 굉장히 중요하므로 우리는 이를 해결해 줘야 한다.


변비가 생기면 일반적으로

먹는 약으로 조절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좌약을 주기도 하고 사용이 힘든 사람이 있을 경우 직접 항문에 넣어준다.


병원에서의 변비는 좌약 따위에 꿈쩍하지 않는 장을 가진 환자들이 많은데, 이쯤 되면 주치의 처방하에 관장이라는 걸 실행한다.


배출 관장은 관장용 주사기에 연결할 팁을 준비하고 처방된 약물을 넣는 행위이다. 관장 팁이 들어갈 수조차 없이 입구가 꽉 막힌 사람들에겐 그전에 수지 관장을 시행하기도 한다.


수지 관장이란 손가락으로 직접 관장을 시행해 주는 일로, 항문에 직접 손가락을 넣어 대변을 제거 배출하는 방법이다.


병원에 다니면서 글리세린으로 이용한 관장이나, 수지 관장을 꽤나 했는데, 수많은 관장 중에 잊지 못할 관장이었고, 더럽다는 기준을 바꾼 상황이 한번 있었다.


일단 먹는 변비 약을 3번이나 바꾸고 좌약까지 넣은 상태에서 장이 뒤틀릴 것처럼 아픈데도 입구가 막혀 힘들어하는 환자를 맡게 되었을 때였다.


병원에 따라 PRN이라고 불리는 간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실행할 수 있는 처방이 있지만 글리세린 관장이나 수지 관장은 의사의 처방하에 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 환자의 상태가 급변함에 따라 의사에게 보고를 했으나 당직의 가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 환자는 80대 할아버지였는데, 허리 수술을 한 환자였다.


허리 수술을 한 환자들은 특히나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변비가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 환자도 그런 경우였다.


연세가 있는 환자였던지라 화장실에 들어간 시간으로부터 1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은 걸 알게 되어, 응급으로 생각되어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본인이 소지한 숟가락 뒷부분으로 항문을 파내려고 하고 있었다.


이때 관장을 위해 당직의 에게 연락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당직의가 연락이 되지 않아 대신 주치의에게 연락해서 수지 관장을 하겠다 연락하고 할아버지의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 수지 관장을 시행하였다.


이렇게 환자가 의식이 있는 경우 수지 관장을 시행하게 되면 굉장히 힘들어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할아버지는 울면서 연신 고맙다고 말씀하셨었다.


입구에 있는 대변을 제거하고 나자 약물에 완화된 변이 흘러나와 침대 시트와 내 옷까지 버렸지만, 그날은 내가 더럽다거나 환자가 더럽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던 날이었다.


이후에도 그 환자는 나만 보면 고맙다고 매번 인사를 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하던 내 간호 행위가 꽤나 의미 있고 사람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는 걸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고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


관장은 어찌 보면 더럽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병동에서 일하는 간호사에겐 피할 수 없는 일이자, 주사만큼이나 잘해야 하는 스킬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느끼게 된 이야기였다.


눈에 보이는 오물로 취급받는 대소변보다 더 무서운 균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 병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깨끗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더러운 것에 무뎌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간호사의 태움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