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안다리 Jun 07. 2024

가장 찬란했을 그날

몇 년 만에 한국에 가서 어머니가 혼자 사시는 집을 방문했다.

어머니는 평소에 워낙 뭘 버리지 않으시는 성격이시다. 

그런 연유로 오랜만에 집에 가도 뭐가 달라져 있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사를 몇 번 했는데도 심지어 20년 넘은 바가지 하나 까지도 버리지 않고 다 가지고 다니신다.


그런데 거실을 보니 뭐가 많이 달라져 있다. 

오랫동안 우리 집 거실을 차지하고 있었던 오래된 거실 서랍장이 

새것으로 바뀌고 고급스러운 장식장도 하나 새로 생겨 있었다. 


“당근에 누가 그냥 가져가라고 내놨길래..”


어머니는 그 연세에 당근거래까지 알뜰하게 챙겨서 하시나 보다. 

누가 그냥 가져가라고 내놓은 가구가 예뻐서 옮겨오셨다고 한다. 

새로 생긴 가구가 신기해서 이리저리 구경했다. 

장식장안에는 주로 언니와 우리 가족의 사진들이 액자로 놓여 있었는데 

아무래도 주인공은 손주들이다. 

그런데  장식장 가장 위 오른쪽 끝에 처음 보는 사진이 고급스러운 액자에 끼워져 있다. 


바로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혼사진이다. 


흑백 사진 속의 엄마는 날씬하고 예뻤다.  

하얀색 드레스에 아버지 팔짱을 낀 엄마의 모습은 결혼식의 분위기를 전해주는 듯 설레어 보였다. 

늘 앨범 속에만 틀어박혀만 있던 이 사진이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것이 처음이라서 

조금 신기했다.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이 사진을 오래된 앨범에서 꺼내서 장식장을 꾸미신 걸까?


부모님의 결혼 생활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7살이 되어 초등학교를 막 들어갈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아마도 두 분의 결혼 생활은 10년 남짓 되었으려나..

아버지가 그렇게 훌쩍 떠나신 이후 36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머니는 한 번도 재혼하지 않으시고 이후의 세월을 혼자서 두 딸을 키우며 살아오셨다. 

갑작스러운 가장의 역할에 불평도 않으시고 참 열심히, 아주 성실히..


그런 어머니에게 아버지와의 추억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닌데 평소에 거의 아버지 얘기를 안 꺼내시기에 그냥 잊고 사시나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 밖에 예쁘게 나와있는 부모님의 결혼사진을 보면서 

아버지와 함께 했던 엄마의 시간들이 사실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웠을까 생각해 본다. 

부부 싸움을 안 해 본 것도 아니고 화가 나서 친정으로 도망가서 며칠을 집에 안 돌아오실 정도로 

어려운 시간도 있었지만. 

그래도 엄마의 소중한 메모리 속에 아버지와 결혼하던 그날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얼마나 찬란했을까?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보석 같은 그 추억이 

아직도 어머니에게 소중한 것이 마음을 뭉클해지게 한다. 


낡은 앨범을 나와 거실을 차지하고 있는 부모님의 결혼사진에서 

아주 조금이나마 상상해 본다. 

누군가의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을 그날을.

작가의 이전글 너의 존재에 감사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